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 김 왕 기 회장
“신의를 지켜야만 도매업자가 잘 살 수 있다”는 확신
발품 팔아 가면서 도매업계의 과당 경쟁 최소화에 주력
김왕기(金王基·46) 강원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장은 현재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임원 18명 가운데 가장 젊다. 전임 권영진(權映振·74) 회장이 강원협회를 이끌 때는 중앙회 임원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대접을 받았는데 지난 해 강원협회장 선거에서는 이와는 정 반대로 가장 젊은 사람이 회장으로 선출돼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국도매업계에서 김왕기 회장을 주시하고 있다.
주류도매업계에서 김 회장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낮은 자세로 꾀부리지 않고 회원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가면서 도매업계의 고질병인 과당 경쟁을 최소화 시키는데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삼척시에선 도매사간 과당 경쟁 안한다
김 회장이 주류도매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32살이던 2001년 우연치 않게 당시 동양상사(현 동풍종합주류 전신)에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후배들이 밀어주고 김 회장 자신도 열심히 영업을 한 덕에 여기저기서 술을 보내달라는 오더가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에선 술을 보내지 못했다. 이유인즉 메이커에 진 부채가 많아 술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급한 부채를 김 회장이 대신해서 갚아 나가기 시작하고 술을 받아 영업을 하다 보니 대추나무에 연 걸려 있듯이 부채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결국 1년 반 만에 4억5천만 원이나 빚을 갚아주고 회사를 인수했다.
모든 빚을 청산하고 열심히 영업을 하다 보니 회사의 전임 운영자들이 회사를 빼앗겼다는 헛소문을 내고 다녀 검찰의 조사까지 받아야 했지만 모든 것이 허위로 판명 났다.
“당시 사회물정을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이어서 수업료를 톡톡히 물었다고 봐야 하겠죠” 김 회장은 비싼 대가를 치루고 2003년 12월 회사를 완전히 인수하고 나서 현재의 ‘(합자)동풍종합주류’로 상호를 바꾸고 도매업을 시작한다.
사회물정 모르고 덤벼든 도매업
조그만 식당을 시작하는 사람이 도매업자들 간에 경쟁을 유발시켜 쇼케이스는 물론이고, TV, 냉장고, 주방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도매업체의 이익분 모두가 고객확보에 들어가다 보니 아무리 영업을 열심히 해도 이익이 남지 않았다.
이때부터 김 회장은 동해, 삼척지역 협의회에서 기존 원로들과의 투쟁을 시작했다고 했다.
“장장 9년간이나 이 지역 원로들과 싸움 아닌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 때 나이 많으신 분들이 젊은 것이 버르장머리 없게 대든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구 소비재를 줄이지 않는 한 도매업은 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줄기차게 경쟁을 억재하고 내구 소비재를 줄이자고 외쳤습니다.”
이런 결과 이 지역 원로들은 “그럼 젊은 사람이 한 번 해 보게”하면서 지역협의회를 이끌도록 했다.
지역 원로들 “그럼 젊은 사람이 한 번 해 보게”
김 회장이 지역협의회를 이끌면서 강조한 것은 “신의를 지키자”는 것. 아무리 법이 어떻고 규정이 어떻고 해봤자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술 몇 상자 더 팔겠다고 TV며 냉장고를 실어다 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를 지켜야만 도매업자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다니자 서서히 이에 동조하는 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동해와 삼척시에는 7개 도매사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 고객들에게 지원해 주고 있는 것은 쇼케이스 2대 정도에 그친다.
만약에 식당이나 주점에서 도매사를 바꿀 때는 새로 맡은 도매사가 먼저 공급하던 도매사가 설치 해준 쇼케이스를 철수하지 않고 가격을 쳐서 지불하고 그대로 사용토록 한다.
그러다 보니 영업사원들의 일거리도 줄어들고 새로 쇼케이스를 구입하는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했다.
그렇지만 고객 입장에선 불만이 많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선 뭣도 해주고 뭣도 해주는데 동해 삼척에선 도매사끼리 담합해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 다는 불만이 많다는 것.
