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아줌마의
전통주 입문기 4편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우리 술을 빚고 우리 술을 팔고 우리 술에 대해 알리고 하는데 행복하게 미쳐있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라 양조장 내라고 건물도 무상으로 빌려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웠던 사촌오빠의 사업이 점점 더 어려워져서 땅과 건물이 넘어가게 되었고 양조장을 옮겨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쁜 일은 나란히 손잡고 온다던가!
조금씩 조금씩 자리잡아가던 방배동 매장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조합원들의 불화가 자주 생기고 화합이 힘들어지고 서로의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협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 혼자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나는 잘했지만 다른 이들이 보는 눈이 어떤지 살펴야하고 정말 이건 아니다 하는 경우에도 할 수 없이 보듬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떠한 일은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옳고 그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굳이 ‘설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자기끼리 단합하고, 분명히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묵인하고 등등….
아무튼 심각하게 고심한 끝에 협동조합을 해산하기로 조합원들과 협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방배동 ‘미담’ 매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도 예약 문의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양조장을 옮겨야 하는 일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보다 더 방배동 ‘미담’ 매장을 폐업한 것이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방배동 ‘미담’은 저에게는 큰 꿈이었습니다.
우리 술을 팔고 우리음식을 더불어 파는 공간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넘어 잊혀진 옛것을 불러오고 받아들여 보듬고 가슴아파하고 하나 되어 전통과 현대가 즐기며 어우러지는 마당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이런 곳이 많이 생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선두주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다보면 방배동 ‘미담’ 매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
최선을 다해도 일이 되지 않을 때는 어렵지만 그냥 내려놓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을 해산하고 매장을 폐업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양조장 옮길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돈이 넉넉하다면 좀 쉬울 수도 있었겠지만….
2015년 9월 강원도 홍천으로 이전해 왔습니다.
양평에 양조장이 있을 때는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홍천으로 옮기면서 지낼 수 있는 작은 방하나 만들고 평수도 25평에서 50평으로 늘려서 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박합니다.
숫자만 늘었지요!
손님이 오시면 좀 더 편안하게 대접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전 후 첫술을 11월에 담기 시작해서 1월에 끝났습니다.
첫술을 빚으면서 바뀐 환경에 술이 잘 나올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내 마음을 알고 소통하는 술들이 잘 나올 것이라 믿으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아마 더 멋진 술들이 나올 겁니다.
지금은 홍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저녁 어떤 행사에 홍보차 참석하게 되었는데 놀라웠습니다.
행사는 이제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100명 이상 모이는 행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중국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요리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한 달에 한번 하는 행사인데 호텔에서 일하는 수석요리사들을 비롯해 7순이 넘은 원조 스승요리사를 비롯해서 여경래 요리사, 이연복 요리사 등등….
바쁜 시간을 쪼개서 후배들이 하는 이 행사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는 것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3만원의 회비를 내면 6가지 중국 정통요리와 여러 가지 술도 맛볼 수 있고 수석 요리사들이 하는 요리 시연도 몇 가지 보고, 경품도 타가는 그런 행사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행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저들처럼 원로 스승 요리사가 참석해주고 잘 나가는 요리사들이 참석해서 후배들을 격려해주고 끌어 줄 수 있을까 하는 면에서 그들의 끈끈한 우애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구요.
물론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술을 배우기 시작한지 거의 10년이 되어가고 양조장 허가 낸지는 4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11월부터 전통주 입문기를 쓰면서 한동안 잊었던 생각을 하며 나에게 묻습니다.
그때 품었던 ‘돈 아니고 술’이었던 초심을 잃지 않았나,
우리 술의 아픔은 지금도 공감하고 있나,
100년 만에 자리를 찾고 보니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벌거벗고 서있는’ 우리 술을 잘 보듬고 있나,
보듬은 술을 잘 열심히 실피고 있나,
조상님 네가 빚었던 참 술맛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맛을 재현해 보려고 마음으로 머리로 애쓰고 지금은 우리의 입맛도 외면하지 않고 같이 가려고 애쓰고 있나,
지금 힘든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지키려 노력하고 있나,
술 빚을 때 기본 원칙을 잘 지키며 요령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빚고 있나,
제대로 된 누룩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실천하고 있나 등등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은 굴뚝같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양조장을 내고 술빚는 기술자가 되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을 둘러보려고 노력합니다.
굳어져가는 생각을 유연하게 풀려고 애씁니다.
명주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