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의 술 기행
귀촌하려면 발효를 알아야 한다
지금은 논이나 들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농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넓은 논밭을 트랙터가 돌아다니며 일구니, 막걸리 대신에 기름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막걸리는 여전히 농부들의 큰 벗으로 남아있다. 귀촌을 준비하는 이라면 막걸리 빚기를 배워둘 필요가 있다.
귀촌하여 이웃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 그 방법 하나로, 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것이 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곡물로 막걸리를 빚어 함께 나누면 효과가 좋다. 술빚기, 특히 막걸리 빚기는 남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다. 술을 빚어놓고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에게 “저희 집에 직접 빚은 술이 있습니다, 어르신 오다가다 들르시지요?” 하고 인사 건네면 누구라도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안주는 텃밭에 풋고추 따서 된장과 함께 내놓으면 된다. ‘밥은 누구나 하고 먹을 수 있지만 술은 아무나하고 먹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함께 술을 나누다보면 이웃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귀촌하는 이들이 우선 염두에 둘 것은, 모든 곡물과 과일로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술은 보관성이 좋고, 부피에 대비하여 가격이 높다.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 있어 선물하기 좋다.
우선 율무를 살펴보자, 경기도 연천에서 율무 막걸리가 만들어졌고, 강원도 횡성에 의이인(薏苡仁)주가 나온 적이 있다. 의이인은 율무를 뜻하는 한자어다. 율무는 알이 굵지만 삭히는데 좀 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보편적인 술은 아니다. 예전에는 율무 농사를 많이 짓는 곳에서 율무 술이 있었다. 쌀이 부족하여 율무라도 써서 술을 빚어 마신 결과였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이 자유로워진 현대에 있어서는, 왜 율무 술을 빚는지 특별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 율무에 들어있는 기능성 성분을 활용하거나, 술맛이 풍부하다는 전략 따위가 필요하다. 보편적이지 않기에, 차별화된 존재 의미를 지녀야 한다.
두 번째로 거론된 작물이 오가피였다. 오가피는 만병통치약처럼 인기를 얻었고, 오가피주도 약주의 바람을 타고 대표적인 주종으로 등장했었다. 하지만 오가피주는 저렴한 대중주로 인기를 끌다가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시들해졌다. 그나마 좀 차별화된 제품으로 강원도 정선명주에서 만든 오가자주가 있다. 이는 오가피 껍질이 아니라, 늦가을에 익은 오가피 열매를 이용하여 만든다. 다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오가자주는 시간을 두고 팔아야 한다.
술을 작은 규모로 빚는다면, 우선 나의 이웃이 소비할 수 있고, 주막을 직접 운영하거나, 펜션이나 기념품매장을 운영하여 유통 창구를 마련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귀촌하는 이들이 술을 배운다는 것은 창업보다는 자급자족할 식품을 만드는 데 그 의미를 두는 게 현실적이다. 달리 말하면 농산물을 저장하는 방법의 하나로 발효를 알아두면 좋다. 사업화는 그 뒤의 일이다.
오가피청은 오가피에 설탕을 넣어 발효시킨 진액이다. 대략 설탕을 오가피의 70% 정도를 넣어 섞고 당도 50 브릭스(브릭스는 당도를 재는 단위)를 만들어 한두 달 만에 오가피를 건져낸 다음에 숙성시키면 오가피청이 된다. 오가피청의 당도를 절반 정도인 25 브릭스로 낮추고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면 오가피주가 된다. 알코올 12%의 오가피주를 다시 물로 희석하여 알코올 농도를 6%로 낮추면, 오가피 식초를 만들 수 있다. 오가피 식초는 초산균이 살아있는 종초를 사용하면 한 달, 그렇지 않으면 두 달이 지나야 식초가 된다.
오가피청이 오가피주가 되고, 오가피주가 오가피식초가 되는 법을 알려면 발효를 알아야 한다. 시골 생활을 보람차게 하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맥가이버 정신을 가져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만들고 해결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구매하고, 나의 노동도 상품이 되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내가 만든 물건을 누리는 삶은 고단하지만 매력이 있다. 귀촌하려면 발효를 알아야 한다. 발효를 알면 술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