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의 주당천리
맥주를 만들러 슬로베니아로 날아가다
비행기표는 이스탄불을 거쳐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로 들어가는 두 장이었다. 터키 이스탄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그곳을 경유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하룻밤 그곳에서 머물며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스탄불 공황은 붐비는 시외버스터미널 같았다. 유난히 천정이 낮아 보이고, 사람들에 밀려서 출구까지 갔고, 축구 경기장 빠져나가듯이 사람에 밀려 공항을 나왔다. 환전을 얼마간 하고, 호텔행 버스를 찾는데 30분 뒤라야 온다고 했다. 시간이 돈인데, 그깟 택시비를 아끼랴 싶어, 택시를 타고 예약한 공황 근처의 호텔로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는 미터기도 누르지 않는다. 흥정한 돈이 30 터키리라였다, 택시 기사는 도로 위를 종횡무진 달린다. 옆 택시 기사와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데, 목소리가 공처럼 날아가 옆 택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무대 위의 춤꾼처럼 택시가 도로 위를 달린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번에는 호텔 안내인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 했다. 호텔 로고가 찍힌 택시가 왔다. 그 택시를 타고 30분쯤 이스탄불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찾아갔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홍 선생과 골몰했다. 수제 맥주라고 부르는데 손으로 빚진 않잖아.
아무리 작은 양조장이라고 거의 장비를 동원하잖아. 기껏 맥아 자루만 들었다가 옮기는 정도지, 양조 장비가 나서서 술을 빚어주는데 그것을 수제라고 할 수 있어? 아니야. 그럼 장인 맥주? 소형 맥주 제조장의 맥주 빚는 사람들이 다 장인들인가? 아니지. 자본을 앞세운 관리자가 더 많이 있지. 그러니까 장인 맥주라는 말도 적합한 번역이 아니야. 그러다가 둘이 공감대가 형성된 말은 독립 양조장이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작은 양조장을 추구하고, 시대를 거슬러 전통적인 것을 복원하여 빚거나 독창적인 양조법을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빚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독립 양조장이라고 번역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 말로도 우리는 서로가 완벽한 일치를 보았다는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언어는 문화를 상징하는 기호인데, 기호를 통해서 모든 문화를 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페일 에일의 등장은 산업 혁명과 궤를 함께 한다. 석탄으로 만든 탄소질의 고체 연료인 코크스 Coke의 출현으로 강력한 화력을 얻게 되면서, 강철 당화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가열에 따른 나쁜 냄새가 줄어들고 갈변하지 않고 밝은 색이 도는 맥아를 생산하여 페일 에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가 1702~1714년 경이지만, 석탄 가격이 비싸 페일 맥아가 대중화되지 못했다.
페일 에일이 날개를 단 것은 1845년 유리에 부과되던 높은 세금이 없어지면서였다. 대량 생산된 페일 에일이 유리병에 담겨 제국의 선박에 실려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다.
이스탄불 브루펍에는 페일 에일 말고도 신맛 나는 벨기에 브론드 에일, 결코 가볍지 않은 맛을 지닌 전통적인 스타일의 도수 높은 6% 라거, 커피맛과 초코렛맛이 도는 스타우트, 여름용으로 출시된 상쾌하고 신선한 밀 맥주가 있었다. 기호에 따라 다양한 차처럼 맥주를 내놓고 있었다.
19세기 페일 에일은 그 뒤를 추격해온 황금색 라거맥주 필스너에 견주면 탁한 맥주였다. 더 맑아진 필스너에 페일 에일은 추월당하면서 맥주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었고, 필스너는 20세기를 주도하고 21세기까지 건너왔다. 그런데 지금의 크래프트 맥주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라거에 맞선 에일, 그것도 인디아 페일 에일보다 홉을 더 넣은 아메리칸 페일 에일이다. 바다를 건너는 맥주들은 맛이 진하고 강렬한가보다. 그래야 새로운 영토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인디아 페일 에일이 그랬고, 아메리칸 페일 에일, 또는 아메리칸 인디아 페일 에일이 그렇다.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맥주펍이었다. 맥주 장비를 만드는 회사 사장이 환영 인사차 우리를 데려간 것이다. 류블랴나의 Sir William’s라는 펍이었다. 길거리로 탁자를 내놓았는데, 두 탁자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홀 안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유목민들의 후예라서 그럴까, 실내는 답답해하고, 실외로 나와 길가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긴다. 이 펍을 주도하고 있는 맥주는 벨기에 맥주였다. 별의별 맥주들이 다 있는 벨기에의 맥주들이 영국 에일과 기네스와 경합하고 있었다. 그 안에 슬로베니아의 새로운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주자인 휴먼피쉬 브루어리와 비지르 브루어리의 캐그통에 담긴 맥주도 있었다. 우리가 가려는 양조장이 비지르 브루어리다. 기대가 된다. 맥주를 현장에서 직접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맥주를 만들어보기로 한 그곳이.
글·사진 허시명:술평론가·여행작가·삼청동 입구에서 문학공간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술의 여행>, <막걸리, 넌 누구냐?>, <조선문인기행>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