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술을 빚는 마음으로 喜怒哀樂 술을…

임재철의 취중진담

 

술을 빚는 마음으로 喜怒哀樂 술을…

 

 

도대체 술은 무엇인가.

임재철

술은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즉, 우리가 잘 알 듯 술은 생겨난 그날부터 인류 생활과 갈라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분명 술의 역사만큼 유구한 것도 많지 않을 거다. 술이 있는 곳에 늘 사람이 있었다. 술의 양조법과 종류가 달라도 술은 술이다. 술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인간의 다정한 벗이다.

기쁠 때 사람들은 술로 축하하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풀며, 외로울 때 술은 좋은 친구가 된다. 말하자면 술로 인해 우리 생활이 다채롭게 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아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괴로워서 마시는 게 술이다. 또 술 마시는 사람 치고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다. 이러한 술이 시기가 시기인지라 바야흐로 전성시대를 맞이한 강호의 망년 시즌이다.

 

당연히 연말이라서 누구나 모임과 술자리가 많지만 술은 사람을 접대하기에도 가장 좋은 물건이다. 인간의 기호식품으로 담배와 함께 술만큼 말이 많은 식품도 드물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하늘에 제사 지내고 사당에 제사 지내는 데에 술이 아니면 (신령이) 흠향(歆饗)하지 않을 것이고, 임금과 신하, 친구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의리가 두터워지지 않을 것이며, 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하는 데에도 술이 아니면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술은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술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신(神)을 맺어주는 역할도 해왔다. 술 없이 제사 지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한서(漢書)>에 “술은 백약(百藥)의 으뜸이고 아름다운 모임의 좋은 짝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술이 병을 다스리는 최고의 약이 된다는 말이다.

이만하면 술의 효능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술은 인간과 역사를 같이 하면서 인간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눈 인간의 오래된 벗인 셈이다. 그러나 술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앞서 인용한 <사기>의 기록에서도 술의 공덕을 찬양하고 나서 “술은 일을 성공시키기도 하고 실패하게도 하니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된다”라는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연말이고 조금 있으면 연초를 맞게 되지만, 얼큰하게 취하는 술도 좋고, 흠 없이 지키는 주법도 중요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중요한 주법은 역시 과음하지 않는 적당한 음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가 술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면 언제나 술 앞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함부로 마시고 많이 먹어서 나쁜 것은 결코 술뿐 만은 아니다.

술을 빚는다. 정성을 다 해야 맛있는 술이된다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술! 중국 속담에 ‘술은 지기를 만나 마시면 천 잔으로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라는 말이 있다. 즉 친한 친구들이 모였을 때 술이 가장 흥을 돋우는 것이다. 술은 또한 사람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어서 옛부터 유명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종종 술에 의지에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 예컨대 국내 모 맛칼럼리스트도 술을 마시고 원고를 쓰면 글의 흐름이 좋아 술 마시고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술을 마시면 취한다. 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영양소이지만 술은 마시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밥만으로 살 수 있으랴. 때로는 얼큰한 취향(醉鄕)의 경지가 밥보다 더 절실한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다. 술은 인간을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어떤 논리를 들어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 술이라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술을 가슴으로 마시지 머리로 마시지 않는다는 거.

술은 또한 지극히 정치적인 음식이다. 정치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우리가 술꾼이 아니어도 ‘위하여’를 외치며 술을 많이 마시는 시기이고 좋은 건배사도 있지만, 세계 경제 불황의 늪과 전쟁 등 국제 갈등으로 적막감이 도는 아픈 현실의 이 지구촌에 인간이 살아가는 한, 우리가 집요하게 아름다운 술을 빚는 마음으로 살고픈 세상을 꿈꾸며, 평화로운 일상과 삶이되기를 바라는 소망인 것이다.

*이번호의 취중진담은 칼럼니스트 임재철 님이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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