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타이완에서 두 번 째로 큰 항구 도시 가오슝

타이완 남부 사오슝 여행

 

타이완에서 두 번 째로 큰 항구 도시 가오슝

佛光山, 義大 WORLD. 영국 영사관 등 볼거리 풍성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던 나라가 타이완이 아니었을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어렵게 여권을 쥐고 해외여행의 첫 번 째 나라로 타이완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70년대 타이완은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달러를 많이 보유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우리보단 넉넉한 나라였다. 대 기업보단 중소기업을 육성시켜 수출을 주도해온 타이완은 지금도 다른 나라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고 사는 나라 가운데 한 나라다.

타이완의 전체 면적은 35,980㎢로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만큼 크지 않은 나라지만 아열대성 해양기후(여름 33℃, 겨울 13℃ 평균)인데다가 대부분이 산악지역(경작 가능 면적 비율:24%)이다.

타이완의 최고봉인 위산(玉山,3,997m)을 중심으로 3,0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 280여개가 산맥을 형성하고 있어 서쪽 평야지대에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한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같은 도시가 발달되어 있는 방면 동부엔 화롄시, 타이동시가 자리 잡고 있다.

타이완의 전국 지도를 보면 마치 고구마 같이 생겨 동서를 오가는 교통로는 적은 대신 전국을 일주할 수 있는 철도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동서를 잇는 철도가 없는 것은 높은 산악지대 탓일 수도 있고, 수요가 그 만큼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자연적인 여건에 따라 타이완 여행은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화롄을 오가는 코스, 또는 타이베이, 타이중을 중심으로 한 코스가 일반화 되어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타이완의 제2의 도시인 가오슝(高雄)을 둘러보는 코스는 흔치 않다. 가요슝은 우리의 부산이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때문일까. 이번 타이완미식전을 계기로 타이완서울사무소(소장, 黃怡平)가 팸투어를 실시하면서 타이완의 남부 중심 도시인 가오슝에 집중한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가오슝 전경은 영국 영사관에서

가오슝은 타이완 남부 최대 도시로 성(省)의 직할시이다. 좁고 긴 석호(潟湖) 어귀에 발달한 무역항으로, 종관철도의 종점이자 핑둥(屛東)·린볜(林邊) 철도의 기점이기도 하다. 항구는 수심이 얕은 결함이 있었으나, 항만시설의 정비로 1만 t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다. 농산물·원료 및 제품 등의 수출항, 소비재 수입항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해안 매립지에는 가오슝 가공수출지구가 설치되어 알루미늄·시멘트·정유·제철·플라스틱·금속·전자기기 공장이 많다.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 타이완을 점거했던 무렵부터 도시가 개발되어, 다고우(打狗)라고 했다. 1858년 지룽(基隆)·단수이(淡水)·안핑(安平)과 함께 개항하였고, 1866년에는 영국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908년 일본식민지 때에는 축항공사가 이루어져서 화남(華南)·동남아시아와의 교역지로 발전했다.

가오슝 관광여정이 빠듯하다면 가오슝의 명소 다고우 영국영사관부터 찾아보자. 영국영사관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도시가 서 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가오슝 시내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어 명당자리다.

가오슝 해안가 왼편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영국영사관은 1865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영국은 영사관 터를 물색하던 중 가오슝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이곳 언덕을 발견해 영사관 터로 정하고 영사관을 지었다고 했다.

영사관 입구를 지나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영국이 사용 하던 영사관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사방으로 가오슝의 바다, 가오슝 내륙이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영사관 뜰에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시간, 노을이 지는 가오슝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은 가오슝의 백미로 꼽힌다. 불빛이 차츰차츰 더해지는 시내 풍경과 노란 조명을 받은 우아한 영국영사관의 자태가 운치를 더한다. 영국영사관은 옛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간단한 디저트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변신했다.

영사관 구경을 끝내고 나선 연락선 같은 배를 타고 10여분 건너면 주로 생선류를 파는 전통 식당가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바닷가 횟집세터라고나 할까. 약간은 불결스럽게 느껴진데다가 날씨마저 더워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가 볼만한 치진해물거리에서는 전통의 타이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전등불을 밝히며 찾아본 치허터널은 여기도 일본군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를 엿볼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메이리따오 전철역

가오슝에는 전 세계 지하철역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메이리따오(美麗島)역이 있다. 메이리따오 역은 지하철 레드라인과 오렌지라인이 교차하는 역인데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작품으로 설계된 두 개의 기둥이 아름답다. 천장과 기둥의 불빛이 조화를 이루며 이방인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하철역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밤이 되면 메이리따오 11번 출구 인근에 류허(六合)야시장이 매일 저녁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비교적 깨끗하고 포장마차들에서 팔고 있는 식재료도 다양하다.

