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촛불을 든 사람, 들지 않은 민심

김원하의 취중진담

 

촛불을 든 사람, 들지 않은 민심

 

 

이렇게 처참하고 참담 할 수가 없다.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는 순간 영국의 마거릿 대처수상을 떠 올리기도 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많은 치적을 쌓고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날 것이라 기대했었다.

역대 많은 대통령들이 정권 말기에 피붙이와 떨거지들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을 보아 온 박 대통령은 동생들은 물론 그가 사랑하던 남동생의 아들마저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이런 매몰찬 일로 인해 하다못해 어린이날이라도 조카를 불러서 청와대 구경이라도 시켜주는 것이 좋겠다는 말들이 많았다. 지나친 경계심이 아니냐는 말들을 하면서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임기가 끝나고 청와대를 떠날 때 박수 받으며 떠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성난 촛불이 청와대를 에워싸고 즉각 하야를 외치더니 급기야 탄핵으로 번져 한국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을 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헌법을 위반했다고 당한 탄핵이었다.

박 사모가 아니더라도 이런 처참한 꼴을 보고 있자니 막 화가 난다.

박근혜 대통령에 표를 준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간과(看過)한 것이 오늘 날 큰 화를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예부터 성군은 최소 한 총명예지(聰明叡智)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고 중국 사서의 하나인 중용 편에 나와 있다. 총(聰)은 귀가 밝아 남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그 말속에 섞여 있는 참과 거짓을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明)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잘잘못을 가려 낼 줄 알아야 하고, 예(叡)는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 밑그림을 잘 그려 빈틈없이 일을 추진해야 한다. 지(知)는 사람을 깊이 꿰뚫어 보기 때문에 숨은 능력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에게 ‘총명예지’가 있었을까?

백번을 생각해도 아니다. 그러니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모두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허상만 보고 그를 대통령되라고 표를 주었으니 공동 책임자가 아닌가.

 

대한민국 호(號)가 출범하고 나서 참으로 많은 파도를 건너왔다. 물론 과거 옛날에도 무수한 파고를 이겨냈다. 근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12·12사태, 6·29민주화선언, IMF 사태 등이 터졌을 때도 대한민국 호는 침몰하지 않고 견뎌왔다.

마치 소나무가 성장 하는 과정에 송절(松節)이 생기면 여기서 곧게 뻗는 가지가 나와 소나무를 자라게 하듯 말이다. 아무리 곧게 뻗는 대나무에도 마디가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바라 건데 이번 최순실 사태가 대한민국호가 다시 한 번 뻗어나가는 마디가 되었으면 한다.

 

전기가 없던 시절 촛불은 대단히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혼인 날 촛불을 점등하는 예식이 제일 먼저 있거나, 절에 가면 밝은 대낮에도 촛불을 켠다. 뿐인가 전기불이 대낮처럼 밝아도 제사를 지낼 때 촛불을 켜는 것은 조상님에게 귀한 것을 올린다는 의미다. 아들 딸 잘되라고 한 밤중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치성을 올릴 때도 촛불은 있었다.

때문에 우리의 촛불은 서양식 캔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의 민초들은 관가가 못살게 굴어 화가 치밀면 쇠스랑이나 낫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은 이보다 더 센 무기로 대항했다. 결국엔 성질 급하게 달려든 민초들만 경을 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4·19혁명 때도 그랬다. 경무대로 향하던 시위대에게 총을 쏴서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숨졌다.

그런데 최근 몇 차례나 촛불을 든 시민들이 청와대 코앞에까지 가서 시위를 해도 경찰은 과격한 제지를 하지 않았다. 이는 시민들 손에 촛불이 들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여기에 있어서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짜증이 나게 되어 있다. 촛불의 힘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냈다면 이제는 한 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다. 헌법을 지키지 않아서 탄핵을 했다면 법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아량도 필요한 것이다. 탄핵이고 뭐고 당장 물러나라. 구속시키라며 계속 촛불을 치켜들면 자칫 촛농에 손도 데일 수 있다. 그렇게 외쳐만 대면 당신도 탄핵감이다.

촛불을 들지 않은 많은 국민이 모두 촛불민심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어찌 하나 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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