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 보기(220)
품질 평준화 시대, 전통주는 무엇으로 차별화할 것인가?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예년에 비해 젊은 층의 비중이 늘었고 전통주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물론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은 소비 규모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전통주 소비층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점차 전문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전통주 연구자의 시각에서 이번 박람회를 둘러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막걸리의 기본 품질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나친 산미나 불안정한 탄산감, 이상 발효, 과도한 단맛 등 기본적인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보이는 제품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엑스포에서는 전반적인 발효 안정성이 향상되었고 향미의 균형도 한층 정교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키지와 브랜딩 역시 소비자의 감각에 맞게 세련되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또 다른 과제를 드러냈다. 전체적인 품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양조장 간의 차별성이 이전보다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술이 일정 수준 이상 맛있어졌지만, 소비자에게 “왜 이 술이어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고유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좋은 술이라는 인상은 남지만, 그 술만의 개성과 기억 지점은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많은 양조장이 술을 소개할 때 “달다”, “깔끔하다”, “부드럽다”, “새콤하다”와 같은 감각적 표현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맛있는 술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발효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떠한 향미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함께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을 가장 체계적으로 구축한 분야가 와인 산업이다. 프랑스 와인은 오래전부터 떼루아(terroir)라는 개념을 통해 토양과 기후, 일조량, 해풍, 포도 품종, 재배 방식 등의 차이를 하나의 가치로 설명해 왔다.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어떤 토양에서 자랐는지, 어떤 환경에서 재배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으로 인식된다. 소비자는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산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산자의 철학까지 함께 경험한다.
일본 사케 역시 마찬가지다. 쌀 품종과 정미율, 효모, 수질, 양조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세분화하여 술의 개성으로 연결한다. 특히 사용하는 물의 특성은 사케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연수와 경수에 따라 발효 양상과 질감이 달라지며, 이는 지역 양조장의 개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반면 우리 전통주는 원료와 제조 과정이 가진 잠재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비자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같은 막걸리라도 사용한 쌀 품종과 재배 지역, 도정 정도, 멥쌀과 찹쌀의 비율, 누룩의 종류, 발효 조건에 따라 향과 맛, 질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물의 미네랄 조성이나 누룩에 존재하는 복합 미생물 역시 발효 특성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소비자에게 명확한 가치로 전달되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이제 전통주 산업은 품질 경쟁을 넘어 차별성 경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 그 술이 가진 배경과 생산 철학, 향미 형성 과정까지 이해하고자 한다. 커피 시장이 원산지와 로스팅, 발효 방식으로 세분화 되었듯이 전통주 역시 원료와 발효에서 비롯되는 미세한 차이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조장마다 자신들만의 특징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이를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야 한다. 단순히 “전통 방식”이나 “국내산 원료 사용”과 같은 표현을 넘어, 왜 그러한 원료와 공정을 선택했으며 그것이 어떤 향미적 특징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026 대한민국 막걸리엑스포는 우리 전통주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품질 향상 위에 각 양조장만의 개성을 더욱 선명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전통주는 더 이상 단순히 옛날 술이 아니다. 어떤 쌀과 물을 사용했고, 어떤 발효와 미생물이 작용했으며, 어떠한 철학으로 빚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완성된다. 앞으로 한국 전통주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품질뿐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와 이야기를 가진 술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