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때론 태풍도 고마 울 때가 있다
육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지만 사실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제주도에 심어져 있는 귤나무에서 수확되고 있는 귤은 이제 포화상태다. 그러다 보니 귤나무를 솎아서 베어버려야 하는데 내 것은 안 되고 남들이 베어버리기를 바란다. 그런 심정은 누구나 매 한가지다. 그러다 보니 귤나무는 점점 늘어났지 줄지 않는다.
귤 수확기가 되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귤이 넘쳐난다. 이쯤 되면 귤 값을 제대로 받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태풍이 한번 몰아치면 귤의 절반정도는 떨어진다. 아주 실한 것만 남다보니 태풍이 왔던 해의 귤은 맛도 좋고, 귤값도 제대로 받을 수 있어서 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웃게 한다는 것이다.
파손된 건물들을 보수해야 하기에 건축업자도 덩달아 바빠지고, 파손된 도로를 고치다 보면 토목공사도 늘어나 제주도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 태풍을 고마워하는 이유다. 뿐인가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놔 어부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전국에 최순실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금까지 불었던 그 어떤 태풍(정치적 이슈)보다 강렬하다. 자칫 토네이도로 발전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최순실 태풍이 몰아치기 전 많은 기상개스트(정치 평론가 등)들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예보를 쏟아 냈다. 방비를 하기 위해선 3인방인가 하는 사람들, 우병우 민정수석을 잘라내야 한다는 대책을 수도 없이 발표 한바 있다.
그런데 막상 이들의 명줄을 손에 쥔 대통령은 기상개스트들이 쏟아내는 예보는 이들(비서진)을 음해하려는 수단이라고 일축하고 오히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우를 범해 왔다.
아직 육체적 나이로는 연로하지 않은 박 대통령이지만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의 중용 편에는 성군(聖君)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총명예지(聰明叡智)를 꼽고 있다. 총(聰)은 귀가 밝다는 뜻으로 참과 거짓 진위를 정확히 가려낼 줄 안다는 뜻이며, 명(明)은 눈이 밝다는 것으로 잘 잘못을 명확하게 가려낼 줄 알아야 하고, 예(叡)는 일에 밝다는 뜻으로 추진할 일의 밑그림을 빈틈없이 그려낼 줄 안다는 것이다. 지(智)는 사람에 밝다는 뜻이다. 사람을 깊이 꿰뚫어 보고 능력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성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이정도의 상식도 모르고 대통령이 되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덕목을 실천하기란 진짜로 성군이 되기 전에는 어려운 노릇이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무리들 때문에 눈이 쉬 피로해졌을 테고, 달콤한 말로만 속삭이는 순실이 때문에 쓴 소리를 내뱉는 사람은 미워졌을 것이다.
하여 박 대통령은 ‘불통 대통령’이었다는 불명예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판이다.
세상이 대통령을 등지고 나서야 총명예지(聰明叡智)를 깨 닳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버스는 출발하고 있는데….
그래도 백성된 입장에서 다행스럽게 느끼는 것은 최순실의 분탕질로 국정농단이 이 정도 선에서 끝난 것이다. 언론에 기사화 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은 오늘도 순실 이가 착하고 돌봐야 할 여자라고 강변했을지 모른다.
태풍이 귤을 솎아 내듯 이번 순실이 파동으로 썩은 무리들을 발본색원하여 튼튼한 대한민국 호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태풍을 한번 겪으면 더욱 든든해진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다면 지금의 아픔이 언젠가는 옹이처럼 단단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보자. 태풍이 제주도의 경제를 살리듯 말이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