“생각해보세요, 이는 담합이 아니고 지역 도매사끼리 살아보자고 단합을 한 것이거든요”
이런 효과를 김 회장은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우리 회사가 업자끼리 경쟁이 치열할 때에는 월 매출액이 8억 원 정도 이었는데 요즘은 5억 원 정도로 떨어졌지만 이익은 그 때 보다 많습니다.” 모두가 업자끼리 정화운동을 편 덕이라고 했다.
원로들이 내친김에 강원도협회장 선거에 출마 적극권장
“정말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해 2월 치룬 회장 선거에 얼떨결에 출마했는데 원주에서 출마한 정동익 사장을 누르고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중앙회에 나가보니 임원중에 제 또래는 한명도 없고, 저 보다 바로 위 선배가 저 보다 10살이나 많더라고요, 아마 당분간은 막내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김 회장은 막내로 지내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
김 회장은 동해 삼척 도매회사들에게 “우리가 한 군데 고객을 잡기 위해서 퍼주는 돈이 천만 원에 가까운데 이를 해주지 않으니까 그 만큼 여유가 있지 않느냐, 한 곳에 지원해준 셈치고 천만 원씩 걷자”고 제안하자 쾌히 천만 원씩 내서 장학금도 지원해주고, 연탄누누기, 김장나누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왕기 회장은 개인적으로 동해로타리클럽 회장을 비롯한 크고 작은 봉사 단체에 참여해서 봉사 활동을 펴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를 하기 위한 예비 활동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김 회장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지역 사회발전에 도운이 되는 일엔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 도매사들을 위해서 동해 삼척에서 전개하고 있는 정화운동을 도내 전체에 파급시키기 위해 열심이다.
“매월 그런 것은 아닌데요. 어느 달엔가는 제차(에쿠스)에 18번이나 풀로 기름을 채운적도 있더라고요, 우리 회원사들을 방문하여 ‘신의를 지키자,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강조 하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정화 운동이 도내 전체로 번져 나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전국 도매업계에서 김 회장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매사 간의 무차별 가격파괴, 거래선 빼앗기, 음성적인 자금지원 등 유통질서 문란행위는 어느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을 지양하고 자율적인 거래질서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여 건전한 상거래 풍토를 조성하고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만큼 이익 창출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소통과 화합으로 상생발전을 꾀하자
강원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는 2015년도 사업계획의 기본방향으로 건전한 주류유통 질서 확립, 윤리경영 및 준법경영 확대, 소통과 화합으로 상생발전을 꾀하자고 정하고, 회원사간 가격파괴, 금품지원, 거래선 침탈 등 유통질서 문란행위를 지양하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또 주류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지입 차에 대해선 강력한 고발조치로 성실사업자를 보호하고 지입차량이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단속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강력히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소통과 화합으로 상생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제조사 간담회를 개최하여 밀어내기, 리베이트 지원 등 불공정행위를 개선하고 제조사가 회원사를 위한 경영컨설팅,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모임 지원 자제, 임직원 교육을 실시토록 하여 서로 WIN-WIN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배움에 한 맺혀 현재 대학 2년에 재학 중
김왕기 회장이 ‘신의를 지키자’는 화두를 들고 나오는 데는 그가 한 때 건달들 세계에 몸담았던 것과 무관치 않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같은 서클 친구가 패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참가 한 것이 계기가 돼서 날건달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도 육군 만기 제대를 했습니다”
태백기계공업고를 졸업했으니 큰 직장에 들어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제대 후 안 해본일이 없을 정도로 11가지 직업에 손을 댔지만 잘 안됐다고 했다. 그러다가 도매업에 발을 디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배움이 짧은 것이 한 으로 맺혀 지난 해 큰 맘 먹고 한중대(동해시 소재)에 정식 입학해서 현재 광고디자인학과 2년생이다.
주경야독이라고 했던가. 사업할라, 공부할라, 게다가 협회일 불랴 눈 코 뜰 사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김 회장은 말한다.
그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큰 딸이 2급 장애자여서 더욱 그렇고, 아래로 딸만 둘 그래서 딸부자 아버지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동해시 하키협회 부회장, 동해시로터리클럽 회장 등을 맡고 있는데 몇 군데 단체에서 회장을 맡아 달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고민이란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