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칭다오 맥주 축제장에서 맛본 것들

허시명의 술기행

 

칭다오 맥주 축제장에서 맛본 것들

 

 

지난 여름 칭다오 맥주 축제장을 다녀왔다. 인천에서 가장 가까운 이국땅, 산동반도 칭다오에서 술 축제가 어떻게 구성되고 치러지는지 궁금했다. 해마다 8월 중순이면 칭다오에서는 맥주 축제가 열린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흉내 내서 1991년부터 열리기 시작하였고, 올해로 25회째를 맞았다.

칭다오 축제를 간다고 했을 때, 이미 갔다 온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요, 괜찮아요. 그래도 한번쯤 보는 것이 좋으니 가보세요. 그러면 아실 거예요” 정도였다. 한번 정도는 봐줄만하지만, 두 번 가기는 좀 그렇다는 심드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술을 즐기는 사람 속에 나 또한 술에 취하면 축제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서 가벼운 기대감에 칭다오 축제장을 향했다.

행사장은 비주성(啤酒城)이라 이름 붙여진 칭다오 시내 노산세기광장에서 열렸다. 칭다오시 박물관과 칭다오 대극장(大剧院)이 있는 광장이니, 도시의 문화 공간 중심에서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10위안(1,800원 정도),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는 20위안(3,6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았다. 동서남북에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는데, 입구마다 검색대가 있어서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려 했고, 경찰들이 나와 있었다.

행사장 안은 맥주 회사들이 설치한 대형 천막이 연이어져 있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흉내 냈다는 것은 이 행사장의 구성을 보니 쉽게 이해가 갔다. 행사장 남문으로 들어서니 칭다오 맥주 천막이 있고 그 옆에 뮌헨(慕尼黑:모니흑)의 호프브로이하우스 천막, 독일 크롬바커(猛士啤酒) 천막, 덴마크의 칼스버그(嘉士伯) 천막,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의 버드와이저(百威) 천막, 독일 파울라너(柏龙) 맥주 천막 그리고 다시 칭다오 맥주 야외 시음장이 이어졌다. 참여업체는 모두 대형화되고 다국적 기업이 된 맥주 회사 6곳이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 축제에도 대형 회사 6곳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곳에서는 뮌헨 지역에 근거를 둔 맥주 회사들만 들이는 구조라 칭다오 맥주 축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뭐랄까 그곳은 뮌헨의 전통 축제장의 분위기가 난다면, 칭다오는 그렇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다.

대형 천막 안으로 들어서니, 탁자와 의자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앞쪽에 공연 무대가 펼쳐졌다. 무대 위에서는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때로 춤을 추거나 곡예를 하고, 대형 붓글씨를 써서 경매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과 중국이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뮌헨 축제는 술을 마시는 사람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칭다오 축제는 무대 위의 마이크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앰프에서 울리는 소리가 귀청을 뚫을 듯했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트클럽을 광장으로 불러내놓았다는 착각이 들었다. 귀를 막아야 조금 견딜만했고, 그도 오래 있지 못하여 맥주를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와야 했다.

대형 천막 밖의 작은 천막에서는 안주 외 기념품을 팔았다. 국제 축제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만 컸지 외국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들도 좀 있긴 하지만, 여름철이라 바닷가를 찾은 내륙의 중국인들이 맥주 축제도 있고 하여 많이 찾는다고 중국인 안내인이 설명했다. 우리 일행들 중의 절반은 지난해 옥토버페스트를 함께 갔었기 때문에, 차라리 독일을 가기 전에 이곳을 왔었으면 감동이 컸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닮은 게 또 있었다. 광장 한쪽으로 대형 놀이 시설이 들어와 있었다. 술 축제장은 어른들의 놀이터라 가족들이 함께 오면 청소년이나 아이들이 할 게 없다. 이를 위해 뮌헨이나 칭다오나 놀이시설 공간으로 축제장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평가는 칭다오 축제는 좀 엉성하게 옥토버페스트 축제장을 닮아있었다. 우리 일행은 별 아쉬움 없이, 묵묵하게 축제장을 벗어날 수 있었고, 좀 한적하게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다.

