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망국으로 치달은 불의 노래(有酒亡國)

김상돈의 酒馬看山⑪

 

망국으로 치달은 불의 노래(有酒亡國)

 

술은 물과 불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물속에 불이 담긴 것인지, 불 속에 물이 담긴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두 가지 상극의 물질이 조화를 이룬 술이 인간의 감성과 함께한 자취를 되돌아보는 일은 나름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연을 노래하고 삶을 그려내고 술을 희롱하는 이들의 물의 노래는 그래서 지금껏 우리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陶淵明)에서 시작된 물의 노래는 당대(唐代)의 이백, 두보, 백거이를 거쳐 송대(宋代)의 소동파, 이청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이질 않는다. 또한 화가는 그림으로 서도인은 글씨로서 술의 물 기운을 맘껏 토해 냈다. 이 모든 삶 속에 술이 있고 술 속에 삶이 있어, 삶과 술이 서로를 보듬어 가면서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반해, 불의 노래 또한 만만찮다. 중국 대륙에서는 술 속의 불이 사람을 태우고 나라를 망치게도 한다. 그 불이 타오르게 되면 물은 말라버리고 백약이 무효가 된다. 술의 역기능이라 할 수 있는 불의 노래는 요(堯)임금 때 천문을 담당했던 희화(羲和)라는 이가 그 처음이다. 그는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곧잘 직무를 소홀히 하곤 했다. 하루는 일식이 발생하였으나 술에 취해 미리 예보하지 못함으로써, 큰 혼란이 초래된 것이다. 요임금은 대노하여 그 책임을 물어 희화를 사형에 처하게 된다. 술이 빚어낸 최초의 수난사로 전해지고 있다.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딸 의적이 만든 술을 몇 잔 마시고 취해서 잠이 든다. 깨어나 보니 술이 맛은 좋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물질이라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더불어 그의 애지중지하던 딸 의적을 먼 섬으로 귀양 보내 더 이상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은 말희(妺嬉)라는 애첩의 유혹에 넘어가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요대(瑤臺)라는 궁궐을 짓고, 옥 침대에서 밤마다 향락에 빠졌다. 걸왕 스스로도 술을 무척 좋아해 술지게미인 주박(酒粕)으로 10리나 되는 둑을 쌓아 술 연못을 만들고 동산의 나무에 고기와 포를 주렁주렁 매달기도 했다(酒池肉林). 연못에는 3천 명의 남녀가 나체로 놀게 했는데 북을 치면 얼굴을 박아 술을 마시게 하면서 이를 즐겼다고 한다. 결국 우임금의 예견대로 하(夏)나라는 471년의 역사를 술과 함께 마감하게 된다.

이러한 불의 노래, 망국의 노래는 판박이처럼 다시 반복된다. 하(夏)나라의 뒤를 이어 600여년 지속되어온 은(殷)나라(혹은 商나라)의 주왕(紂王)도 술 연못을 만들고 둘레에 여인들을 발가벗겨 숲을 이룬 뒤, 그 사이를 누비며 술을 마셨다. 그 주지(酒池)가 황하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고증되었고, 배를 띄울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이다. 주왕(紂王) 역시 옆에는 총희(寵姬)가 있었으니, 경국지색으로 꼽히는 달기(妲己)가 바로 그녀이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의 기록에 의하면 달기는 유소씨(有蘇氏) 제후(諸侯)의 딸로 용모가 선녀와 같고 노래와 춤을 잘하였으며, 주왕이 유소씨 부락을 정벌할 때 포로로 궁에 들어와 귀비(貴妃)가 되었다고. 달기에게 빠진 주왕은 그녀가 사람들의 고통스런 소리 듣기를 좋아한다 하여 기괴한 형벌들을 개발하게 된다. 특히 구리기둥에 기름을 칠해 활활 타는 숯불위에 가로로 걸쳐 놓고서는 죄인을 그 위로 걸어가게 하여 기둥에서 미끄러 떨어져 타죽어 가는 모습(炮烙之刑)을 늘 함께 보며 즐거워했다.

주왕(紂王)의 술에서 비롯된 폭정이 망국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周)의 군대가 은나라 도성을 함락시키자 주왕(紂王)은 녹대(鹿臺)에서 불길 속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였으며 달기 역시 나라를 망친 요녀(妖女)라는 죄명으로 죽임을 당했다.

술과 여자에 빠져 나라를 망치게 된 걸주(桀紂)는 오늘날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 속에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술이 만들어 내는 불의 노래는 무절제한 쾌락추구의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고리가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한계상황 때문일 것이리라.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KAIMA 전무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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