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노트북을 든 여행자들

노트북을 든 여행자들

 

임재철 칼럼니스트

 

 

 

이제 AI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세계는 AI 혁명의 한복판에 있다. AI의 탄생은 인류가 맞이한 세 번째 거대한 전환점이다. 앞으로 산업 경쟁은 같은 제품에 얼마나 뛰어난 지능을 담느냐의 싸움으로 변했다. 새로운 물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이 아니고 AI 전환은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AI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거다.

 

요즘 ‘전쟁도 AI가 하고’ AI가 ‘전쟁 브레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시대다. 최근 미국이 수행한 이란 공습 작전에서 AI가 실제 작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록 중동전쟁으로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전쟁의 참상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국가경제, 그리고 환율과 주가까지 요동치는 엄중한 현실이지만 말이다. 지금의 중동발 리스크 극복을 통한 국민의 부담이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절실하다.

 

이 가운데 현재 긴장감이 극도인 여행업계이지만, 이제 여행 또한 AI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가령 당장 유럽 자유 여행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전문 여행 플래너가 아닌 인공지능 챗GPT다. 챗봇은 때로는 여행 가이드가 되고, 때로는 미술관의 도슨트가 된다. 낯선 언어의 장벽 앞에서는 통역사로, 복잡한 길 위에서는 동선을 정리해 주는 조언자로, 여행의 기억을 체계 있게 정리해 주는 기록 보조자로, 그야말로 여행의 결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능력자이고, 웬만한 비서 못지않은 동반자이다.

흔히 삶의 안개 속에서 지친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즐긴다. 그러기에 노르웨이 피오르 (fjord)여행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인생의 버킷 리스트다. 가파른 절벽 사이의 잔잔한 푸른 바다 위로 여객선이 한가로이 떠 있는 사진을 보며 노르웨이 피오르로 떠나는 여행을 꿈꾼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중국의 칭하이성, 간쑤성, 윈난성 등의 자연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지역, 대초원, 호수, 고성 등의 여행을 떠올리거나 남유럽의 로마, 서유럽의 파리, 동유럽의 프라하 등지를 손꼽으며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지금 여행객으로 붐비는 유명 여행지에는 캐리어 대신 노트북을 든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리모트워크나 워케이션을 체험하기 위해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단체 관광객들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SNS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까지도 노트북 넘나들며 챗봇과 논의하고 항공기 운항정보 등 여행스케줄을 조정하며, 상황에 가장 적합한 여행을 하고 기록을 저장한다는 얘기다. 돌아보면 한편으로는 끔찍하다. 모든 생태계의 최고 지배자인 인간이 모기처럼 AI에게 밀려난다고 하니 그렇다. 그러니까 AI는 기존 여행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생활의 굴레에서 해방된 자유로움, 모처럼 내숭이 없는 마음으로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 다채로운 비일상적 낭만의 향유와 감성 충전이 가능한 게 여행이다. 이를테면 유명 관광지나 보고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나, SNS에 올릴 몇 장의 사진이 여행의 목적인 사람은 없다. 물론 여행의 목적은 다 다르다. 아마도 MZ 세대는 더 다르겠지만, 필자의 세대는 여행에서 SNS에 채워질 인생 사진은 보너스란 생각이다.

아무튼, 야심만만하게 AI와 한 걸음씩 천천히 걷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각자의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완성해야 할지 조금 알게 되지 않을까. 여행은 시작과 끝을 가지고, 집을 떠나 낯선 환경을 접하고, 다른 언어와 사람을 만난다. 즉 시간적인 연속성을 가진 게 여행이다. 그런 여행에 있어서도 AI 등 디지털 전환속도가 가팔라질수록, 그 반대급부로 아날로그 트렌드가 지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디지털시대의 몰입과 리듬을 경험해보는 매력을 찾아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5년 후면 학생들도 책가방 없이 노트북 하나 들고 학교에 가면 되는 시대가 도래된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우리도 이제 여행은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 AI와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헌데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풍경, 경험, 깊은 사유마저도 AI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가의 입장에서 봐도 엇갈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리듬에 따라 여행길을 여유롭게 내딛는 그것만이 긴 여정에 힘이 되어 함께 하리라 믿는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