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령 공포 100주년 특집 논단
일제강점기 주세령 공포가 현행 주류산업과 문화에 미친 영향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 1조 2항을 중심으로
이화선 원장(우리술문화)
◈ 목 차
머리말
1900년대 초 식민지 경제정책과 주세령 공포의 배경과 반성적 검토
2-1. 1900년대 초 식민지 경제정책 개관
2-2. 주세령 공포의 배경과 반성적 검토
3. 주세령 제1조 2항이 현행 주류산업에 미친 폐해
4. 맺는 말
주류산업진흥을 위한 우리 술의 이름 찾기와 분류기준 정립 방안
머리말
여기에는 우리 술과 문화가 올바로 전승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체성을 잃은 채 왜곡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이에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 이른바 ‘주세령’ 공포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주세령 제정의 배경과 당시 식민지 경제정책을 개관하고, 지금까지 그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채 주류산업 분야에서 독소 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또한 있다면 그것이 산업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는 많은 사람의 건강증진과 음식문화 개선, 나아가서는 한국경제와 국격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정립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술, 이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의 여유로움과 궁핍함, 문화의 융성과 퇴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식민지 경제정책과 주세령 공포의 배경
2-1. 1900년대 초 식민지 경제정책 개관
조선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주체적인 개화자강의 길을 걷고 있었던 국가였고, 18세기까지도 일본에 문화적‧경제적 지원을 해왔던 선진적인 국가였다. 다시 말해 일본의 한국 강점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로 이는 일제침략이 단순히 군사적 폭압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이는 침탈의 주체, 정책 수립 배경과 추진과정,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을 갖게 한다. 이는 경제 분야에서 주류산업 정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감성적인 접근을 배제한 논리적인 접근을 요하게 하는 부분이다.
1910년 강제병합이 있고 일본은 한국민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조선을 ‘근대화’, ‘시정개선’, ‘보호지도’를 해준다는 논리로 선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침략미화론’의 논리는 지금도 주류산업계에 뿌리를 내려, 우리 전통방법은 ‘재래식’, 일본에서 비롯된 것은 ‘근대화’라는 표현으로 굳어져 버렸다. 물론 당시 한국인들이 근대화에 대해 적지 않게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또 주도한 세력이 누구였었는지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고찰은 지면관계상 다음으로 넘긴다.)
일제의 경제정책의 역사적 성격과 기조는 1904년 ‘대한시설강령’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 강령은 한국을 식량원료의 공급기지이자 상품시장으로 재편하는 방침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에 따라 조선농업의 재편과 상업자본의 예속화, 도량형 정비 등이 1910년 이전까지 추진되었다. 또한 일제의 정책을 직접 수행하는 각종 산업단체와 일본인 중심의 이익단체들을 통해 쌀, 면화 등의 증산을 독려하고 이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식민지 금융기구를 통한 수탈체제를 확립시켜나갔다.
1908년에는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을 반포하여 잠매(潛賣)토지의 합법화와 국유지 불하를 가능하게 하고 토지소유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별을 없앴음으로써 일본인의 토지소유권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토지조사사업은 등기제도로 연결되어 농업에서의 수탈과 토지침탈의 과정을 합법화시켰다. 수탈당한 토지는 대지주나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농업회사로 그 소유주가 넘어갔다. 더불어 이들의 약탈적인 농업경영방식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토지를 잃고 유랑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전통적인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가양주문화가 맥을 잃는 근간이 되었다.
2-2. 주세령 공포의 배경과 반성적 검토
일제의 주조업 정책은 식민지의 세원(稅源)을 찾는 데서부터 수립되었다. 또한 그 기조는 주조면허제 시행과 주세 부과, 주류 및 누룩 제조기술 개선, 주조장의 기업화, 원료 판매의 통제 등 주조업 전반을 통제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를 최초로 현실화한 것이 1909년의 주세법 제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세원 파악을 위한 예비적인 단계의 정책이었고, 본격적인 주조업 정책은 1916년 주세령 발령 이후부터로 보아야 한다. (이 부분 출처:이승연, ‘일제의 주조업 정책과 조선 주조업의 전개’, 한국사론 32, 1994. 이때의 저항 양태나 주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즉, 일제의 재정수입의 중요한 고리는 바로 식민지 재정이고, 이러한 재정수입을 위한 세원개발(稅源開發)은 끊임없는 체제정비 과정 속에서 확대되고 이를 구조적으로 확립시켜나갔다. 이를 조세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1909년 주세법을 공포 이후 1918년까지는 지세(地稅)를 중심으로 한 자본제적 재정구조의 형성의 과도기였다면, 1916년 연초세령(1921년 이후 전매세)과 함께 발령했던 주세령 공포 이후 1930년대 초까지는 대중적인 과세를 위한 소비세체제 정비를 통한 식민지 재정수입의 형성기로 볼 수 있다.(이 부분 출처: 정태헌, ‘일제하 주세제도의 시행 및 주조업에 대한 연구’, 국사관논총, 1994)
<통계년보>에 따르면 1910년 조선에서 조세수입에 대한 주세의 비중은 1.8%에 불과하던 것이 1935년에는 30.2%에 달하게 된다. 아울러, 가양주제조면허의 숫자는 1918년 375,757장에서 1932년에 단 1곳으로 급감한다. 반대로 대규모 공장 제조자수의 비중은 급속도로 늘어난다. 이들 숫치는 주조업이 비조선주(非朝鮮酒)를 중심으로 집중되고, 주류 소비구조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전통 가양주의 맥이 거의 끊겨 버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조업이 친일세력 또는 자본가들에게 집적된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누룩제조장을 통폐합시키는 등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침략이 미화되고, 지금까지 우리술 산업에서 왜색을 떨쳐내지 못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일제강점기 하 주세수입은 30%대에 육박하는 주요한 세원이었으나, 현재 대한민국의 국세 중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대 남짓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주세가 재정수입의 주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이는 현행 주류산업의 입법과 정책 수립의 발상을 전환해야하는 주요 논거가 된다.
