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우리 술, 전통주(傳統酒)


오피니언 칼럼

 

우리 술, 전통주(傳統酒)

金 洪 禹(한국전통주진흥협회 회장)

 

신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술은 대부분 그들 국가나 민족이 관통해온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생활문화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나라의 전통주를 민족문화의 정수(精髓)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집트에는 오천년 전에 맥주의 제조법을 가르쳐준 오곡(五穀)의 신 오시리스(Osiris)에 얽힌 설화가 있고 그리스에는 술의 시조라는 디오니소스(Dionysos)에 얽힌 재미있는 신화가 있다.

가까운 중국에도 최초로 술을 만들었다는 기원전 2천년 삼황오제(三皇五帝)기 의적(儀狄)과 우왕(禹王)에 얽힌 이야기가 후대의 역사책에 등장하고 일본에서는 중국과 대등한 양조기술을 보유했던 백제의 수수보리(須須保利)라는 이가 오오진 천왕(應神天皇, 270~312년) 때 도래해서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새로운 양조기술을 가르쳐주고 이후 주신(酒神)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일본 역사서인 고지끼(古事記)에 실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중국의 삼국지위지동이전 등에 술과 가무를 즐기는 민족으로 기록되어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책인 고려후기 이승훈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의 부모인 해모수와 유화(柳花) 부인에 얽힌 재미있는 신화로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에도 제례(祭禮)와 세시풍속, 행례(行禮)는 물론, 연회, 무속, 농어업 등 노동, 손님접대 등 주도(酒道), 심지어 부녀자의 음주 풍속은 물론, 음악과 문학 속에서 다양한 시대에 선조의 살아온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소재로 도도하게 스스로의 위상을 정립해왔다.

특히, 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日帝)강점기 이전에 막 걸러서 먹는 막걸리와 집집마다 특색 있게 담가먹었던 수십만 가지의 가양주(家釀酒)를 제외하고도 문헌상에 나와 있는 소위, 지역마다의 족보(族譜)있는 명주만 하여도 300여종이 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계사에서 검증이 된 것처럼 침략국의 식민지에 대한 지배방식은 철저한 문화말살과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이다.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과 다양한 식량자원의 수탈을 위한 우리 술 전통주에 대한 탄압은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치밀하고 가혹했으며 통치기간 또한 길고 길었다.

이미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던 조선왕조를 무시하고 한일병탄 한 해 전인 1909년에 주세법을

제정하고 1916년에는 술의 제조면허 등이 한층 강화된 주세령(酒稅令)을 반포하여 문화말살과 식량수탈의 목적으로 사실상 가양주 제조를 금지시켜버렸다. 을사늑약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사설로 유명한 장지연(張志淵)의 절기마다, 지역마다, 가정마다 만들어 마시던 우리 술의 사망을 한탄하는 심경을 다룬 글은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세(酒稅)가 오르니 마시는 세(稅)도 오르리, 이제는 행화촌(杏花村)의 봄 술도 적어지네.

원적(院籍) 등도 흥미를 잃으니, 쓸쓸한 가을밤에 이소경(離騷經)이나 읽세.”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우리 술 전통주의 자리를 채운 것이 오늘날 대중들의 술이 되어버린

에탄올(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타서 도수를 맞춘 희석식 소주 등이다.

해방 이후에도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식량난은 우리 술의 복원을 어렵게 하였고 겨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하여 그나마 몇몇 종의 전통주가 복원되었고 2010년 전통주의 진흥업무가 국세청에서 농림수산식품부로 이관되었지만 2007년 이후 한류 영향으로 잠깐 반짝했던 막걸리 붐을 제외하고 희석식소주 등 대중주와 수입산 주류에 밀려 아직도 전통주는 명절 선물용 등 몇몇 주종을 제외하고는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민족문화의 정수이고 100% 국산원료를 사용함으로써 안전성이 담보되는 우리전통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의식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전통주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국회의원들과 기업인이 중심이 되어 여섯 가지 타입의 현대적 감각을 살린 ‘전통주공동주병’이 만들어져 전통주산업의 근본적인 애로요인이었던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 던진 새 옷으로 치장하고 대중 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일부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술 전통주가 대중 속에서 또 세계 속에서 그 옛날의 화려했던 영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우선, 전통주를 고루한 옛 술 정도로 인식하는 대중의 인식 전환과 함께 생산과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 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온 불필요하고 숨 막히는 규제해소가 절실하다. 또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전통주의 현실을 직시하여 차근차근 전통주 산업화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적 배려도 절실하다.

근래,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일본 사케의 한국수출량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사케의 우수성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오천년 문화민족 운운하는 자존심 있는 국민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라고 일갈(一喝)한다면, ‘이제 우리 술의 진가에 대해 보다 큰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단지, 시대에 뒤떨어진 쇄국주의자쯤으로 매도되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내일모래면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다. 우리 모두 겸허하게 전통주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전통주는 우리민족의 문화적인 현재의 정체성과 미래를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국민이 지닌 저력과 자존심에 기대를 건다.

 

글 쓴이 김홍우 회장:▴단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학사)▴일본 동경대학 농업정책학 전공(석사)▴한식재단 사무총장 및 이사장 직무대행▴농림수산식품부 농어촌산업팀장▴농산물품질관리원 운영지원과장▴식품산업진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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