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신년 인터뷰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

신년 인터뷰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

 

이젠 막걸리를 國酒로 육성 발전시킬 때가 되었다

농민이 잘살 수 있는 길은 쌀 소비 많은 막걸리로 해결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
㈜ 조은술 세종 대표

계절은 한겨울이지만 기후변화 탓인가 어느 날은 봄날 같기도 하고 하루 새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을 연출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전통적인 삼한사온은 사라지고 ‘일한일온(一寒一溫)’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애꿎게도 기상청 예보관들만 핀잔을 듣게 된다. 기자가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회장을 찾은 날도 기상 예보에선 눈도 많이 내리고 기온도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도로상태가 엉망일 것으로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날씨는 봄날 같았다. 다행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양조장. 이승애 시인(조은술 세종의 경기호 대표의 부인)이 직접 지은 시부터 술에 대한 시들을 써 놓은 항아리들이 즐비한 ‘조은술 세종’은 첫인상부터가 좋았다.

경기호 회장이 한국막걸리협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이 올해로 3년째다. 경기호 회장은 막걸리협회 창립멤버로 그동안 부회장으로 협회 발전에 기여해 왔는데 3년 전부터는 직접 선두에 서서 협회를 이끌고 있다.

경 회장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막걸리 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하여 청주에 자리 잡고 있는 세종을 찾았다.

 

대통령이 막걸리라고 부르자고 했다

생뚱맞게 경 회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막걸리’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경 회장은 “막걸리는 발효식품의 대표주자로서 우리의 혼이 녹아 있는 민족을 대표하는 술이다. 특히 막걸리는 한국 술의 원천이 되는 술로서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먹어야 하는 가치 있는 술”이라고 했다.

경 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떳떳하게 ‘막걸리’입니다라는 답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홍보도 하고 세계인들이 ‘한국의 술’은 막걸리라고 인식할 때까지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막걸리는 농부가 마셔서 농주, 백성이 즐기는 술이라서 향주, 곡식으로 빚어서 곡주라고 하고 색깔이 탁하다 해서 탁주(濁酒)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순우리말인 ‘막걸리’를 유식하게 한문으로 부른 말이지 않겠는가. 오죽했으면 2009년 막걸리 바람이 한창일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막걸리 양조장 사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놓고 “막걸리라 불러야 맞습니까, 탁주라 불러야 맞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장들이 “막걸리라 부르는 것이 맞다”라는 의견을 내놓자 “그럼 앞으로는 막걸리라고 부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막걸리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정확한 연대는 모르지만 텁텁하고 구수한 그 한 사발이 2000년의 세월 동안 고단한 백성들에게 위로의 한 끼가 되어주었다는 것인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난히 막걸리를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은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천상병 시인처럼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술이 막걸리다. 그만큼 막걸리는 우리 일상에서 밥처럼 존재하며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오고 있다. 소반에 차려진 밥상이라도 막걸리 한잔 떡하고 받치고 있으면 무엇이 부러우랴.

1. 경기호 회장이 올해 중점으로 추진할 사업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막걸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어야 한다

상당수 국가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다. 중국은 백주(白酒:바이주, 속칭 빼갈), 일본은 사케(淸酒라고 함), 프랑스는 와인·코냑, 독일은 맥주가 있다. 이들 술이 나라를 대표한다. 백주 하면 통칭 중국 술이라고 생각하지 어느 지방 술인가를 따지며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외국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 하는 술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왔을 때 무슨 술이라고 말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흔하디흔한 소주라고 할 것인가, 맥주라고 할 것인가. 세계적으로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희석식 소주를 “우리 술이요”하고 내놓기는 낯간지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경 회장은 이 같은 질문에 “당당하게 막걸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 막걸리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우리문화 속에 녹아들도록 막걸리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막걸리의 현주소는 호텔 벨보이로부터 괄시받는 경차 꼴이라고나 할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막걸리는 싼 술이어서 고급스럽지 않다는 인식, 누구나 쉽게 빚을 수 있는 술, 생막걸리의 경우 유통과정이 짧아서 시간이 지나면 맛이 변한다는 술이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출하되고 있는 막걸리 가운데 고급진 술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좋은 막걸리가 출하되고 있다.

과거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오던 시절의 막걸리와는 천양지차이다. 첫째는 어느 양조장을 막론하고 위생적으로 막걸리를 빚고 있으며 유통구조 역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술 빚는 과정 또한 과학적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경 회장의 지론이다.

한국막걸리협회는 지난해 12월 한국막걸리 산업을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막걸리산업발전 자문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막걸리 빚기 유네스코 등재 강력 추진

경 회장은 우리의 막걸리가 현재 K컬쳐, K푸드처럼 세계화 바람을 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걸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년 전부터 막걸리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경 회장은 “막걸리 유네스코 등재 추진을 위해 이미 막걸리 빚기가 2021년 6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 144호로 인정받았으며, 막걸리의 우수성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막걸리 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고 했다.

축제에선 막걸리 빚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막걸리가 단순한 술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경 회장의 설명이다.

막걸리 빚기가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막걸리의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막걸리는 한국의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한국 술로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막걸리의 연구·보호 및 산업발전이 촉진될 수 있다. 따라서 유네스코 등재는 막걸리 양조법과 문화에 관한 연구와 보호 활동이 활발해지고, 관련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경 회장의 생각이다.

