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전통주 박람회, 이제는 ‘시음’를 넘어 ‘이야기’로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보기(208)

 

전통주 박람회, 이제는 시음를 넘어 이야기

 

 

최근 전체 소비자의 주류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반대로 주류 전반, 특히 전통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과거에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술의 종류가 제한적이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주류가 유통되고 있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더 깊이 있게 즐기기 위해 공부하고, 브랜드나 양조장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주변 사람들과 그 술을 공유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주 박람회에 참가하는 소비자들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박람회를 찾는 관람객 중 상당수는 이미 해당 술의 양조장을 알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상태로 박람회를 방문해, 술을 직접 맛보고 생산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점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주류 매대의 다양한 술들 @이대형

이렇듯 현재의 전통주 박람회는 과거 전통주 박람회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과거 박람회나 전통주 관련 행사는 참관객 수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가장 큰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었다. 무료입장도 많았고, 대체로 연령대가 높은 소비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전통주 박람회는 젊은 세대가 ‘오픈런’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박람회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사람만 많이 모이는 박람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박람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양적인 성과보다는 박람회의 질적 성장, 즉 양조장과 관람객 사이의 깊이 있는 소통이 필요한 단계가 된 것이다. 박람회는 단순히 전통주를 시음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통주의 매력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관람객의 경험이 ‘맛있는 술’에서 멈추지 않고 ‘기억에 남는 술’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류 박람회를 기다리는 소비자들 @이대형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전통주 박람회는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다. 여전히 박람회의 성공 여부를 ‘참관객 수’에만 의존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물론 참관객 수는 박람회의 성과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참관객과 양조장의 소통도 중요시해야 할 부분이다. 참관객들이 단지 ‘공짜니까 마셔보자’라는 태도로 술을 소비하는 구조는, 대중 술과 전통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음이 단순한 소비로 전락하게 되면 그 공간은 술을 체험하는 공간이 아니라 ‘무료 음주 공간’이 될 뿐이다.

 

지금의 박람회는 시음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고, 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양조장들은 박람회를 통해 자사의 술을 알리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의 부스는 시음 중심으로만 운영된다. 물론 일부 소비자는 간단한 시음만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라도 술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양조장의 철학을 전하는 설명이 덧붙여진다면, 소비자의 몰입도와 만족도는 분명 높아질 것이다. 일부 양조장은 소규모(5~10명 단위) 시음회를 진행하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술을 제공해 관람객의 높은 만족을 끌어내기도 했다. 단순한 맛보기를 넘어, 설명을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양조장과 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주류 박람회에서 시음하는 소비자들 @이대형

또한 많은 박람회에서 부스 간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의 전통주 부스는 동일한 형태의 구조물과 제품 설명 플래카드만으로 구성돼, 부스를 이동할수록 각각의 술이 주는 개성과 특징이 흐려지게 된다. 몇몇 양조장은 자사 브랜드의 색깔에 맞춰 부스를 연출하거나 젊은 층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과 전시 기법을 활용해 관람객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자본의 규모 차이는 존재하지만, 색감, 소품, 설명 방식 등 소소한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달리할 수 있다.

 

박람회의 변화에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입장료의 현실화나 시음 쿠폰 제도를 도입해, 박람회가 단지 무료로 술을 마시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었던 사케 페스티벌의 경우,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 더 양조장 대표들과 이야기하고 술에 대한 궁금증도 물어보면서 술을 알고 양조장을 아는 시간을 만드는 것을 봤다. 비슷한 주류 박람회 구조였지만, 그 깊이는 사뭇 달랐다.

양조장과 이야기가 있던 사케 페스티벌 @이대형

 

결국 전통주 박람회의 중심은 ‘양조장’이어야 하며, 양조장도 이 공간을 단순한 판매의 장이 아닌 ‘자기 술과 철학을 알리는 장소’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브로슈어, 시음 설명 영상 같은 도구만으로도 소비자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꾸준한 차별화는 브랜드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로 연결될 수 있다. 아직 올해 개최될 전통주 박람회는 많다. 앞으로의 박람회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관람객과 양조장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박람회도 전통주도, 질적으로 성장할 시점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 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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