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 보기(217)
소버 큐리어스 시대, 전통주는 어떻게 선택받을 것인가?
소버 큐리어스란 반드시 금주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마시는지 스스로 묻고 필요하지 않다면 마시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과거처럼 술이 인간관계의 필수 매개가 아니며, 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어울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하나의 문화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MZ 세대는 음주를 관습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인식한다. 헬시 플레저(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문화)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건강과 자기관리, 다음 날의 컨디션, 생산성과 정신적 안정이 술자리의 즐거움보다 우선순위에 놓이면서, 자연스럽게 주류 소비는 감소하고 있다. 실제로 20대와 3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수치로 증명한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라기보다, 음주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제 젊은 세대에게 술은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도 아니고, 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 도구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음주 여부는 철저히 개인의 결정에 맡겨져야 할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 회식 자리에서도 술을 거절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논 알코올음료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부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웰니스 문화와 맞닿아 있다. 운동, 식단 관리, 정신 건강, 루틴 관리와 같은 일상적 자기 돌봄이 소비 트렌드의 중심이 되면서, 과음은 합리적 선택으로 보기 어려운 행동이 되었다.
술은 ‘취함’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피로와 숙취, 생산성 저하를 남긴다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용을 따지는 세대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소버 큐리어스는 절제의 윤리이자 자기 주도적 소비의 표현이며, 이는 주류 산업 전반에 재구조화를 요구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전통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전통주는 오랜 시간 ‘명절’, ‘의례’, ‘어른의 술’이라는 이미지에 묶여 있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화 전략을 통해 고급 막걸리, 증류주나 지역 특산주 중심으로 젊은 층을 통해 시장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소버 큐리어스 시대에 단순히 “좋은 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술의 도수나 전통성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가 왜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다.
전통주가 지닌 발효의 다양성이나 다양한 맛 그리고 곡물을 기반으로 한 발효 정체성은 오히려 웰니스 담론과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발효는 인위적 첨가보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는 과정이며, 이는 ‘느림’과 ‘균형’을 중시하는 현대적 가치와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알코올이 건강에 이롭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은 설득력이 없다. 대신 소량을 천천히 음미하는 문화, 음식과의 조화를 통해 과음을 지양하는 식문화적 맥락을 강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전통주를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맛과 이야기를 경험하는 술’로 재포지셔닝하는 것이다.
또한, 저도주 및 논 알코올 카테고리에 대한 전략적 접근 역시 요구된다. 이미 글로벌 주류 기업들은 무알코올 맥주와 논 알코올 칵테일 시장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제품군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통주 업계가 이러한 변화를 외면한다면, 젊은 세대와의 접점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통 발효의 향과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알코올 부담을 낮춘 제품 개발, 혹은 전통 원료를 활용한 비알코올 발효 음료는 충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전통 양조 기술의 확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아직 전통주에 있어 논 알코올은 쉽지 않은 분야이고 시장도 크지 않다. 하지만 저도수 전통주 시장은 지금보다 더 많은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전통주는 공간과 경험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 MZ 세대는 물건을 소비하기보다 경험을 소비한다. 양조장 투어, 발효 워크숍, 음식 페어링 클래스, 스토리텔링이 결합한 테이스팅 프로그램은 단순 판매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는 전통주의 이미지를 고루한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 문화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양조장들도 자신들의 제품을 단순 소비시키는 시대를 넘어 체험하거나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소버 큐리어스 시대의 핵심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는가’가 아니라 ‘왜 마시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술은 선택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전통주가 생존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알코올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문화적 의미와 경험적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과거 의례의 엄숙함이나 취하기 위해 기능하던 술이 오늘날에는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재해석되듯이, 전통주 역시 시대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소버 큐리어스는 전통주에 있어 위기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전통주가 ‘많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제대로 마시는 술’로 자리매김할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소주와 맥주라는 대기업의 획일화된 시장에서 전통주는 절제와 균형, 경험과 이야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새로운 세대와 조우 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