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양조장 학교의 추억

허시명의 술기행

 

양조장 학교의 추억

 

 

막걸리학교에서는 지난 2월에 두 번째로 양조장 학교를 운영했다. 2014년 2월에 전남 장성의 사미인주를 만드는 청산녹수에서 1기를 진행하고, 2015년 2월에는 강원 홍천군 전통주조 예술에서 2기를 진행했다. 3박 4일로 진행했는데, 목표는 양조장의 모든 것을 그 짧은 시간에 견습해보는 것이었다. 1기는 막걸리 편이었고, 2기는 전통주 편이었다. 청산녹수의 대표가 현직 교수이고, 전통주조 예술도 전직 교수였던 분이라서, 가르치는 것에 익숙한 분들이었다. 사실 양조장 안까지 치고 들어가, 그 기술과 경험들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터득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때로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에, 양조장 운영자들은 꺼려하는 일이다. 그만큼 막걸리학교에서 두 곳의 양조장과 연대하여 양조장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추진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짧게 스치고 지나간 그 날들이 그립다.

정회철 대표가 운영하는 홍천 전통주조 예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던가?

우선 양조장의 공간 그 자체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전통주조 예술은 강원 홍천군이 외진 산속에 있었다. 마을 지나 골짜기 안쪽의 외딴 집이었다. 양조장 앞으로 골짜기 물이 흘러가고 주변으로 산들이 너울 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양조장은 명상수련원이라 불러도 해도 좋을 만했고, 또 그런 외진 곳에도 양조장이 이름을 얻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했다. 마치 양조장은 간판이 필요 없어, 왜냐면 그 향기가 퍼져 사람들이 다 찾아오거든! 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시설과 도구를 보면서, 양조 전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시연과 실험이 아닌 실전에 쓰이는 시설과 도구를 직접 다뤄보면서, 양조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수제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서, 항아리는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용량을 사용하고, 술덧이 들었을 때는 바퀴가 달린 받침대를 사용하여 쉽게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양조 공간은 황토로 지은 한옥 구조물을 개조하여 온도 관리와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하여 양조 체험 공간과 양조 카페를 마련했다. 그리고 숙박할 수 있도록 펜션 3동도 마련해 두었다. 덕분에 우리는 양조장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술을 빚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안정된 시설을 갖추고 있는 양조장은, 전국을 돌아보아도 달리 찾아볼 수가 없다. 찜솥과 화력, 목공예 솜씨가 좋은 정대표가 만든 누룩틀, 착즙기를 이용한 누룩틀, 온도와 습도가 잘 조절되는 황토방 누룩실, 온도 조절이 가능한 발효실과 숙성실, 동 증류기, 종이필터를 사용하는 여과기, 체를 사용한 여과 설비 들을 직접 보고 이용해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배울 때에,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때문에 전체를 한 눈에 보기 어렵다. 그런데 양조장 학교에서는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양조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술은 송순이 들어간 송순주, 관서 지방의 명주로 알려진 벽향주를 빚었다. 전통주조 예술의 대표 상품은 프리미엄 탁주 만강에 비친달, 홍천강탁주, 약주 동몽이지만, 실습은 다른 술을 빚었다. 송순주와 벽향주는 밑술과 덧술 두 단계로 나눠 빚는데, 송순주는 4명이서 한 조가 되어 한 항아리에 멥쌀 1.6kg 찹쌀 4.8kg, 누룩1kg, 물7.2ℓ, 말린 송순 20g을 사용하여 빚고, 벽향주는 4명이서 한 조가 되어 한 항아리에 멥쌀 5.5kg, 누룩 500g, 끓인 물 4ℓ를 넣어서 빚었다.

술을 빚을 때에 치대는 작업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한 대야에 네 사람이 둘러앉아 한 시간씩 치댔는데, 손으로 치대는 것도 만족할 수 없어 덧밥을 넣고 나서는 비닐 장화를 신고 두 사람이 한 발로 진흙 밭을 걷듯이 치대기도 했다. 그것은 고행과 같은 시간이었다.

