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초막의 거문고소리

한국전통주연구소 가을계절주세미나

‘초막의 거문고소리’ 황진이가 녹여주네요

 

 

춘향의 고을 남원, 물결이 머무는 곳 함파우 마을에서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가 주최한 ‘초막의 거문고소리’가 들려왔다. 앞뜰 한편에서는 시음 주에 곁들일 음식을 준비하느라 예쁜 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요. 푸른 천을 덮은 둥근 탁자 주위로 참석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멀리 남원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11회 가을계절주세미나가 시작되나 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첫술 ‘황진이’가 녹여주네요. 산수유와 오미자가 들어가 옅은 다홍빛이 꼭 부끄러운 새색시 볼 마냥 새침합니다. 남원에는 춘향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본의 황진이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네요.” 박록담 소장의 인사말이 이어지는 순간 두 번째 시음 주는 함양지방 솔송주가 참관객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솔 향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간다. 마치 송림 사이로 한 줄기 햇빛이 쏟아지는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솔송주는 온몸을 적셔나간다. 소나무의 푸름이 옴몸을 파고든다는 느낌이랄까. 죽으로 밑술하고 고두밥으로 덧술 하는 솔송주는 깔끔한 인상을 남겼다. 파삭한 김부각이 술과 함께 녹아 입안 전체가 푸른 감칠맛으로 가득 찬다.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벌써 세 번째 술을 만나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이번 가을계절주 세미나는 술의 종류가 8가지, 음식도 편육, 묵은지 수육, 문어숙회, 국화전, 김부각 고추부각, 연근, 장떡과 깨찰떡, 연근샐러드 8가지가 넘었다. 댓잎술과 대통 술이 서빙 된다. 댓잎 소리가 술에 녹아든 듯 부드럽다. 대나무 마디를 잘라 안에 청주를 채우고 메운 것이 대통 술인데… 댓잎, 솔잎, 진피, 육계, 오미자, 구기자 등 13가지 약재가 들어가 오묘한 맛을 내는 게 퍽 새롭다.

“제세팔선주로 담양의 양대수 명인이 빚고 있고 오늘 이 자리에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담은 신선주(神仙酒)는 각 지역에 가양주형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담양의 제세팔선주가 하나이고, 남원 지방도 신선주가 유명했다고 하네요. 다음 시음 주는 추성주, 대통 술을 증류한 술로 알코올 도수 25%의 알싸한 쓴 맛이 머리를 깨웁니다. 촉촉하고 달큰한 문어숙회가 입안에 남는 쓴맛과 잘 어우러집니다.” 박록담 소장이 멋들어진 소개가 진행되었다.

술 한 모금 안주 하나를 즐기는 동안 함평의 국화주 자희향을 놓쳤다. 부드러운 단맛의 자희향과 쌉쌀한 국화전은 말이 필요 없는 궁극의 조합이다.

어느덧 석양이 지기 시작한다. 싸늘한 한기가 느껴 질 쯤, 45도의 안동소주가 소개되었다.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는 시크름한 맛이 입맛을 당겨주는데요. 묵은지 수육과 곁들이니 속까지 든든하고 따뜻해집니다. 마지막 시음 주는 해남의 해창막걸리입니다. 감미료를 과감히 빼고 온전한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는 맛입니다. 예전의 달달하고 구수한 맛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만 쌀, 누룩, 물만으로 빚은 해창막걸리의 당당한 도전에 응원을 보냅니다.”

막걸리 한잔에 윤진철 명창의 구성진 소리와 남원시립농악단의 앙상블이 더해져 가을날의 세미나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박양숙 선생님, 문원식 쉐프님, 김연지 쉐프님, 이미영 쉐프님이 손수 장만해 오신 푸짐하고 다양한 안주 그리고 송이 능이버섯, 무화과까지 갖추어진 술자리와 풍류행사였다. 청원 선생의 휘호와 국화그림, 윤진철 명창의 판소리 그리고 이번주제의 거문고 연주까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계절주세미나는 많은 분들의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점차 풍요로워지고 진화한다.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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