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술 이기는 장사는 없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술 이기는 장사는 없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사람들보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당들에게 술 마실 핑계 거리를 만들어 준 셈이다. 그 적당히 라는 수준이 어느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당들은 술을 입에 대기시작하면 끝도 없이 마신다. 딱 석잔 만 마시자고 시작한 술자리에서 정말로 석잔 만 마시고 일어나는 주당은 없다. 석잔 이 세병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풋술을 마실 때는 술 맛도 모르고 많이 마시는 것이 잘 마시는 줄 알고 퍼 마셨고, 장성해서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술집을 전전하기 일쑤인 것이 주당들의 주력(酒歷)이다.

직장인들이야 대놓고 해장술을 하긴 힘들어도 그렇지 않은 자유인들은 간밤 마신 술을 깨야 한다며 해장술을 마시다 보면 해질녘까지 마시게 되고 밤술까지 이어진다. 이런 게 주당들의 일상이었다.

서민들이야 그렇다 치고 대하소설 같은데 등장하는 문무에 능하고 기질이 호탕한 영웅호걸을 표현할 때 ‘술을 동이로 마신다’고 하니 졸개 주당들은 술 좀 한다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다.

한잔 걸쳐야 글이 나오지 맨 정신으로 무슨 놈의 글을 쓰느냐며 후배 문인들에게 술을 강권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그랬다간 선배 대접은커녕 잘 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호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술을 먹였다. 그래서 단골 술집 외상장부엔 외상 술값만 쌓여갔다. 변변한 안주도 없이 깡술을 털어 넣고 하늘이 돈짝만 할 때까지 마셨다. 그렇게 마셔온 술꾼들 상당수는 제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 사람이 먼저 되곤 했다.

술이 문학이요 문학이 곧 술이던 시절 시인 조지훈(趙芝薰)은 1956년 <신태양> 3월호에 ‘술은 인정이라’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조지훈은 이 글을 통해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현사(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酒道)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고 일갈했다.

그 유명한 조지훈의 酒道18段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주변에 술이라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 회식자리에서 남들은 일어나는데 한 병만 더 마시자며 주최 측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나 안쓰럽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이런 사람들은 술을 배울 때 아무렇게나 마셨을 것이다. 술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마시기 시작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 젊은 나이에 애주(愛酒)가를 넘어 지나친 탐주(耽酒)가 반열에 올랐던 사람일수도 있다.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면 우선 뇌기능의 장애가 먼저 온다. 전두엽손상과 중뇌손상에 의한 생활및 음주의 무절제와 성격의 변화 등이 나타나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주기 시작한다.

심하면 소뇌 손상에 의한 방향감과 현실성의 상실 등과 알코올성 치매로의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경고다. 이른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알코올로 인하여 신체에 일어나는 증상들은 암에 잘 걸리고, 췌장염이 잘 발생할 수 있는데 췌장염의 75%가 술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보고도 내놓고 있다. 간이나 위장에 손상을 주고, 성기능의 장애가 와서 발기가 잘 안되고 불임이 오기 쉽다고 한다.

특히 술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원인 중에는 심장마비나 감염증이 가장 흔하게 오기 때문에 의사들이 절주나 금주를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을 골백번 들었어도 이를 귓전으로 흘려듣던 젊은 날은 가고, 좋은 술 있어도 술병(病) 들어 마실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병풍 뒤에서 열반주(涅槃酒) 받아봐야 음복주(飮福酒) 마실 때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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