이로 인한 부수적으로 관광 및 문화교류 활성화가 이루어져 세계적 홍보 효과로 관광객 유치와 다양한 문화교류가 기대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경 회장은 “막걸리의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한 술의 등재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막걸리 업계의 최대 숙원사업은 막걸리 빚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것.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다.

막걸리가 한때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된 적도 있었다

지금 술을 팔 수 있는 일부 식당에서는 ‘막걸리’를 취급조차 하지 않는 식당도 있지만, 한때 막걸리가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10대 히트상품’ 설문조사를 벌여 지난해(2008년) 최고 히트 상품으로 막걸리를 선정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술집에서 막걸리를 먹기 위해선 오픈런을 해야 했다. 막걸리를 선점하여 식탁에 올려놓아야 했던 시절, 막걸리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막걸리를 선점한 손님에게 사정하여 분양(?)받아 막걸리를 마시던 시절도 있었다.

막걸리의 인기는 당시 식을 줄 모르며 고공행진을 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막걸리는 이미 트렌드이자 뜨거운 아이콘이 됐다.

2000년대 후반 웰빙과 복고 바람을 타고 돌아와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2009년 최고 히트상품이 된 막걸리.

당시 막걸리에 찬사는 대단했었다. ‘막걸리’ 하면 세련된 술,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술, 막걸리에 들어 있는 유산균의 함유량이 요구르트 500병에 달할 정도로 풍부하고 식이섬유 또한 풍부하여서 변비 치료 및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주류시장에서 와인을 제칠 정도로 놀라운 열풍을 불러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짜 막걸리 열풍은 전체 술 소비량의 60~70%를 차지했던 1970년대이다. 최대 생산량을 기록한 1974년 생산량은 168만 킬로리터였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막걸리가 침체기를 맞게 된 것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해외여행 자유화와 수입 자유화로 서양 술이 들어오면서부터다. 1990년대 들어서자 막걸리는 전체 술 소비량의 3~4%대로 추락하면서 맥주와 소주에 국민주 자리를 넘겨주었다.

막걸리 양조업계에서는 그때의 추억을 그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막걸리 붐을 일으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 옛날이여.

지난해 우리술축제 개막식에서 막걸리 유네스코 등재 및 세계화법 추진을 선포했다.

막걸리 산업을 키워야 농민이 잘산다

막걸리를 빚는 주원료는 쌀이다. 물론 옥수수나 보리 고구마 같은 작물로도 막걸리를 빚지만, 일반적으로는 쌀이 주원료다.

쌀과 술의 비율은 6.4대 1이다. 술 1말을 얻기 위해선 쌀 6.4말이 필요하다. 만약에 막걸리를 증류하여 소주를 내릴 경우는 8대 1이 된다. 술만큼 쌀 소비가 많은 식품도 없으므로 정부가 쌀 소비를 늘려 농민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선 양조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시켜야 한다.

또 “일본의 사케처럼 정부에선 양조하기 위한 쌀은 한국쌀가공식품협회(1993년 설립)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경 회장은 주장했다.

양조장 입장에선 가공협회를 거치면서 쓸데없는 수수료를 내야 하고 절차적으로 번거로워 이를 직거래로 한다면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기 위해선 지역(인근 지역 포함)에서 생산하는 곡식만 사용해야 하는데 이 제도는 하루빨리 개정되어야 한다고 경 회장은 강조했다. 최소한 광역단위로 개정이 된다면 양조장 입장에선 질 좋은 원자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곡식뿐만 아니라 과일의 생산지가 변화하고 있다. 사과의 경우 대구 사과가 이제는 강원도 철원사과로 바뀌고 있다.

떡이나 기타 음식에서도 많은 양의 쌀이 소비되지만, 쌀보다는 적다. 술을 빚으면 그만큼 쌀 소비가 늘어난다. 나라에 흉년이 들면 정부가 금주령을 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농경 정책을 아무리 잘 짜서 쌀 생산을 늘려도 이를 소비하지 못하면 농민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혹자들은 술을 많이 만들면 국민건강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지만, 마트의 주류코너를 둘러 보자. 수입 주류가 판을 치고 있다. 이왕 마시는 술, 국산 술로 대체하면 어떨까.

 

막걸리 진흥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막걸리는 다른 주류에 비해 함유한 영양성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트립토판·페닐알라닌·메티오닌, 비타민 B군과 비타민 C, 젖산·주석산·사과산·구연산등이 들어 있는 술이다. 따라서 막걸리는 몸에 해보다는 득이 많은 식품이다.

경 회장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한국의 술 진흥법’으로 바꿔서 막걸리를 국가 차원에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막걸리협회는 지난해 자체적으로 ‘한국막걸리산업발전자문위원회’를 발족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대정부 정책도 건의하고 있다.

막걸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다.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막걸리를 이제는 국주(國酒)로 승화시켜 ‘한국의술’로 거듭나게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을까.

취재를 마치고 귀경하는 길. 기상 예보대로 강풍이 몰아진다. 문득 이런 시가 떠 올랐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소야 신천희 시인의 ‘술타령’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http://sool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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