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41)
옛날에는 물보다는 ‘술’이 더 안전했다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인근 맥주 공장 직원들은 콜레라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매일 맥주를 마시기 때문에 이 펌프의 물을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맥주를 만들 때는 맥아즙을 끓이기 때문에 살균과정을 거치게 되어 콜레라 박테리아가 없는 안전한 음료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한 미생물 오염이나 살균이란 개념이 희박했을 때이다.
오염된 식수
원시시대부터 인간에게 물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좋은 수원을 확보하여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상 대부분의 문명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곳은 수원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근의 우물, 강, 호수, 및 저수조에서 마을에 물을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도 보기에 깨끗한 물이라도 마시기에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7세기의 비잔틴 의사인 바울(Paul)은 이렇게 기록했다. “모든 것 중에서 물은 양생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가장 좋은 물은 맛과 냄새가 없고, 마시기 가장 좋고, 보기에도 순수해야 한다.” 또 다른 문헌에서는 “시원한 우물물이 갈증 해소에 좋지만, 빗물이 더 좋다.” 그리고 위장에 미치는 냉각 효과를 피하기 위해 식사 중에 물을 마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와인을 마실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렴풋이 위생적인 물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미생물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서 밝혀지기 전까지는 와인과 맥주가 물보다 안전한 음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카’(Posca)
옛날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물을 비롯한 모든 음식물이 쉽게 상하고, 이러한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을 비롯한 술은 발효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스트 이외의 미생물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병원균의 침투가 있을 수 없었고, 또 발효 후에는 생성된 알코올로 인하여, 거의 무균 상태에 가까운 위생적인 음료였다. 이런 이유로 고대 로마 시절부터 병사들은 전투식량으로 일정량의 와인을 지급받아 외지에 갈 때는 이를 물과 함께 섞어 마셨다. 이를 ‘포스카’(posca)라고 했는데, 로마 군인들이 음료로 사용했으며, 여기에는 물과 와인이 변한 식초까지 들어가 있었다. 식초 성분이 항균작용을 하여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만드는 작용을 하므로, 포스카는 전쟁이나 행군하는 병사들에게 안전한 물과 에너지 그리고 전해질을 값싸게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성경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마지막으로 마신 ‘신포도주’는 바로 포스카였다. 고대와 중세 전쟁에 와인은 필수품이었고, 와인은 반드시 군수품에 포함되었고, 군은 전쟁 때 많은 와인을 확보해야 했다. 와인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그들이 마실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액체였다.
지리상 발견의 필수품, 와인
그리고 지리상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오면서 와인은 장거리 항해에 필수품이 되었다. 돛단배를 타고 몇 개월씩 항해할 때 이들의 식수는 어떠했을까? 오늘날의 수돗물도 얼마 안 되어 못 먹게 되는데, 썩은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심각한 위생과 영양 상태를 가장 뼈저리게 느낀 사람은 선상 의무감이었다. 이때도 물 대신 술이었다. 이들의 위생과 영양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와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맥주도 좋겠지만 맥주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이 흠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초대 총독 ‘얀 반 리베에크(Jan. Van Riebeck)’도 선상 의무감으로 의사였다. 부하들에게 남아프리카의 지중해성 기후가 포도재배에 적합하다고 설득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헨리 존 린드먼(Henry John Lindeman)’,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드(Christopher Rawson Penfold)’ 역시 의사 출신으로 장기간 항해에서 와인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와인 양조를 시작하였다.
물보다 안전한 술, 커피, 차
이렇게 유럽에서 술이 가장 안전한 음료로 인정받고 있을 때 커피와 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피와 차는 물을 끓여서 마시기 때문에 또 다른 안전한 음료였다. 술과 커피와 차는 인간의 위생생활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물보다 와인이나 맥주가 더 위생적으로 완벽했다. 와인은 알코올농도가 높고 항산화 물질이 있었고, 맥주는 맥아즙을 끓여서 식힌 다음에 발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은 마시지 않고 와인이나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세 시대에는 물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물보다 맥주를 마셨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과장된 이야기이다. 깨끗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오랜 역사를 통해 지속된 것은 사실이다. 맥주가 물보다 더 안전한 대안으로 여겨졌다는 것은 대중적인 신화지만 실제로 맥주는 수분 공급 방법이라기보다는 영양가 있는 간식이었다. 당시 맥주는 알코올농도가 1~3% 정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
인류는 처음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하천 및 지하수에서 얻었다. 점차 도시가 형성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자 우물로는 양적 부족과 질적으로도 위험하게 되었다. 더욱 깨끗한 하천수의 사용도 인구의 집중으로 오염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위생적인 수도를 만들어야만 했다. 고대의 수도는 모두 이러한 경과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상수도를 이용하여 깨끗한 물을 보급하고, 하수도를 이용하여 오수를 분리하여 버리면 식수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수인성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오염된 물이 상수도 취수장에 섞여 들어갔기 때문이다. 상·하수도가 보급되면 보급될수록 더 넓은 수원이 오염됐고 전염병이 퍼졌다.
프랑스의 파스퇴르(1822-1895)와 독일의 코흐(1843~1910)가 미생물에 의해서 질병이 발생한다는 질병에 대한 미생물설을 정립하고 입증한 후에, 학자들은 염소를 수돗물에 투입하면 세균이 없는 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파악했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1908년 미국에서 최초로 수돗물에 염소 소독법을 실시하였다. 덕분에 전염병 예방은 물론, 인류의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났다. 인류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수돗물을 꼽는다. 이처럼 우리가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수돗물에 염소 소독을 시행한 1910년대 이후부터다. 그러니까 “술이 물보다 안전하다.”라는 문구는 현대에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옛날이야기’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