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양평충격

 ]권녕하(시인, 문학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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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한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더웠다 흐렸다 바람 불다 변덕스런 날씨를 헤집고 용문을 출발해 단월로 접어든다. 수도권역에서 이름난 리조트가 있는 지역이어서인지 도로변에 음식점이 수km 이어진다. “저 집에~ 차 세웁시다!” 시장하던 터라 제주흑돼지 구이에 반주를 시키는데 ‘지평生막걸리’가 나온다. 서울에서도 맛을 본 터인지라 아는 척을 했다. 그런데! 이건, 서울의 대폿집에서 만났던 그 술맛이 아니다. 오늘 만난 이 막걸리 맛은 “파르랗다 못해 심원한 쪽빛 맛”이다. 난생처음 본 맛처럼 미각신경이 파르르 떨린다.

 

모곡방향을 향해 출발했을 때였다. 음울한 하늘에서 무너질 것 같이 천둥이 친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굵은 빗발이 쏟아진다. 차라리 물을 끼얹지! 인간들이 하늘을 뜯어보고 “대기불안정” 하다고 입을 놀리니까 하늘이 화를 냈나보다. 누가 甲 인지 깨닫게 해주겠다는 듯 사정없이 퍼붓는다. 와이퍼가 고장 날 정도다. 결국 달리던 차를 잠시 세우고 만다. “잘못했어요! 하늘님! 앞으로는 ‘심기불편’이라고 할께요.”

 

길가 개천이 금세 흙탕물로 뒤엉킨다. 목적지인 펜션 올라가는 언덕길도 자갈 섞인 토사가 쓸려 내려와 험악한 물골로 변해버렸다. “차라리, 그 집에 더 있다 올 걸!” 이구동성 일행이 합창을 한다. 빗소리 들리자 개구리 울듯 지나온 술집 타령이지만, 그럴만했다. 덕담처럼 건넨 “아직 식전이면, 수저 들고 오세요.” 이 말 한마디에 안주인이 내놓은 후식이 측사대접이다. 게다가 잘 먹고 나오면서 한마디 더 얹어 “살다 살다 힘들면~ 전화해요!” 라는 말에 결국 핑~ 도는 눈빛을 목격한다. 도시사람들은 자연이 좋다지만, 도시사람 기다리며 하루하루 자연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는 현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조장한 새로운 형태의 유배일지도 모른다.

 

서울시민들, 수돗물 안심하고 마시게 상수원 관리해주는 양평. 양평군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유난히 많이 산다.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부동산 투자와 청정자연이 주는 혜택까지, 몇 가지를 한 방에 해결하기에 적합한 양평. 게다가 무위자연 안빈낙도 음풍농월에 비산비야 골짜기 마다 박혀있는 문화유산들이 끊임없이 서울사람을 유혹한다. ‘미술로 떠나는 세계여행 아프리카 미술展’이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서울의 수많은 유수한 미술관에서도 유치하기 힘든 미술기획전을 보며, 개울물 징검다리 밟고 넘듯 밝은 몸짓으로 건너오는 도시인의 환영이 보인다. “연어처럼~ 돌아오게 하자는 것이 미술관의 운영방침입니다.” 관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철순 관장의 말이다.

 

우리 민족에게 공동체에서 전통과 문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양과목 정도인가? 마음의 고향인가? 민족 동질성에 대한 확인인가? 강렬한 색조의 아프리카 미술을 보며 서구열강의 식민시대를 견뎌내고 전통문화를 발현해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목격하고, 한민족의 문화적 원형질은 무엇인가? 민족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에 민족혼을 말살하려했던 못된 이웃을 기억하며 아프리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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