칭다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독일인들이 살던 구시가지의 풍경과 칭다오 맥주 박물관이 있는 맥주 제조장이었다. 독일군들이 칭다오를 강압적으로 조차한 것은 1897년이었고, 1903년에 독일과 영국 기술이 합해져서 칭다오 맥주 제조장이 세워졌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1916년부터는 일본인들이 칭다오 맥주를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칭다오 맥주 제조장은 외세에 의해서 40년 넘게 관리되고, 1945년 이후에는 중국 정부에 의해서 관리되어 왔고, 1993년에는 주식이 상장되어 자본 시장에 나와 국제 기업이 되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도, 초창기 시설이나 모습을 유지하여, 2003년에는 4천만 위안(약 70억 원)을 들여 칭다오 맥주 박물관을 설립했다.

칭다오에서 맥주 축제가 열리는 것은 이 맥주 제조장과 맥주 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술 전시장과 박물관은 여느 박물관이나 전시장과 달라야 한다. 술 축제장도 여느 축제장과 달라야 한다. 술을 만들거나 즐기는 고유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는 시내에 오래된 펍이 있다. 펍의 문화가 광장으로 확장되었고, 축제 기간에는 폭발적으로 펍 문화를 즐긴다. 칭다오는 2003년에 구축한 맥주 박물관이, 맥주 축제장의 산만함을 모두 상쇄시켜 줄 만큼 힘이 있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의 규모는 6천㎡이며, 백년 역사 문화관, 제조 과정 전시관, 기념품 판매 시음 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백년 역사 문화관에서는 흘러온 역사, 수상 경력, 방문했던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자취가 담겨있고, 제조 과정 전시관에서는 재료, 생산 과정, 예전 발효통과 숙성통, 연구 직원의 영상 들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맥주에 들어간 꽃인 홉을 주화(酒花, 술꽃)이라고 소개한 공간이었다. 주화의 성장 과정과 홉의 생김과 향기를 잘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견학로 중간 즈음에 시음장이 있었다. 실제 맥주를 병입하는 제조장을 지나, 술 취했을 때의 신체 반응을 느낄 수 있는 체험관 취주소옥(醉酒小屋)을 지나면 기념품 판매장이 나왔다. 술병, 술잔, 술병따개, 티셔츠, 발효 화장품 등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었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를 나오면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맥주 바가 나오고, 그곳을 나오면 박물관 밖의 술의 거리가 나왔다. 칭다오 제조장이자 박물관 밖은 온통 맥주 거리였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맥주는 살균하지 않은 신선한 생맥주인 원장(原裝) 맥주였다.

맥주 거리에서 우리가 마신 맥주는 당연히 원장 맥주였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기에, 우리는 한 모금이라도 더 맛보면서 그 맛을 기억하려 했다.

술 축제장이나 전시장에는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 칭다오 박물관을 돌다가 만난 시음장은 오아시스와 같았다. 만약 음식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무 것도 맛보지 못하고 나온다면 다시는 그곳을 가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돌아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선물하거나 건네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말한다면, 감동은커녕 원망만 살 것이다. 그래서 술 축제장, 술 박물관, 술 전시관 옆에는 술 제조장이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에서 칭다오 맥주 축제장까지는 30km나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내고 있었기에 술 제조장과 거리가 먼 축제장이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칭다오 술 축제는 16일 동안 진행된다. 토요일에 시작하여 세 번째 토요일을 거친 다음날인 일요일에 행사가 끝난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도 16일 동안 진행된다. 설비 비용만 하더라도 한 개당 1억 원이 넘는 비싼 천막 텐트를 치고, 수천 개 탁자와 의자를 내놓고 진행하니, 투자비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어느 곳에서 진행되든 술 축제는 위험하다. 지나치게 몰입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쉽게 감행하기 어렵고 기업이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술 축제는 도시가 감싸 안아야 하는 도시 축제가 되어야 지속할 수 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는 술을 위해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왕자와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열리는 잔치였다. 그 잔치에 술이 등장하고, 술을 즐기다보니 술이 주인 된 축제가 되었다. 축제가 자리 잡는 초창기에 뮌헨시가 개입했고, 축제의 첫날 뮌헨 시장이 첫 술통을 열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칭다오 맥주 축제를 보면서는 광장의 나이트클럽, 도시의 뒷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또한 도시가 감당하는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