朴泳德 편집위원 산시 성 西鳳酒 견문록
중국 4대 명주 중 하나인 산시 성 서봉주 생산공장을 가다(上)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다. 그렇지만 지금 술은 건강상 이유로 거의 마시지 않는다.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주류종합도매업을 운영하다 보니 각종 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료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술에 관련 각종자료를 컬렉션하게 되었고 이를 전시할 술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
전북 완주의 ‘대한민국 술 테마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도 필자가 수십 년간 힘들여 수집한 자료들을 기증했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대한민국술박물관과 경기종합주류회사 내에도 술관련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도 술과 관련된 자료수집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중국으로 술 여행을 떠나자는 제의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참가했다.
특히나 이번에 방문한 중국 산시 성(陜西省)의 서봉주(西鳳酒)는 중국의 4대 명주 중 하나로 꼽히는 명주 중의 명주여서 국내에도 2021년 공식 수입이 시작돼 잘 알려진 빠이주(白酒)다.
중국 빠이주는 현재 많은 종류가 수입․판매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서봉주는 고급주로 분류돼 가격이 상당히 비싸게 팔리는 술이다. 그런데도 판매가 100% 이상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산시 성에 있는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우리나라 직원들이 현지에서 근무를 할 때 마셔봤던 서봉주를 귀국해서 서봉주를 찾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어쩔 수 없다.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는 수많은 빠이주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질 좋은 술을 선정해서 4대 또는 8대 명주를 선정한다고 한다. 가장 흔한 분류로 4대 명주를 꼽고 있는데 4대 명주를 논할 때 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마오타이지우(茅台酒, 모태주), 루저우라오지아오(泸州老窖, 노주노교), 펀지우(汾酒, 분주), 시펑지우(西凤酒, 서봉주)다.
그런데 4대 명주라는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1952년 시작돼 1989년까지 5회에 걸쳐 진행된 전국평주회(全國評酒會)에서 명주로 선정된 술들을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거다. 5회 이후 이런저런 말이 많아 폐지되었다.
그런데, 5번 모두 명주에 선정된 술은 마오타이, 분주, 노주노교특곡 등 단 세 개뿐이다. 4번 선정된 것은 서봉주, 오량액, 고정공주, 동주까지 4개다. 그러니 3대 명주라고 하면 마오타이, 분주, 노주노교가 될 것이고, 4대 명주는 서봉주, 오량액, 고정공주(古井貢酒), 동주(董酒) 모두 주장할 수 있다.
서봉주가 4대 명주라고 주장하는 것은 1회 대회 때 명주로 지정된 술이 마오타이, 분주, 노주노교, 서봉주 딱 4개뿐이기 때문이다. 1회부터 선정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니까.
우리나라에도 3대 명주로 감홍로․이강주․죽력고를 꼽고 있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애주가들은 국내․외로 명주란 타이틀이 붙은 술을 만났을 때는 사족을 못쓸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맛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서봉주를 만나러 떠난 팸투어단은 필자를 포함해서 모두 23명이었다. 서봉주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화강주류 김종운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서울 경기지역의 주류도매업계 대표들과 미디어들이 참가했다.
이번에 찾은 산시 성에는 1974년 현지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했다는 병마용갱이 있는 지역으로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다.
산시 성의 성도(省都)가 있는 시안(西安)은 황허 강(黄河) 중류 지역에 있으며, 서북 지역의 각 성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다.
특히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서사시를 기반으로 한 연극이 유명하다. 당나라 현종 황제와 양귀비의 사랑과 비운을 다룬 작품이다.
또 중국의 경극인 귀비취주(貴妃醉酒)에는 양귀비가 연인인 당 현종을 기다리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 양귀비가 마신 술이 서봉주다.
뿐인가 수많은 시인 묵객도 서봉주의 향에 반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당나라 시인 소동파는 첫 부임지인 봉상 현을 방문했을 때 서봉주를 맛보고 감탄하며 ‘꽃이 피고 술이 좋아 마셔도 취하지 않네, 남산의 서늘하고 푸른 기운을 와서 보게나’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서봉주는 어주(御酒)로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은 옹성(현 봉상구)에서 대관식을 치렀는데 이때 서봉주로 축하연을 열었다. 서봉주가 진주(秦酒)로 불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봉주의 역사가 곧 중국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면 술 한 잔이라도 허투루 마셔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1980년대 초반까지 서봉주는 중국 서북 지역 주류 시장을 휩쓸었고, 1980년대에는 인기가 치솟아 ‘술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이 서봉주 측의 설명이다.
서봉주를 지난 2021년부터 국내 공식 수입·유통하는 김람수 화강주류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봉주 한 방울에는 중국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고 말했다. 서봉주 공장을 직접 견학하면서 과연 중국은 땅덩어리만 큰 것이 아니라 양조장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음호에는 서봉주에 대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