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은 소주부터 시작하나…지방 제조사 포스터의 경고
최근 대선주조가 파격적으로 선보인 포스터가 지방 소멸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소주회사 포스터에 등장하는 모델은 빠지고 지방 소멸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광고를 넘어, 지역 주류 회사마저 수도권 일극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지역 경제는 수도권 집중화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방 인구 감소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소비 기반 자체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 같은 현실은 각종 지표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본부의 월간 경기 전망 조사 때마다 300여 개 지역 중소기업의 부정적 응답이 꾸준했으며 2023년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2015~2021년 수도권 인구 증가의 78.5%가 청년 유입에서 비롯됐고, 청년 유출의 약 80%가 동남, 호남, 대경권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지역 소멸 심화와 함께 향토 기업들의 생존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수도권 주류 대기업들의 독과점, 마케팅으로 인한 막대한 자본은 오랜 세월 지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지역 소주 업체들을 고사 직전으로 몰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소매 시장에서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양사의 소주 점유율은 이미 독과점을 넘어서 80%에 육박한다. 주류 업계에서는 유흥 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수도권 대기업의 점유율이 9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위기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선주조(부산), 한라산(제주), 무학 좋은데이(창원·경남), 보해양조(전남), 금복주(대구·경북), 선양(대전·충남) 등 각 지역을 대표하며 오랜 시간 그곳의 문화와 함께해 온 향토 소주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도권에서 만들어진 거대 자본의 공세 앞에서 이들 지방 업체들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을 앞세운 전국구 소주 브랜드들의 공세 속에서 지역 소주 업체들은 마케팅 및 영업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수도권 대기업의 연간 광고선전비(하이트진로 1840억, 롯데칠성음료 1265억 – 2024년 공시 기준)는 지역 소주 제조사의 연 매출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부 지역 주류사의 경우는 9배 가량 차이나기도 한다. 주정 가격, 병·뚜껑 등 부자재 비용, 물류비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제품 출고가 인상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통계청의 ‘2024년 국내 인구이동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순유출 인구는 3년 만에 최대치(1만 3657명)를 기록했고, 수도권 3개 시·도로 순유출된 인구는 비수도권 14개 시·도 중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했다. 대선주조를 비롯한 지역 브랜드들은 100년 가까이 지역과 상생하며 정체성을 지키면서 급변하는 주류 소비 트렌드 대응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하는 힘든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기타 지역 소주 업계 관계자는 “지역민들의 변함없는 사랑 덕분에 수도권 대형 주류기업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주류 제조사가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지역사회의 소중한 일원이라는 점에서 지역 소주 업계에 대한 관심과 독과점에 대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수도권 일극체제는 단순한 경제 지표 악화를 넘어, 지역 소멸이라는 파멸적인 미래를 눈앞에 들이밀고 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지역 기업, 특히 지역 소주와 같은 상징적 산업의 몰락은 지역 공동체의 존립 기반마저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생존의 갈림길에 선 지역기업을 살릴 파격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즉각 단행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지역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의식 있는 소비로 꺼져가는 지역 경제와 지역 기업의 숨통을 틔워줄 최후의 보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