주세령 제1조 2항이 현행 주류산업에 미친 폐해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 이른바 주세령은 1916년 7월 25일에 제정되고, 9월 1일에 발령된다. 동 령 제1조 2항은 ‘이 령에서 조선주라 함은 조선의 재래방법에 의하여 제조한 탁주, 약주 및 소주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듣기에도 생경한 ‘조선주’라는 말은 이때에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 조항 하나로 인해 수천 년을 내려오던 한국 전통 술의 역사는 단칼에 잘려나가게 된다. 다시 말해, 1916년 주세령 공포 이전에 높은 위상과 화려함을 구가하던 한국 전통술의 역사는 ‘재래방법’은 곧 ‘전 근대적’, ‘비위생적’, ‘비과학적’이라는 말과 동일시되어, ‘근대화’, ‘시정개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조선주’는 오늘날 ‘전통주’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을 뿐 오히려 법률에 의해 박제된 채 현행 법과 제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주세법’, ‘전통주진흥에관한법률’과 동 법 시행령과 규칙, ‘식품위생법’, ‘품질인증기준’ 등 여러 법과 제도, 정책이 현장에서 크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마찰을 겪는 것은 일제강점기 하에 식민지의 수탈체제를 구조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한 배경에서 심어 놓은 핵심 조항의 정곡을 찌르지 못한데 있다.
동 령에서 ‘조선의 재래방법’이라고 치부해버렸던 주조방식과 재료가공 방법 등은 생화학적인 측면에서 규명하기 어려울 뿐이지, 연구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과학적, 근대적임을 내세웠던 일본식 주조방법이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서양 와인의 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고, 오히려 그 대안으로서 재래 한국전통술의 주조법이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맺는 말 – 주류산업진흥을 위한 우리 술의 이름 찾기와 분류기준 정립 방안
– 이하 글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의『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우리 술의 새로운 이름과 분류기준’에서 제시한 것을 정리하여 옮긴 것임.
최근에 들어서 청주와 탁주 등 우리 전통 양조법에 뿌리를 둔 술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전통주’라는 이름 대신 이러한 술들을 아울러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신뢰할 만한 분류기준을 만드는 것을 고민할 때이다. 특히 한국에도 소비자들이 취향에 따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우리 술의 통일된 분류기준이 있으면 술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이름과 관련해서 많이 쓰고 있는 ‘전통주’라는 명칭은 일반 명사로 특징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 시대와도 괴리되는 어감을 주어 좋지 않다. 대안으로 백웅재는 『술맛나는 프리미엄 한주』(2016)에서 한류(韓流), 한식(韓食)과 연결하여 ‘한주(韓酒)’라고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이화선은 서울경제『우리술의 멋과 맛』(2015)에서 프랑스의 와인, 일본의 사케와 같은 맥락에서 그냥 ‘술’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분류기준에 관해서 현재 한국은 소주, 맥주, 탁주, 청주 등으로 술의 종류만 구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주류업체의 광고만 보고 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많은 광고비를 쓸 수 없는 소규모 업체의 경우에는 경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 술의 새로운 분류기준은 원산지 기준인 프랑스 와인과 재료와 제조방법 기준인 일본 사케를 비교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 와인은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만들지만 괜찮은 포도주의 경우 생산된 지역 즉, 원산지를 기준으로 분류된다. 프랑스 와인 중 수준급 와인으로 인정되는 와인은 원산지명칭사용허용(A.O.C급) 와인이다. AOC급 와인은 보르도나 메독 등과 같이 원산지 명칭을 사용할 수 있고, 원산지별로 사용 포도, 제조방법, 생산량 등이 엄격히 통제된다. 사용할 수 있는 원산지는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지리적 특성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 원산지가 작은 지역으로 표시될수록 와인이 더 특징이 있고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산지 명칭이 충청남도 보다는 홍성군이, 홍성군 보다는 무량리로 표시될 때 특별한 술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 사케는 쌀의 도정비율, 주정의 첨가 여부, 일본 누룩(코오지) 사용비율, 담금 방법과 횟수, 살균과 여과 방법 등에 따라 분류된다. 분류방법에 복잡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술의 주발효제인 누룩은 생곡식을 쓰고 자연접종을 하기 때문에 지리적 특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다 누룩의 종류와 우리 술의 제조방법은 다양하고 계속 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술의 분류기준은 프랑스 와인과 같이 지역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역을 기준으로 한 우리 술 분류기준이 잘 정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곡물로 그 지역에서 누룩을 만들고,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만들어진 술에 그 지역 원산지 명칭을 붙이는 것이다. 원산지는 프랑스 와인과 같이 다양한 범위의 지역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제조방법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감미료 등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기본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원산지 분류법이 성공하려면 지역생산자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사용 곡물의 원산지와 생산량 등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이들은 많은 이해관계 갈리는 일이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통합해 나가는데 어려운 난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시도라도 해보아야 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주세령에서 조선주를 번외로 해놓고 독려했던 일본식 주조방법의 유입이 사회‧문화사적으로 잃어버린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끼쳐진 손실이 유럽과 신세계의 와인산업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산업연관 분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끝)
◈ 필자 :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다산문화교육원 이사, friend@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