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서른 닭(鷄)

권녕하 칼럼

 

서른 닭(鷄)

 

그 닭은 처음부터 그 터의 지배자였던 것이 맞다. 처음 마주쳤을 때 내뿜던 아우라는 차라리 슬기롭게 보이기도 했다. 위협적인 맹금류(猛禽類)의 모습이 절대 아니었다. 거칠고 사나운 싸움닭의 모습은 더욱 아니었다. 천천히 필자에게 걸어오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바로 지배자의 모습이었다. 삼림지대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족끼리의 대등한 조우(遭遇)처럼 당당하고 자연스러웠고 여유까지 있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 무슨 일로 오셨나?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맞아! 그 닭은 필자를 손님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지배권역에 사전 허락도 없이 사람이 들어간 것이다.

그 집엔 칡소처럼 얼룩배기 큰 개도 있었다. 생김새가 꽤나 험악해 보였고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개를 피해 멀리 반원형을 그리던 중 바로 그 닭과 마주쳤던 것인데, 그 닭은 서슴없이 그 개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닭을 발견한 개(犬)가 이내 꼬리를 감추고 쇠사슬 소리를 철렁거리며 황급히 제 집 구멍으로 머리를 처박는 것 아닌가. 참으로 매우 생경스런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지만, 역시! 그 닭이 이곳의 지배자라는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추인했을 뿐이다.

 

“이 집 인수했을 때부터 그 닭이 이미 있었어요.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공생해요!”

 

가금류, 토종닭, 양계장, 통닭, 삼계탕, 치킨~ 도대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종족으로 살아가면서 닭에 대하여 ‘네가 모른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고 하던 소크라테스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혼란에 빠져있던 이성(理性)을 추스르며, 자연에 대해, 자연스럽다는 것에 관해, 지구별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이유와 그 까닭에 대해 인간들은 다시 철학해야 한다고 정신을 수습했다. 처음부터! 즉각! 혁신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특히 인간은 왜 백년 가까이 살려두고 있는지를.

 

자연스럽다는 말은 순리(順理)와 통한다. 사육당하면 부자연스럽다고 한다. 이용당하면 불리(不利)하다고 한다. 음모(陰謀)에 휩쓸리면 억울하다고 한다. 술책과 기만이 판치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신앙과 전통과 율법이 헌신짝 취급받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간이 얼마나 인간답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또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 수 있을까. 거룩하거나 위대하거나 혹은 성이 많이 났거나 수많은 민심이 광화문 네거리로 몰려나갔고 주시했고 동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혹시 사육당하거나 이용당하거나 음모에 휩쓸리거나 술책과 기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조했거나 ‘민심’이라는 통계숫자에 덩달아 출렁거리지는 않았을까. 촛불도 태극기도 마치 예비했던 행사, 준비된 과시, 기획된 연출처럼, 양쪽이 행동양태까지 비슷하게, 꼭 할리우드 19금 영화에서 구름처럼 떼로 몰려다니던 엑스트라 좀비무리가 영상처럼 겹쳐지는 까닭은 어인일인가. 결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는 직감(直感)때문인가.

 

丁酉年 새 해가 밝았다. 이제 더 밝아질 것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지저분하게 살수는 없다. 한 번!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의 맛을 알게 된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해! 그래서 다들 전원생활을 꿈꾸게 되나보다. 닭에게 오덕(五德)이 있다고 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한 가지를 더하여 육덕(肉德)까지 바치는구나!

 

“내 한 몸 죽고 죽어/ 바치고 또 바쳐/ 죽으면 죽으리라/ 무작정 바쳐/ 못된 인간까지 먹여 살린 죄 값/ 내 몸 바쳐 치르리라// 때만 되면 가창오리/ 제 멋대로 날아와/ 수천만 동족 살 처분(殺處分)/ 땅속에 파묻히고 말아/ 새 같지도 않는 새가/ 날지도 도망도 못가/ 그저 비둘기만도 못한 이 몸/ 죽으면 죽으리라/ 내 한 몸 죽으리라// 그래, 이왕이면 떼거리로/ 광화문에서 죽어버려/ 21세기 대한민국에/ 육덕이나 베풀리라.”

……서른 닭의 <肉德> 全文

 

그 때 그 닭 나이가 이미 서른이 넘었다고 했다. 그 닭이 아직 버티고 살아있다면, 그렇게 우연히 조우한지 벌써 십년도 더 됐으니, 그 생명도 이미 불혹(不惑)을 넘겼겠다. 설날을 앞둔 오늘,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위풍당당하던 정말! 자연스럽던 그 닭이 새삼 그립다.

 

◊ 권녕하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