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37)
진판델(Zinfandel)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 진판델의 인기
진판델은 미국 보스턴에서 1830년, ‘젠펜델(Zenfenda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어서 1850년대에 캘리포니아에 등장하였고, 1870년대부터 ‘진판델(Zinfandel)’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품종이 되었다.
그러나 1920년부터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재배면적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그 이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금주법 시대에도 가정에서 와인 만드는 것은 합법이었고, 일부 포도밭은 가정용 와인 제조를 위한 포도 판매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판델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선호했지만, 동부 해안지방까지 운반하는 긴 운송기간 동안 부패되기 쉬었다. 대신 껍질이 두꺼운 ‘알리칸트 부셰’는 부패될 우려가 적어서 이 품종과 그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 품종이 널리 재배되면서 서서히 그 이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급작스럽게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 미국에서는 레드와인보다는 화이트와인이 각광을 받던 시절이라서 레드와인용 포도로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수도 많았는데, 한 송이에서도 어떤 것은 붉고, 어떤 것은 녹색으로 숙기가 일정하지 않은 진펀델 포도가 이 시절에 로제나 화이트와인을 만들기에 적격이었던 것이다.
1972년 셔터홈(Sutter Home) 와이너리에서 ‘로제(White Zinfandel)’로 등장하면서 진판델은 미국에서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는 같은 그룹인 ‘트린체로(Trinchero Family Estate)’에서 알코올발효가 끝나기 전에 이스트가 사멸하여 발효가 중단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2주 동안 고민하다가 맛을 보니, 달고 색깔이 옅은 로제가 되어 있어서 이를 팔기로 결정하였다. 마테우스가 세계 2차 대전 후에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세미 스위트인 화이트 진판델도 대유행하게 되었다. 화이트 진판델은 아직도 미국 와인시장의 9.9%를 차지(가격으로는 6.3%)하며 레드 진판델의 6배 시장을 가지고 있다.
◇ 최근에 족보가 밝혀진 포도
이 진판델이란 이름의 품종은 유럽에는 없는 품종이라서 처음에는 미국 토종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면 미국 토종은 아니고 유럽에서 건너온 품종이 분명한지라 ‘족보가 불확실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학자들이 이탈리아 남부에서 자라는 ‘프리미티보(Primitivo)’가 진판델과 유사한 것을 보고, 이를 캘리포니아로 가져와 조사했더니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진판델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품종이라고 확신하였으나, 프리미티보가 이탈리아 정부 문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70년대로 미국보다 40년이나 뒤늦게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이탈리아 학자들은 프리미티보가 크로아티아에서 건너온 품종이라고 주장하여, 2001년, 캘리포니아 대학과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대학의 연구진은 크로아티아 해변가 포도밭에서 진판델과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스리예나크 카스텔란스키(Crljenak Kaštelanski)’ 발견함으로써 진판델의 족보가 확실히 밝혀졌다.
◇ 상표 표기 문제
유럽연합(EU)에서는 1999년 공식적으로 진판델과 프리미티보는 동일한 것으로 발표하여, 덕분에 이탈리아는 프리미티보를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상표에 진판델이라고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TTB(Alcohol and Tobacco Tax and Trade Bureau)는 프리미티보와 진판델을 별도의 품종으로 유지하기로 하고, 2018년에 진판델과 프리미티보는 미국에서 만든 와인의 상표에 동의어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 생리적 특성
진판델은 너무 덥지만 않으면 약간 더운 곳이라도 잘 자란다. 껍질은 얇지만 송이가 크고 빽빽하게 알맹이가 달리기 때문에 다 익은 송이에 곰팡이 끼기 쉬운 점을 제외한다면 비교적 키우기 쉬운 편이다. 당도가 높고 빨리 익는 것은 좋은데, 숙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동일한 송이에서 어떤 알맹이는 건포도같이 쭈글쭈글해지는데, 한 쪽 알맹이는 아직도 녹색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예 색깔이 애매한 로제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주 과숙을 시켜 디저트와인으로 만드니까 여러 가지 스타일의 와인이 될 수밖에 없다.
◇ 와인 양조
진판델은 현재도 ‘화이트 진판델(White Zinfandel)’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진판델은 포도의 숙기 조절과 와인메이커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진판델은 고급 와인을 만들 수 없는 품종으로 인식되어 값싼 대중적인 와인을 만들어 큰 병(Jug wine)에 넣어서 판매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21세기부터는 진판델의 재배방법이 개선되면서 숙기를 조절하여 깊은 색깔에 묵직하고 타닌이 많은 고급 와인을 만들어서 환영을 받고 있다. 껍질과 씨에서 타닌을 잘 우려내고 오크통 숙성을 거쳐서 알코올 농도가 높은 풀 바디의 와인으로 전문가들이 점수를 많이 줄 수 있는 와인이 된 것이다.
◇ 재배지역
진판델은 캘리포니아에서도 대량 생산 지역으로 유명한 중부내륙지방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재배면적도 넓어져서, 캘리포니아 포도밭의 10 %를 차지하고 있으며,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다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품종이다. 요즈음은 고급 와인산지인 나파나 소노마에서도 꾸준히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진판델 애호가 및 생산자 단체(ZAP, Zinfandel Advocate and Producer)’도 설립되어, 진판델이 미국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관능적 특성
서늘한 지역의 진판델은 래스베리 향이 많고, 더운 곳의 것은 블랙베리, 아니스, 후추 향이 두드러진다. 또 약간 덜 익었을 때 수확하여 만든 화이트 진판델은 고유의 향이 두드러지면서 담배나 사과 향으로 발전한다. 아주 잘 익었을 때 만든 레드와인은 딸기, 체리 등의 향이 좋고 블랙베리 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제부터 신선하고 가벼운 스타일, 보졸레 스타일, 미디엄 바디, 풀 바디, 타닌이 많고 복합적인 향이 나는 와인까지 워낙 다양한지라, 어떤 맛과 향을 지니고 있을까 호기심으로 가득 찬 기대감으로 마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