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술을 즐기는 사람 모두가 다 친구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가 최근 한 신문에 소개한 ‘박대이에게(贈朴仲說大頤)’란 한시다. 이 시는 17세기의 명사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시라고 한다. 정두경은 인묘(仁廟, 1629년) 7년에 별시(別試)에서 갑과(甲科) 제1등으로 뽑힌 인물이다. 당시 그의 형인 정익경(鄭翼卿)도 동방(同榜)에 급제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영예로운 일이라고 했다. 6품직(六品職)에 제수되어 낭서(郎署)를 거친 뒤에 대성(臺省)에 들어갔고 옥당(玉堂)의 선발에 뽑히기도 했으나 평소부터 벼슬살이에 대한 마음이 없었으므로 비록 서울에 살면서도 항상 임천(林川)에 돌아갈 뜻이 있었으며, 만년(晩年)에 이르러서는 무릇 관직에 제배(除拜)될 때마다 대부분 극력 사양하여 기어코 해면(解免)되고야 그만두었기 때문에 임명에 나아간 관직은 겨우 열에 한둘이었다. 집안 살림이 매우 가난하여 끼니조차 자주 바닥날 만큼 어려웠는데도 항상 태연하게 지냈다고 한다.
시에 담긴 깊은 뜻이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시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면 어렴풋이나마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쟁이 치열한 벼슬자리보단 향리에 파 묻혀 유유자작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는 선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실력이 있건 없건 간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수 있으면 매달려 벼슬을 하려드는 세태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다.
주당들 세계는 어떤가. 진정한 술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주당들 세계도 황폐하고 메말라 버렸다. 술 사주고 구전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외면하기 일쑤다가 어떤 건수가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술 공격을 퍼 부으려든다.
사업하다가 망한 친구, 소주 한 잔 사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지 못한 친구 있걸랑 넌지시 불러내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친구가 친구 아닌가. 직장에서 잘려 오갈 데 없는 친구 찾아 대폿잔이라도 기울이는 친구가 진정 친구 아닌가.
그런 주당들이 많아져야 사회는 밝아지는 것이다. 술이 좋아 그저 순수하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고, 술 값 계산 먼저 하겠다고 카드먼저 내미는 아름다운 풍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연출가 이해랑(1989년 작고)은 그가 현역이던 시절 두주불사(斗酒不辭)라고 불릴 정도로 술이 강했다. 그런 그인 만큼 평소 술친구에 대해 막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리 듣기 싫은 말도 술자리에서 친한 친구가 하면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해랑은 같은 방식을 배우에게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술의 순 기능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술은 역기능도 많아 항상 문제가 되지만 역기능보다는 순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인류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더위도 슬슬 한풀 꺾여간다. 여의도에는 핏발선 말들이 쏟아져 한 여름 더위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럴 때 대폿집이라도 찾아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눈다면 어떨까. 속 시원히 마음 터놓고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자는 말들을 쏟아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동명이 친구에게 시를 보냈다. “좋으니 나쁘니 잘났느니 못났느니 사람을 평가하여 줄 세우지 말자. 술을 즐기는 사람 모두가 다 친구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게다가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말은 몽땅 구름 잡는 이야기다. 우리는 흠뻑 취하지 않는 놈을 못난이로 본다.” “자네도 어서 빨리 오게나.”
권력이나 명예나 부를 거들먹거리는 속물스러운 사람들이 한번 쯤 읽었으면 하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