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비가림재배로 포도 품질 향상, 와인 맛 좋아져

(주) 두레양조 권 혁 준 대표

 

비가림재배로 포도 품질 향상, 와인 맛 좋아져

와인생산업계…브랜디도 지역특산주에 포함 시켜야

 

이제는 한 겨울에도 포도를 먹을 수 있는 시절이다. 눈 덮인 산야를 바라보며 먹는 포도 맛이야 내고장 칠월에 먹는 것 만큼은 못되어도 눈 내리는 밤 포도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도 어딘가….

포도 이야기를 꺼내면 자연스럽게 이육사의 ‘청포도’가 떠오른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두레양조(60, 대표 권혁준)’를 찾아 가는 길, 산야는 마치 옥양목으로 덮은 듯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다. 두레양조는 작은 공장들과 과수원들이 어울린 전형적인 도농지역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 위치해 있다.

두레양조장 주변의 포도밭들이 두레양조 소유의 거봉 포도밭이란다. 두레는 천안에서 생산된 포도를 구매하여 와인을 빚는다. 입장의 포도 농가들은 두레양조가 거봉포도를 수매해줘서 고맙다고 입을 모은다.

(주) 두레양조 권 혁 준 대표

입장면은 전국에서 거봉을 43% 이상 생산하는 거봉포도 주산지였다. 포도는 세계적으로 수천가지 품종이 재배되는데, 거봉포도는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으로, 우리나라에는 1968년에 재배되기 시작했고 한때는 재배면적이 1,300㏊에 이르기도 했다.

거봉은 다른 포도와 달리 알이 크고, 당도가 높고, 육질이 연하고, 과즙이 많아 생식용 포도 중 가장 우수한 포도로 평가받고 있어 이름값을 한다. 입장면이 거봉 포도의 주산지로서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천안의 대표 농특산물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두레양조권혁준 대표가 풀어 놓는 거봉포도와 두레앙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본다.

권혁준 대표가 거봉포도로 와인을 빚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동안 와인선진국의 와이너리를 찾아 어렵게 자료를 얻어다가 이를 번역해서 포도농가에 배포하면서 입장이 거봉포도의 주산지가 되었다.

포도농가의 살 길은 가공산업을 육성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권혁준 대표는 단국대 농대를 졸업. 농촌지도소 근무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성공한 농촌의 사례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갖고 농촌현장에서 농사를 짓고 수입개방에 대응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역농민과 함께 포도 가공산업에 뛰어들었다.

포도는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하여 과일의 여왕이라고도 불리지만 30여 년 전 한국에서는 와인에 대해 이렇다 할 기술 개발이나 품종개발이 덜 된 상태였다. 권 대표는 이런 점이 안타까워 기회가 닿는 대로 와인 선진국에 나가서 와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일본이 주지 않는 와인에 관한 책도 인맥을 동원하여 구해다가 번역해서 <거봉포도재배기술>이란 책도 발간했다. 이 책을 이웃 포도농가에 나눠주며 보다 과학적이고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한 때는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인들과 뜻을 모아 ‘천안신문’ 이란 지역 신문도 발행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일본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그리스, 미국, 캐나다 등지의 와이너리를 찾아다니며 선진국의 와이너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권 대표는 일본을 찾았을 때 그들 역시 포도는 식용위주였다가 와인선진국들로부터 와인 제조법을 배워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입장의 거봉포도를 가지고 브랜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접어든다.

일본은 포도 가공산업의 역사가 130여년 이다. 우리도 시작하자 2000년 2월 10일이 두레양조 생일이다.

2023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에서 두레양조는 기타주류부분에서 두레앙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권혁준 대표의 딸이며 공장장인 권예진 씨가 수상했다.

국산 브랜디 지역특산주에 포함시켜야

일본을 비롯한 와인 선진국들은 포도는 식용으로만 판매했을 때는 한계에 부딪쳐 포도를 가공한다. 그 첫째가 와인이다.

우리의 경우 한국 와인이 시작도 못했는데 ‘우루과이라운드’가 1993년 12월에 체결되고, 1995년부터 발효되자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왔다.

권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도매시장에서 4㎏ 한 상자에 3천 원 하던 포도가 500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어디에 대고 하소연도 못하고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농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권 대표는 한국와인생산협회를 결성하고 상당기간 임원과 회장을 맡아 한국와인 생산과 판로에 힘을 쏟았다.

지금 한국와인 업계는 과거에 비해 질도 좋아져 선진국 와인과 견주어도 크게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주세문제는 시급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권 대표는 전통주산업법에 전통주와 지역특산주를 함께 묶어 넣어 다양한 주류 제품 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두레양조는 지역 특산품인 거봉과 샤인머스캣을 원료로 개발한 ‘두레앙브랜디’는 프랑스 코냑이나 알마냑과 같은 포도브랜디여서 전통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권 대표는 “천안에서 나는 거봉, 샤인머스캣으로 와인과 증류주를 만드는데 1년 이상을 나무통에 숙성해 고품질의 ‘브랜디’를 제조하면 당연히 지역특산주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주세법을 개정하여 브랜디도 지역특산주로 취급해야 가격경쟁력도 높이고 판로도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통주산업법이 지정한 지역 지역특산주는 탁주, 약주, 청주, 일반증류주, 증류식 소주, 과실주, 리큐어, 기타 주류 등만 허용된다. 희석식 소주와 맥주, 위스키, 브랜디는 예로부터 전승된 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권 대표는 “외국에서 들어온 브랜디 주종을 전통주로 인정하기는 어렵더라도 지역특산물을 토대로 만들면 기준을 분리해 지역특산주로 적용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과실주를 증류하여 숙성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주로 인정하지 않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두레양조는 비가림재배로 포도를 재배하여 22블릭스까지 끌어 올려 와인 맛을 향상시켰다.

