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한국적인 술’은 무엇인가, 기준부터 다시 세우다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 보기(215)

 

 

한국적인 술은 무엇인가, 기준부터 다시 세우다

 

 

 

K-푸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그 근간이 되는 한식 전반에 관한 관심 역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통주는 분명 한식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확보했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이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한국적인 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더 분명한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정의가 전제되어야만 해외 시장에서 차별성을 갖춘 전통주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정의가 국내에서도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전통주를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회적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한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만들고 마셔오던 술’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기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막연함은 전통주를 설명하고, 나아가 세계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한계로 작용한다.

 

한식속의 전통주의 모습 @제미나이 생성 그림

전통주를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 전제는 ‘한국적인 술’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문화와 제품이 세계로 나아갈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오래된 화두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술의 경우, 일본 사케와의 비교 설명이 관성처럼 따라붙는 점이 늘 고민으로 남는다.

 

사케는 전통주와 제조 원리상 유사한 지점을 갖고 있어 비교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두 술 모두 쌀을 주원료로 하며,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되는 병행복발효 방식을 사용한다. 또한 곰팡이를 활용한 발효제, 즉 일본의 입국과 우리나라의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겉으로 보기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공통점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며, 세부 제조 방식으로 들어가면 두 술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쌀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 사케처럼 고도정이 가능한 양조용 쌀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주 제기된다. 물론 양조에 적합한 쌀 품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 자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양조용 쌀은 쌀의 외층에 분포한 단백질과 지방을 최대한 제거하고 전분 중심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품종이다. 이러한 전분을 효모가 발효하면서 효모의 향을 최대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는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는 일본식 제조법에 최적화된 방식이지, 누룩을 사용하는 우리 전통주 제조 방식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양조용쌀(좌, 야마다니시키)과 식용쌀(우)

우리 전통주는 역사적으로 밀 누룩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밀 누룩은 단백질과 지방을 상당량 포함하고 있으며, 다양한 미생물이 공존하는 복합 발효제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조건에서 쌀을 일본식으로 많이 도정해 전분만 남긴다고 하더라도, 밀 누룩을 사용하는 순간 도정의 의미는 크게 희석된다. 결국 쌀의 구조보다 누룩의 성격이 술의 풍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론 쌀을 입국, 즉 백곡균 형태로 가공해 사용하는 경우라면 양조용 쌀의 도정과 품종 특성이 일정 부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막걸리처럼 제성 과정에서 쌀 지게미를 그대로 포함하는 술에서는 고도 정미한 쌀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본식 양조용 쌀의 장점이 뚜렷하게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은 맑은 술에 한정된다.

누룩(좌)과 입국(koji)(우)의 차이 @한국학중앙연구원(좌) Getty Images(우)

이 지점에서 정체성의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일본식 입국과 고도정 쌀을 기반으로 술을 빚게 되면, 제조 방식 자체가 사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는 ‘한국적인 술’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기보다, 사케를 한국에서 재현하는 방식에 가까워질 위험을 내포한다. 우리에게도 분명 우리 술에 적합한 양조용 쌀 품종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은 일본 사케의 잣대가 아니라 우리 전통주 제조 방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양조용 쌀에서 논의되는 심백의 유무나 연질미 여부와 같은 조건들은 일본 사케 양조를 전제로 정립된 개념을 빌린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러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누룩을 사용하는 우리 술의 특성을 반영한 양조용 쌀의 조건을 먼저 정의하고 그에 맞는 품종 개발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유통되는 쌀 품종만으로도 다수의 양조장이 큰 문제 없이 술을 빚고 있다는 점은, 우리술에서는 쌀 품종 자체보다 제조 철학과 공정 설계가 향미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임을 시사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 전통주와 사케의 차이는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케는 고도 정미한 쌀을 발효한 뒤 여과와 살균 과정을 거쳐 맑고 투명한 형태로 완성되며, 단일 곰팡이인 황국균을 중심으로 한 통제된 발효 구조를 통해 깔끔하고 정제된 맛을 지향한다. 반면 막걸리와 약주를 포함한 우리 전통주는 누룩의 복합적인 미생물 구성에 따라 향미의 스펙트럼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막걸리는 제성 과정에서 쌀 고형분의 유지 여부에 따라, 약주는 다양한 제조법과 여과 정도와 첨가물의 사용 여부 등에 따라 질감과 맛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전통주의 특성은 관리의 어려움이라는 한계를 동반하지만, 동시에 지역성과 양조자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강점이기도 하다.

탁약주 제조법
사케 제조법

약주와 사케의 제조법상 큰 차이는 없다

 

 

한국 전통주의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사케와의 비교에서 우위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케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 술의 제조 구조와 논리를 스스로 정리하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적인 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곧 누룩, 발효, 지역성, 그리고 변주를 허용하는 제조 철학에 대한 재정의로 이어진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전통주는 단순한 지역 주류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인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 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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