왜 그랬을까? 전통 양조법은 현대 양조법에서 사용하는 평균적인 물의 양보다 더 적게 사용한다. 송순주는 곡물 대비 물이 112.5%, 벽향주는 곡물 대비 물이 72.7%로 통상적으로 막걸리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물 150%에 견주어 적은 양을 사용했다. 그 때문에 누룩과 술밥이 잘 섞이도록 치대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섞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효모가 증식하려면 공기가 필요한데 공기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 치댔다. 그래도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한 가지를 말한다면, 우리가 입안에서 밥의 소화를 돕기 위해서 오래 씹듯이, 미생물의 소화를 돕기 위해서 열심히 치대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의 과학적인 실험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1시간 정도 치대준 것과 치대주지 않은 것의 당화 속도, 효모량, 발효 경과를 조사해보면 될 것이다.

양조장 학교에서 배운 또 하나는 현대 양조와 전통 양조의 차이였다. 그 첫 차이점이 현대 양조법에서는 손을 직접 넣지 않고 도구를 사용하는데, 전통 양조법은 손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진화하지 않은 수공업이 아니라 차별화를 꾀하는 수제(手製) 양조로 보아야 한다. 이 정신에 따라 현대 양조법에서는 효소와 효모가 분리된 발효제를 사용하고 감미료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데, 전통 양조법에서는 천연발효제를 사용하고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원재료의 맛에 충실한 술을 만들어내려 한다.

발효 용기는 스테인리스도 사용하지만, 대부분 항아리를 사용하여 발효하고 숙성시켰다. 찜솥과 여과기와 병입기 등의 기계 장비를 사용하지만, 그것도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용기들이었다.

또 다른 체험으로는 녹두와 찹쌀을 이용한 누룩 만들기였다. 누룩은 일반적으로 통밀을 분쇄하여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누룩은 백수환동주, 흰 머리가 검어지고 노인이 아이가 된다는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백수환동곡이었다. 재료의 배합은 찹쌀 2kg은 가루내고, 녹두 2kg은 껍질을 벗긴 뒤에 각각 찐 다음에 둥글게 야구공 만하게 뭉쳤다.

자기만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 누룩 만들기가 필수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재료를 달리한 다양한 누룩에 대해 살필 수 있었다. 죽누룩은 물 대신 죽을 쑤어 반죽하고, 금경로곡은 밀가루를 녹두 즙에 개서 만들었고, 정화곡은 밀가루를 생강즙에 개서 사용하고, 양능곡은 천초와 꿀을 이용하여 만든 누룩이었다. 이 누룩들을 만들기 위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누룩방을 양조장이 갖춰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증류주를 내려 보는 시간도 특별했다.

예술에서는 옹기로 된 소줏고리, 스테인리스로 된 소줏고리, 유럽에서 수입한 동증류기를 갖추고 있는데, 똑같은 원주를 가지고 증류기를 달리해서 소주를 내려 볼 수 있었다. 술맛은 동증류기, 소줏고리, 스테인리스 증류기 순이었는데, 결코 소줏고리로 증류한 술이 동증류기에 밀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옹기로 된 소줏고리는 크게 만들 수 없어서, 대량 생산 체제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양조장 학교는 창업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이미 양조장 창업 준비를 위해서, 땅을 마련하고 귀촌한 부부도 있었다. 전라도 영암에서 발효 식품을 만드는 농부도 있었고, 이제 갓 강원도 진부에 터 잡고 귀촌을 준비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삼일 째 저녁에는 조별 창작술 발표를 했다. 평가 기준은 제법의 독창성도 중요했지만, 그 이름 붙이고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게 보았다. 1등 상을 받은 술의 이름을 이곳에서 밝히기 곤란하지만, 재료의 차별화와 그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를 모아가는 토론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2009년 막걸리 바람이 분 뒤로 두드러진 현상 하나는 술 빚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접 양조장을 차려서 술을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술을 잘 빚는 사람들은 직원으로 취직을 하고, 양조업은 재력이나 연줄이 있는 이들이 좁은 면허 기준을 통과하거나 면허권을 구매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다보니, 좋은 술을 만들어내기 위한 열정과 고민이 운영자와 장인 사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운영자는 수익을 위해서, 장인은 월급쟁이로서 안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강원도 홍천의 전통주조 예술에서 진행된 2기 양조장 학교는 술덧을 치대느라 힘들었지만, 작은 규모로도 양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이 끝나면 저녁으로 술을 마시면서, 함께 발효와 양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즐거웠다. 앞으로도 그 즐거움을 함께 하기 위해서, 그리고 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서라도 1년에 한 번씩은 양조장 학교를 운영하고 싶다.

<글·사진 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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