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밥과 술

『빈 술병』

 

밥과 술

 

시인/부동산학박사 육정균

 

가장 청정하고 풍요로웠지만 너무나 짧았던 가을도 어느덧 아쉽게 가고 입동(立冬)에 들어선 계절에 추위와 허기를 메워줄 밥과 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밥은 인간에게 단순한 영양분 공급원을 넘어 생존, 문화, 관계, 정서적 안정 등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밥(쌀)은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를 골고루 함유하고 있어 신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며, 성장 발육과 두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오랜 농경사회에서 밥은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밥심으로 산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신체적 활력과 건강을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 문화에서 “밥 먹었어”는 그냥 질문이 아니라 안부를 묻고 관심을 표현하는 인사말이며,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친밀감과 유대감을 나타내는 인간관계의 매개체 역할이었다.

농촌에서 일꾼에게 주던 농심(農心)이 가득 담긴 고봉(高峯)밥

한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처럼, 밥은 가족과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도 했다. 타인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시킴은 물론, 밥상머리의 가르침이나 식사 기도문처럼, 밥은 인생의 태도, 감사, 나눔의 철학을 배우는 장이 되기도 한다. “밥이나 먹고 다니는 겨?”라는 말은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뜻한 집밥”은 정서적 안정,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밥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필수 조건이자, 개인의 삶과 사회, 문화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의미이다.

 

밥처럼 인간의 생명과 삶에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더욱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술이 있다. 물론 술을 너무 즐겨서 중독에 걸린 사람은 술이 곧 밥이기도 하고, 술은 인간의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유대감 형성, 의례적 의미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술을 마시면 뇌의 보상회로가 자극되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불안이 완화되는 심리적 효과가 있으며, 집단 내에서 화해와 친목을 다지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종교적 행사나 의식에서 신과 조상에게 예를 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술의 긍정적 의미로서 우선 심리적 안정 및 스트레스 해소를 들 수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영향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지며, 불안감이 완화된다. 또한, 사회적 유대감 증진한다. 술자리를 통해 사람들이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술의 문화적·종교적 의미로서 오랜 과거부터 종교적 의식에서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축제와 같은 의례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선조들의 밥 위주 밥상

한국과 같이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술을 매개로 한 어색함 해소, 어려움이나 힘든 감정을 풀어내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의미보다도 부정적 의미들도 많다. 과도한 음주는 뇌 기능 저하, 알코올 중독, 우울, 학습 및 기억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는데, 알코올 중독은 암이나 치매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겪은 이들이 증언한다.

또한, 과도한 술은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술김에 하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술이 밥이 되는 중독성으로 쾌락을 주는 화학 물질인 도파민의 영향으로 술에 의존하게 되고 자칫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가정이나 사회가 철저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밥도 과식을 하면 건강을 해치지만, 술은 인간에게 커피 등 차 이상의 즐거움과 흥(興), 농경사회의 험한 육체노동을 할 때 자동차의 휘발유처럼 큰 힘을 발휘하게 했던 농주(農酒)처럼 인간의 생산활동까지 힘차게 한 밥의 보완재이자 농심(農心)이기도 하다.

밥과 고기 등 먹을 것이 부족하기만 했던 내 어린 시절, 6.25 전쟁 직후의 농촌에서도 어머니는 “일꾼들도 맛있는 밥을 많이 먹어야 일을 잘 할 수 있다.”며 부족한 쌀로 기름진 밥을 하시고, 된장, 고추장 등 장류와 아욱, 시금치 등의 소채류(蔬菜類)만으로도 맛있는 식사를 정성껏 만들어 머슴들과 일하러 오는 일꾼들에게 배불리 먹게 한 기억들이 있다.

소박하게 소주 한잔하는 소시민의 건배 “건강을 위하여!”

그런데, 최근 세종청사의 구내식당에서 밥을 자주 먹는데, 필자의 입이 고급화된 문제도 있겠지만, 쌀밥은 군대식으로 찌기에 괜찮은데 부식, 즉 반찬들이 너무 허접하다. “이렇게 맛없고 영양가 없는 음식을 먹고 이 나라 공무원들이 힘을 내어 국민에게 힘차게 봉사하길 바라는 걸까?” 사뭇 의심스럽다. 그것도 공짜도 아닌 단독 5천 원이라도 공공청사에서 셀프서비스로 먹는 점심치곤 너무 부실하다.

최근 이재용 삼성 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식사한 것이 화제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친근감 있는 바람직한 현장 경영 행보의 일환이지만, 최고 경영자가 구내식당을 직원들과 함께 줄 서서 이용한다는 것에 일부 위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무조건 환영이다. 최고 오너가 회사 구내식당을 즐겨 이용한다면 직영이든 위탁이든 최고의 식재료로 청결하고 영양 가득한 최고의 밥과 반찬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총리, 어떤 장관이든 고위직들이 정부청사의 구내식당을 말단 공무원들과 같이 자주 줄서서 식사를 해야 박봉에 힘 빠진 공무원들의 건강과 국민에 대한 봉사가 한층 향상될 것이다. 직원들에게 사비를 털어서 술 한 잔은 안 사줄망정….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현) 국토교통부 민원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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