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술자리에 나타나는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희극적 반전

술자리에 나타나는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희극적 반전

 

박정근

(문학박사, 황야문학주간,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술은 인간의 일상적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 또는 집단적 삶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형태에 따라서 술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볼 것이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물론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건강을 위해서 술을 절제하거나 끊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 발생하는 상황이나 후유증도 다양하다. 우선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권하는 경우와 술을 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음주가들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형태도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 가면 권하는 사람과 사양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술이 인간에게 주는 도취감은 여전히 긍정적인 수용의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친 도취감으로 이성을 잃어버리는 음주행태가 파생시키는 혼란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술을 권하는 사람은 주로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술을 마시고 취하려고 한다. 사실 술은 혼자 취하는 것보다 함께 취하는 것이 분위기를 살리는 데 좋다. 그래서 술을 권하는 사람은 술친구에게 자연스럽게 술을 권하게 된다. 하지만 술을 절제하는 사람은 술을 권하는 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마시는 척하며 술을 권하는 사람의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음주를 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술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가학증적 충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술꾼의 도취에 따라오지 않고 명증한 사고를 유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공격적이 된다. 이런 증상은 가히 새디즘(가학증)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술꾼이 가학증적 충동에 의해서 술을 지나치게 강요할 때는 적절하게 사양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재치를 발휘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런데 마음이 약한 사람은 차마 강요하는 술잔을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마시는 것이다. 술이 좀 오르면 몸이 어떻게 되든 분위기를 위해 술잔을 든다. 이런 증상은 일종의 피학증(마조히즘)에 해당한다.

 

필자는 술자리에서 애주가이니 가학증의 권주가가 되고 술이 약한 친구들은 마조히즘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와 나는 대학원 시절부터 문학을 토로하며 술친구로 지내왔다. 나이가 젊을 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필자는 강골이면서 주당이어서 아무리 마셔서는 취하지 않았다.

친구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조금만 마셔도 취해버린다. 주당이라면 술잔이 채워지면 오래 두면 자격상실이다. 술잔이 채워지면 수분 내에 목구멍에 털어 넣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술을 마실 것을 요구한다. 친구끼리 취하고 홍콩(도취의 비속어)에 가자고 유혹한다. 필자는 그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몰아세운다. 그야말로 술꾼의 객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술이 약한 친구가 실력에 넘치게 마셨으니 다음 단계는 쓰러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필자는 음주에 있어서 새디즘의 주동자이고 친구는 마조히즘의 피해자가 된다. 이런 경우 인간관계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와 친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된다. 차수를 변경하면서 마시다가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에 들린다. 그는 술에 이기지 못하고 필자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이른다.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친구가 오지 않아 아무리 기다려도 떠나버린 친구가 올 리가 없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여럿이 마신 것도 아니고 단둘이 마시다가 도망을 가다니 말이 되는가.

다음날 전화를 걸어 온갖 악담을 늘어놓는다. 야, 이놈아! 친구란 놈이 술을 마시다가 친구를 혼자 남겨두고 혼자 갈 수 있어! 넌 인간도 아니다.

술파티 후유증은 늘 이런 식이다. 친구는 변명을 시작한다. 야, 내가 도망간 게 아니고 지하철 계단에서 잠들어 있었단다.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 그저 ‘날 잡아 먹어라’ 식으로 푸념을 늘어놓는 식이다.

 

술친구의 배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술자리에서 그는 보복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에게 술을 자꾸 권했다. 필자는 술이 당기는데 이게 웬 떡이냐며 친구의 적극적인 호응을 반겼다. 문제는 그 술의 권유가 진정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시는 척하면서 잔속의 술을 아래로 슬쩍 버리고 필자에게 술을 빨리 마시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이런 ‘술 주거니 받거니’ 게임이 반복되자 필자가 먼저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역전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일차 술자리에서 음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껴 술값을 먼저 계산했다. 대개 일차 술값이 많이 나오고 2차는 생맥주로 간단히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친구가 사겠다고 이끌었다. 필자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 그가 안내하는 생맥주집에 들어갔다. 소주로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맥주가 들어가니 취기가 쉽게 꼭지까지 올라왔다. 통상 술꾼이 그러하듯이 필자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하며 지껄이다가 깜빡 졸았다.

잠깐 조는 사이에 약간 썰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앞에 있어야 할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장에게 그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빙긋 웃더니 필자가 졸자마자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그가 술값을 냈냐고 확인했더니 필자에게 받으라며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아뿔싸, 이건 완전한 보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음주 새디즘의 주동자와 마조히즘의 피해자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허허 웃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허참, 요즘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네. 친구 놈이 이 까짓 술값으로 사기를 치다니!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가 자승자박이 아닌가. 필자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술값을 지불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아마도 또 다른 보복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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