이곳에서는 각종 꼬치와 튀김, 통 오징어 구이, 문어, 육포, 새우, 전복, 굴전 등 해산물 요리서부터 국물 없는 국수(깐미엔), 만두, 풀빵, 철판 요리 등 온갖 샤오츠를 접할 수 있다. 보신에 좋다고 알려져 과거 한때 인기를 끌었던 뱀 요리 전문점 등은 관광객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한 때 시장 뒷골목으로 밀려나 겨우 명맥만 유지 하던 것이 요즘은 실제 뱀은 구경할 수 없어도 뱀요리집은 시장 입구(왼쪽) 가장 명단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뱀탕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도 참 다양했다.

류허시장에 가려면 저녁을 먹지 말고 둘러봐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얼(駁二) 예술특구 그리고 렌즈탄(蓮池潭)

가오슝 시내 관광코스 중 보얼 예술구와 렌즈탄을 빼 놓을 수 없다.

보얼은 두 번 째 항구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물류창고를 2000년 이후 원래 낡았던 항구 창고를 현지 예술문화 종사자와 정부의 협력으로 예술문화 기지로 개조한 예술특구다.

현재는 음악과 예술문화의 장소로 활용되며 각종 문화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해외 배낭족들이 들르는 필수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청나라 시대 ‘봉선팔경’중의 하나인 레즈탄은 연꽃이 뒤 덮인 연(蓮)못이다. 연꽃이 한창일 때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초입에는 좌청룡 우백호를 상징하는 용호탑(龍虎塔)이 서 있는데 좌로 들어갔다가(청룡 입) 우로 나온다.(호랑이 입) 이렇게 한 바퀴 돌면 만사형통 이란다.

 

대만 가오슝 복합놀이 공간 ‘E-DA(義大) WORLD’

부산이 가오슝이라면 이다월드(E-DA WORLD)가 있는 곳은 경주라고 보면 된다. 가오슝의 외곽에 자리 잡은 이다월드는 가오슝의 문화복합 도시로 백화점(명품관), 대학교, 병원, 호텔, 놀이동산, 빌라 등이 하나의 마을처럼 모여 있는 곳이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 2시간이면 도착하며, 이다월드 전용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가오슝뿐만 아니라 타이완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우리나라 종편에서 ‘아빠 어디가’에도 소개된 명소다.

놀이동산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데 15분짜리 입체영화를 보고 나면 타이완의 자연풍광을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명품관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입점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이다월드의 이다호텔(E-DA ROYAL HOTEL)은 편안하게 힐링하기 좋고, 골드를 콘셉으로 고급스러움과 심플함을 느낄 수 있다.

하루 평균 2만5천명 찾는 대만 최대의 관광지 佛光山

대만 최대의 불교사원인 불광사는 1,000명이 동시에 예불 드릴 수 있는 대웅보전과 120m의 동남아 최고 높이의 불상이 있는 곳이다.불광산은 성운대사(星雲大師)가 1967년 인간불교라는 종풍(宗風)을 내걸고 창건한 사찰이다. 성운 대사는 1927년 중국 장쑤 성 장두(江都)에서 태어나 12세 때 난징 서하산 내각사에서 지개상인(志開上人)을 은사로 출가했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와 ‘인생잡지’ 등의 간행물을 편찬하고, 1967년에는 대만 가오슝에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적이고 인본주의적 단체인 불광산(佛光山)을 창건했다.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로써 불법을 펼치고, 자선으로 사회복지를 이루고, 수행으로 인심을 정화한다’는 종지를 제창하면서 불교 교육과 문화, 자선, 홍법 사업에 매진 한 결과 현재는 세계 각지에 300여 개의 도량을 건립했으며 미술관, 도서관, 출판사, 서점, 이동 병원, 불교대학 등을 세웠고, 서래대학교, 불광대학교, 남화대학교, 남천대학교 및 광명대학교를 설립했다.

성운 대사는 비록 임제종 출신이나 어느 한 종파에 머무르지 않고 활동한다. 불교와 세상을 아우르는 ‘인간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는 지구인으로 자처하며 환희와 융화, 동체와 공생, 존중과 포용, 평등과 평화 등의 이념을 널리 펼치고 있다. 세계 각지로부터 출가한 제자가 천여 명,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신도 수가 수백만 명에 이른다.

불광산을 건립 한 것이 불과 7년 전, 둘러보면 7년 동안에 이 같은 불사를 이루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나 전 세계에서 성운스님을 따르는 불자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 낸 쾌거라고 한다.

가오슝 외곽에 자리 잡은 불광산은 사찰이라기보다는 소도시라고해도 믿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불광산은 불광사에 연계된 불타기념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1만 명이 함께 집회를 가질 수 있고, 거대한 보리광장 양옆으로 8개의 거대한 탑이 서 있고, 끝 부분에는 지상에서 108m의 높이에 올라앉은 부처가 태양을 등지고 앉았다. 좌 불은 48m 높이로 웅장한데, 구리 1천872t을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성운대사는 노안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하루 70-80여장의 붓글씨를 스고 있다고 했다.

어느 벽면에 성운대사가 한 말을 적어 놓은 것이 있었다. ‘내 글씨를 보지 말고, 내 마음을 보라’(不要看我的字, 請看我的心)

가오슝 현지에서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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