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늘을 말한 시인 천상병

막걸리 한 사발의 시학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늘을 말한 시인 천상병

 

박정근 칼럼

(대진대 교수 역임, 황야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천상병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미지로 막걸리를 마시는 허름한 옷차림의 시인이 떠오른다. 그의 주머니는 늘 비어 있는 지갑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가난함으로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동네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실 수밖에 없다. 그는 술을 즐기지만, 결코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었다. 괴로운 세상을 잊기 위해 막걸리를 마셨고 그것은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흰 숨결과 같은 친구였다.

 

그의 시에 ‘막걸리’라는 시어는 자주 나오지 않지만 시 세계 전체에는 막걸리의 정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탁하지만 순하고, 값싸지만 허기를 달래 주는 술이 막걸리가 아닌가. 그야말로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을 정겹게 이어 주는 술이다. 이런 삶의 철학으로 인해 그의 시는 역시 시인을 닮았다. 현학적이지 않고 기교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요, 은혜라는 겸손함이 흘러넘친다.

 

국가폭력에 의해서 파괴되었던 그의 삶은 잔혹했다.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억울한 투옥과 고문이 가해졌다. 그 결과 그는 정신적 후유증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천상병의 시에는 그가 당한 부조리를 고발하는 격렬한 언어가 없다. 대신 그는 세상을 ‘소풍’에 비유한다. 이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유이다. 인생이란 잠시 왔다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에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원망보다 고마움이 먼저라는 긍정적 사유를 지닌다. 대표작「귀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은 가난한 시인이면서 서민의 삶을 떠나지 않았다. 막걸리를 마시는 천상병의 모습은 바로 서민적 삶의 실천이었다. 그는 문단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 또는 끄트머리에서 존재했다. 그래서 그가 마시는 술은 고급술 대신 값싼 막걸리였다. 그 선택은 가난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민적 시인으로서 윤리였다. 막걸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술이다. 함께 일하고 고통을 나누면서 부담 없이 술잔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이러한 개방적 술잔치를 즐기는 그의 시가 특정 계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언어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천상병의 막걸리는 현실 도피의 술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는 술이었다. 막걸리에 취하면 세상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이해한다. 시인은 타락한 세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살만한 세상으로 채색하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천상병의 시는 동화적인 아름다운 빛을 발휘하여 무채색의 세상을 순화시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 논리를 극복하고 선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천사의 논리를 확산시킨다. 이것은 인간의 악함, 권력의 폭력, 삶의 부조리를 알면서도 끝내 세상을 저주하지 않는 선택이다. 그것이 천상병의 시학이자 시적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천상병의 시「귀천」은 한국 현대 시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다. 그 시에서 그는 최악의 고난을 겪은 시인은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떠난다. 이 고백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막걸리를 마시며 “그래도 살 만하다”고 말하던 그의 생활 태도는 그대로 시어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고난을 받은 예수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문맥의 사랑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천상병의 삶에 대해 한 편의 시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막걸리를 사랑한 시인, 천상병〉

 

박 정근

 

빌라도를 닮은 권력자는

예수를 닮은 시인을 잡아 가두고

물로 고문하고

몽둥이로 태형을 가했다

 

세상이 썩어 문드러져

냄새가 나는 지옥이라고 선언한 선지자는

가난의 감옥에 던져져

버림을 받고 쓰러지고 만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잊어버린

시인은 막걸리 한잔 마시고

미소를 지으며 시를 쓰는 시인에게

사람들은 묻노라

모든 것을 잃은 시인이여,

어찌 이 세상을 아름답다 말하는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시인은 노래하노라

 

세상의 가시밭을 걸어가다가 쓰러지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말없이 건네주었지

하얀 거품이 떠 있는 막걸리여,

피 흘리고 갈증으로 목마른 순간에

세상은 한번 마셔 볼만 했노라

 

 

 

사진 : 1. 강화도 양도면 건평항에는 2017년 12월 18일 건립된 ‘천상병귀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길가 공원 한 가운데 천상병이 막걸릿잔을 들고 앉아 있다. 이곳에 귀천공원이 조성된 것은 천상병이 이곳을 자주 찾아 막걸리를 마시며 <귀천>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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