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驕慢이 지나치면
최근 도로나 정원에서 화살나무를 자주 만난다. 이 나무도 어렸을 적엔 자주 보지 못했던 탓에 외래종인가 싶었는데 우리나라 토종이란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생되고 있는 화살나무는 노박덩굴나무과 여러해살이식물식물로 학명은 Euonymus alatus이라고 한다. 속명으로 홋잎나무, 참빗나무, 참빗살나무, 챔빗나무로도 불리며 화살의 날개 모양을 닮았다 하여 화살나무란 이름을 갖게 된 모양이다.
뜬금없이 화살나무를 꺼낸 것은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여서다. 마치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같다. 집이 아파트 2층이라 창문을 열면 바로 화살나무를 만난다.
그래서 화살나무가 살아가는 과정을 엿보게 된다. 화살나무는 봄 햇살이 시작되면 가지 끝에서부터 옅은 새싹이 나오고 한 여름에는 진녹색 잎으로 어울려서 화살나무 줄기는 숨어버린다.
그러다가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뜨거운 태양을 제일 많이 받은 나무 정수리부터 붉게 단풍이 든다. 단풍든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화살처럼 생긴 가지들이 보인다. 나무 밑은 화살 맞은 전사자들이 흘린 피처럼 붉다.
이렇게 자연은 변해가는 것이다. 가을이 한창 익어간다. 들녘에 나가보면 잘 익은 벼이삭이 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이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 이삭에서는 한 여름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교만함을 찾아 볼 수 없다. 가을이 돼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는 벼 이삭은 아무 쓸데없는 쭉정이다.
알차고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열심히 일한 이삭에 비해 쭉정이만 생산(?)한 이삭은 속병이 들었거나 남들이 일할 때 농땡이만 쳐서 그러지는 않았을까.
실력은 숨기고 겸손은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 세상에는 실력도 없는 인간들이 어찌어찌하다가 권력을 잡고 기세등등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은 교만도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주교 교리가운데 칠중죄(七重罪)가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죄가 교만(驕慢)이다.
요즘 일부 정치가들 사이에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다. 국가에는 엄연히 삼권 분립(三權分立)이 존재한다. 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리한 것은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입법을 장악한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행정)하여 행정까지 이권(二權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사법까지 탐이 나는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는 지난 9월 24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와 이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당 회의에서 대법원장에 대한 압박이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지적에 “얻다 대고 삼권분립 사망 운운하느냐”고 했다. 정 대표는 페이스 북에서는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했다. 대통령들을 탄핵시켰던 것처럼 대법원장도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이 언론의 논조다.
만약에 그들의 바람처럼 사법부까지 장악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속담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이 있다. 말고삐를 잡고 걸어가던 사람이 어찌하여 말을 타고 가게 되면 자신도 남에게 고삐(경마:牽馬에서 유래된 말)를 잡게 하여 편하게 가고 싶은데서 비롯된 말이다.
어느 양조장이 메이저급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 후 취재 건으로 그 양조장에 연락을 취했더니 전문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하는 짓과 진배없다.
국회의원들만 어쩌고저쩌고 비판할 일이 아닌 것 같다. 국민들 모두 스스로가 교만하지 말고 겸손을 생활화 하면 그것이 곧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진리다.
<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