‘Duraean Wine’두레의 불어식 표현으로 두레앙이 되다

두레양조의 시작은 미약했다. 전국거봉 생산량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천안지역의 특산품인 거봉포도로 와인을 생산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6명의 주주로 2000년 2월 양조장 문을 열었다. 23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자본금 10억, 70명의 주주로 천안시 대표 농식품 기업으로 성장 했다.

2,127평 공장부지에 와인 생산설비와 지하저장고, 창고 등을 갖춘 어엿한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또한 와인시음과 판매, 술 전시장을 겸하는 다목적 공간인 ‘천안 WINE 성’도 마련했다. 이곳에는 와인시음코너가 마련되어 있는데 2층에는 두레양조의 보물창고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주류에 관한 3000여점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다른 주류 박물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들이 많다. 박물관으로 정식 허가는 받지 않았지만 소장품 구입은 아직도 진행 중. 권 대표의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취재 길에 동행한 박영덕 편집위원(경기종합주류 회장․ 대한민국술박물관 관장)도 탐나는 물건이 많다고 했다. 박물관 정 중앙에 전시된 도자기로 된 청천(淸泉)이란 술항아리는 귀한 물건이라 보는 사람마다 탐을 낸다고 권 대표는 말한다.

회사명을 ‘두레양조’로 지은 것은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을 두레라고 한데서 따왔다고 했다.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두레앙’와인은 ‘두레安’ 을 프랑스 발음으로 표기 한 것인데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

220ℓ 용량의 오크통에는 와인을 증류한 코냑이 들어 있는데 180여개나 된다.

지하 숙성 실엔 180여개의 브랜디 오크통이 잠자고 있다현재 두레양조가 출시하고 있는 술들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두레앙와인, 둘째는

두레앙증류주(소주), 셋째가 두레앙브랜디(코냑)이다.

▴두레앙와인, 750ml, 12%

천안시 특산물 거봉 포도로 만든 한국와인이다. 와인의 떫은 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강하지 않고, 특유의 감칠맛이 뛰어나 와인 입문자와 식전주로 제격이다. 프랑스의 유명 와인인 보졸레 누보와의 소비자 비교 시음회에서 맛이 좋다는 평이다.

 

▴두레앙 증류주, 750ml, 35%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수상한 술이다. 증류주 와인을 감압식 증류기로 42도에서 증류하여 불에 탄 냄새가 없고 향이 좋으며 목넘김이 부드러운 과실증류주다.

두레앙 증류주는 증류 과정에서 두통을 유발하는 초류와 후류를 제거해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두레앙 브랜디 오크 35도 500ml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그동안 3회 대상을 수상했다. 두레앙 브랜디는 증류 과정에서 두통을 유발하는 초류와 후류를 제거해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감압식 증류로 생산, 일반 농가에서 만들어 먹는 증류주에 비해 불 냄새가 없고 포도향이 강해 제대로 된 증류주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다. 오크통 숙성을 하여 오크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일품이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두레양조의 효자 노릇을 한 술은 ‘두레앙 22’ 포도증류 소주였다. 알코올 도수가 22%로 시중 일반소주에 비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지만 주당들에겐 엄지척, 가격은 375㎖에 6천원 이다.

현재 두레양조 지하 창고에는 220ℓ의 브랜디가 들어있는 오코통 180개가 잠자고 있다. 깊은 잠에 빠진 브랜디 가격은 대충 가격만으로도 2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사실 지하 저장고는 외지인에게 공개를 잘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브랜디가 깊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지금의 가치 보다 최소 3배 정도는 뛸 것이라고 권 대표는 말한다.

자료 전시실에 걸려 있는 포도 그림.

지난 우리 술 축제에서 기타주류부분에서 두레앙이 대상 수상

지난 해 우리 술 축제에서 기타주류부분 대상 수상에 단상에 오른 사람은 권혁준 대표가 아닌 권 대표의 딸 권예진(23) 씨였다.

권 대표는 딸이 양조장 일을 도맡아 한다고 했다. 사실상 두레양조장의 공장장으로 실력자라고 했다. 서서히 딸에게 양조장을 넘겨줄 생각이란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식품가공학과를 전공하여 와인 만드는 데는 아버지를 능가한다고 했다.

두레양조는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퀄리티 높은 술을 출시하고 있어 2007 대한민국 주류품평회에서 두레앙 와인이 처음으로 입선한 이래 2009 증류주 은상 수상, 2011 일반증류주 부분 대상, 2014년에는 결국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두레는 지난해 뿐만 아니라 2020년과 2021년에도 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 하는 등 국내 주류업계에서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두레앙이 평가위원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권 대표는 부단한 노력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인성 2층에는 3000여점의 옛 술병을 비롯한 희귀한 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취재길에 동행한 박영덕 회장(경기종합주류, 대한민국술박물관 관장)이 권 대표와 전시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는 것. 그래서 두레포도는 비가림막으로 포도밭을 덮어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이렇게 포도가 자라는 환경을 개선하자 포도의 당도가 22브릭스까지 올라 와인 맛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일본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는 포도 농사를 10차 산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포도가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 말에 10차 산업이라니, 앞서 가도 너무 많이 나간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도 현재 농업과 관련, 6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앞으로 우리 농촌이 나아갈 방향이 6차 산업이라 이웃 농가에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두레앙 초기 제품들.

그리고 “일본과 서양의 와인 선진국들은 알코올 도수 기준을 많이 완화시켜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빨리 도입하여 한국의 와인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등록된 도수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당도에 따라 알코올 도수가 달라지지만 매년 일정한 당도의 포도를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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