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38)
집에서 와인 담그기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 좋은 와인은 못 만든다
게다가 무게나 용량을 측정하는 기구가 없으니까, 10㎏을 사왔다고 해도 몇 송이 먹다 보면 와인에 사용되는 원료의 양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당도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이 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양질의 와인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자랑을 하면서 가까운 분과 직접 담근 와인을 마셔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 포도의 선택과 다루기
레드와인용은 적포도로 색깔이 진하고 단맛이 강한 것이 좋고, 될 수 있으면 포도 알맹이가 듬성듬성 달려 있는 것이 햇볕을 골고루 받아서 좋은 것이니까 알맹이가 꽉 찬 포도는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와인용으로는 부적합하다.
우리가 흔히 즐겨 먹는 ‘캠벨(Campbell Early)’이라는 포도보다는 ‘머루 포도(MBA)’라고 부르는 것이 와인 맛으로는 더 낫다. 화이트와인은 청포도를 사용하는데, 요즈음 유행하는 ‘샤인 머스켓’은 알맹이가 으깨지지 않아 즙을 짤 수 없으니까, 알맹이가 물렁물렁한 포도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화이트와인은 청포도를 으깨어 착즙하여 나오는 주스만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도를 씻지 않고 그대로 으깬 채 발효시켜야 한다. 포도를 씻으면 포도 알맹이가 물을 흡수해 당도 등 모든 성분이 희석되며, 더러워진 물이 상처 난 포도에 닿아 더욱 부패하게 하는 잡균 오염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도 포도를 씻고 싶다면 포도를 씻은 다음에 완벽하게 말려서 와인을 담가야 한다. 그러나 포도란 포도 알맹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라서 세척 후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물로 씻으면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많아진다.
그러면 포도에 묻어 있는 농약이나 이물질은 어떻게 될까? 발효란 효모라는 미생물이 생육하는 기간이라서 농약이 너무 많으면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발효가 진행됐다는 것은 미생물이 정상적으로 생육하고 번식했다는 증거가 되므로 그 정도라면 사람에게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즉 효모의 생육이 안전의 지표가 된다.
◇ 생수 통에서 발효
넓적한 스테인리스 용기에 레드와인용 포도송이를 넣고 주먹으로 으깬 다음에 가지를 제거한다. 이때 포도알맹이를 하나하나 전부 터트려야 한다. 껍질이 전부 벗겨져야 색소가 우러나오고 과즙이 나오기 때문이다. 으깬 다음에도 혹시 안 터진 포도가 있는지 하나씩 손으로 만져가면서 포도알맹이를 터트려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뭉개버리면 쓴맛이 우러나오니까, 껍질이 난도질되거나 씨가 깨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완벽하게 으깬 포도를 적절한 용기에 깔때기를 이용하여 넣는다. 용기에 으깬 포도를 채울 때는 용기의 80 %만 차도록 여유 공간을 두어야 한다. 발효가 시작되면 껍질이 위로 뜨고 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용기는 포도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플라스틱 생수 통이면 무난하다. 구하기 쉽고, 깨질 우려가 없고 내용물이 훤히 보이니까 다루기도 좋다. 깔때기를 사용하여 으깨진 포도를 생수통에 넣는다.
이때, 알코올 농도를 높이고 싶으면, 설탕을 넣으면 된다. 당분이 변하여 알코올이 되기 때문에 당도가 높을수록 알코올농도가 높아진다. 당분 농도의 약 절반이 알코올농도가 되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7-9 % 알코올을 가진 와인이 된다. 그래서 포도 10 ㎏에 설탕 1 ㎏ 정도 넣으면 알코올 12-13% 정도 되는 와인이 나올 수 있다. 주먹구구식이지만 그런대로 예쁜 색깔의 와인을 얻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입와인보다 훨씬 부드럽고 신선한 맛을 가질 수도 있다.
발효가 진행되면 탄산가스가 나오므로 완전히 밀폐시키지 말고 가스가 나올 수 있도록 장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넘쳐흐르거나 뚜껑이 빠져나와 곤란하게 된다. 병구를 랩으로 막아두면 가스가 올라오면서 랩이 풍선처럼 부풀게 되니까 발효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랩에 몇 개의 바늘구멍을 뚫어 주면 탄산가스가 쉽게 빠져 나간다.
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포도를 투입한 후 다음날부터 통을 흔들어 주는 일이다. 설탕이나 이스트를 첨가한 경우는 설탕이나 이스트가 골고루 섞일 수 있고, 발효가 일어나면서 껍질이 위로 떠오르는데, 그대로 두면 하얀 곰팡이가 낄 수 있기 때문이다.
껍질이 위로 뜨면 색깔이나 타닌이 껍질과 액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우러나오므로, 그대로 발효시키면 색깔이 옅은 와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어서 껍질과 액이 뒤섞이도록 해야 껍질과 씨에서 색소와 타닌이 잘 우러나오고 곰팡이도 끼지 않는다. 단, 화이트와인은 주스만 발효시키니까 흔들 필요 없이 그대로 발효시키면 된다.
◇ 단맛이 없어지면 발효 끝
발효란 당분이 변해서 알코올이 되는 과정이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도즙은 점차 단맛이 없어지고 알코올 농도가 높아진다. 가스가 나오지 않고 단맛이 없어지면 발효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즙을 짜면 된다. 이때, 가재나 포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스타킹을 깨끗이 씻어서 사용하면 편리하다. 병구에 스타킹을 씌우고 넓은 그릇으로 따라 내면서 자연스럽게 즙을 유출시키고, 나머지는 스타킹을 쥐어짜면 된다.
그리고 짜낸 즙 즉, 미완성 와인은 다른 용기에 넣어서 2-3 주 정도 그대로 두면 찌꺼기가 가라앉는다. 그러면 조심스럽게 따라내면서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한다. 화이트와인은 즙을 짤 필요가 없으니까 발효가 끝나면 그대로 2-3주 더 두었다가 조심스럽게 찌꺼기가 달려 나오지 않도록 윗물만 따라내면 된다. 이때부터는 냉장보관을 하는 것이 좋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면 실온에 두어도 별 문제는 없다.
다시 2-3주 지나면 찌꺼기가 또 가라앉는데, 이번에는 전번보다 찌꺼기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시 따라내기를 하고, 그대로 보관 중 또 찌꺼기가 가라앉을 수 있으므로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따라내기를 하면 아주 맑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와인은 몇 년 동안 숙성시킨다고 더 좋은 와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래 두지 말고 크리스마스나 연말 파티에 자신이 만든 와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즐겁게 마시면 된다.
일 년 이상 두면서 숙성된 맛을 보려면, 으깬 포도 10㎏에 아황산을 2g을 첨가하고 골고루 섞어준 다음에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미리 조제한 이스트를 투입하면 훨씬 안정된 발효를 할 수 있고, 색깔이 더 맑고 진한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이스트 조제 방법은 포도즙 100㎖에 이스트를 2g 첨가하고 한 두 시간 두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가장 활발하게 끓어오를 때 이를 으깬 포도가 있는 용기에 투입하고 통을 흔들어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