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분산된 현장의 목소리를 하나로, 한국술 협회가 해야 할 일들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 보기(216)

 

분산된 현장의 목소리를 하나로, 한국술 협회가 해야 할 일들

 

※ 본 글에서는 주류 산업 전반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전통주’ 대신 ‘한국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최근 한국술을 포함한 주류 산업 전반에서 주목할 만한 이슈가 하나 있다. 올해 9월부터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주류 제품의 라벨에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 표시가 의무적으로 포함된다는 점이다. 제조사는 경고 문구 또는 경고 그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표기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 당국이 대기업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상대적으로 제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소 주류 제조업체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주류 관련 단체들이 의견을 모아 정부에 공식적인 의견을 전달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25년 ‘음주운전 경고’ 표시 의무화 기사 화면 갈무리 @아이뉴스24

이 사례는 정부의 각종 주류 정책 과정에서 개별 업체가 단독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술 산업의 미래는 더 이상 개별 양조장이나 소규모 생산자의 고군분투만으로 담보될 수 없다. 한국 술은 단순한 주류 상품이 아니라 농업, 식문화, 지역경제, 관광, 제도와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산업이자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 술 관련 협회는 단순한 친목 단체나 행정 전달 창구를 넘어, 산업 전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집약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한국 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함에 있어 지금 ‘협회의 존재 이유’와 ‘협회의 역할’을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 술을 둘러싼 산업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는 더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MZ세대가 소비하고 누리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역 양조장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과 브랜딩, 음식과의 페어링, 관광 및 체험 산업과의 결합은 한국술을 단순한 음용 대상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주류 규제 체계와 현장과 정책 간의 괴리라는 구조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별 양조장이나 소규모 업체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현재 국내에는 막걸리, 전통 민속주, 증류주, 한국와인 등 주종별 특성과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협회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협회는 생산자의 권익 보호와 각 주종의 발전을 목표로 품질 기준 정립, 제도 개선 건의, 소비자 인식 제고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종별 협회의 존재는 한국술 산업이 결코 단일한 시장이 아닌,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 산업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주세 체계, 유통 및 판매 규제, 표시 기준, 수출 제도 등 협회별로 정책적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조율되지 않은 채 분절된 목소리로 남을 경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직시해야 한다.

언론에 소개된 각 한국술 협회들

결국 협회의 본질적인 역할은 ‘현장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는 중간 조직’으로서의 기능에 있다. 협회는 단순히 행사를 주관하거나 한국술의 가치를 홍보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회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경영상의 애로, 기술적 한계, 제도적 불합리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이를 행정과 입법 영역에 설득력 있는 형태로 전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양조 기술 교육과 인력 양성, 품질 관리 및 위생 기준 컨설팅, 법·세무·주세 관련 자문, 공동 물류와 마케팅, 해외 시장 진출 지원 등 회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협회가 ‘있으면 좋은 조직’이 아니라 ‘없으면 산업 운영이 어려운 조직’이 될 때, 한국술 산업은 비로소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된다.

한국술 협회의 본질적 역할을 시각화한 모식도 @젠스파크

 

아울러 협회 간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비자에게 한국술은 주종별 구분 이전에 ‘한국의 술’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인식된다. 각 협회가 주종별 이해관계에만 매몰될 경우, 한국술 전체의 위상과 정책적 협상력은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 반면 주세 체계의 합리적 개편, 온라인 및 직거래 유통 규제 개선, 한국술 교육과 홍보 인프라 구축, 공공급식 및 관광 연계 확대와 같은 공통 의제에 대해 연대된 목소리를 낸다면 정책적 설득력은 훨씬 커질 것이다.

 

한국술은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시장 환경에서는 여전히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대기업 중심의 주류 산업 구조와 수입 주류의 공세 속에서 한국술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분산된 노력을 하나로 묶어내는 조직적 힘이 필수적이다. 협회는 바로 그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한국술 발전의 열쇠가 협회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는 말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산업 구조가 요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

최근 새롭게 한국술 발전을 목표로 설립된 한국술생산자협회 기사 @경기일보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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