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개탁(皆濁)이면 수탁(隨濁)인가?

김상돈의 酒馬看山(17)

 

개탁(皆濁)이면 수탁(隨濁)인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새해도 헝클어진 채 흘러간다. 다가올 한해를 차분하게 맞이할 수 없을 정도다. 안팎으로 불거졌던 문제들도 그대로다. 바뀌지도 않고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혼탁하게 만들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37년여 전의 일이다. 10.26과 12.12사태로 나라안팎이 혼란스러웠다. 옳고 그름을 다툴 수도 없이 온갖 추측과 불확실성만 난무했다. 모두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세상이 어지럽기로서니 이만큼 할 것인가? 오래 가둬 두었던 봇물이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들도 뒤엉켜 흘러내렸다. 주변에서 염치(廉恥)는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었다. 판이 흐트러지니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야말로 탁류(濁流)가 우리 사회를 휘감아 돌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 한 글귀를 붙잡았다.『개탁(皆濁)이면 수탁(隨濁)인가?』 모두가 다 탁하다고 그 탁함을 따를 것인가? 대략 그런 뜻이다. 필자(筆者)가 만들고 흔든 화두(話頭)이다. 매사 모두 그러려니 하면서 따라 가는 것이 속편한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그러할 지라도 마냥 따를 수 없다는 결기가 치솟는다.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말이다. 그 때는 그랬다. 혼돈과 무질서의 탁류(濁流) 속에서도 맑은 샘물은 필요한 법이다. 당장은 바뀌지 않더라도 샘물은 언젠가 그 기능을 하게 된다. 하나의 믿음이다.

살아오면서 가끔씩 흔들리기도 한다. 삶에 부대끼다 보면 이따금 옆길을 넘본다.『개탁(皆濁)이니 수탁(隨濁)이다』세상이 다 그러려니 하면서 따라간다(?). 개탁(皆濁)이면 어떻고 수탁(隨濁)이면 어떠냐는 얘기다. 참 편한 논리다 싶어 얼른 제 자리로 돌아온다. 속물근성(俗物根性)에 빠짐을 경계한다. 수탁(隨濁)은 말아야지 다시 다짐한다. 낱말 몇 글자에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격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갖다 붙여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은 늘 있다. 그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뒤뚱거리면서도 바로 설 수 있었다.

물과 불이 어울려 술이 된다. 그 술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불이 될 수도 있다. 술에 취하면 물로써 다스려야 한다. 불을 끄는 것이 물이다. 물이 염치(廉恥)라면, 불은 혼돈(混沌)이다. 혼돈의 시기를 바로잡는 것은 염치다. 염치없는 인물들이 혼돈을 부추긴다. 물은 평평하기에 법정신에도 곧잘 인용된다. 법(法)의 고자(古字, 灋)도 수신(水神, 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이다. 불은 열정(熱情)이지만, 지나치면 몸과 마음을 태우고 만다. 염치도 없이 혼돈으로 빠져든 불의 노래는 중원에서 이어진다.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은 960년 후주(後周) 공제(恭帝) 때 반란을 일으켜 제위에 오른다. 이후 거의 매일 주연(酒宴)을 베풀다가 배주(杯酒)로 무장들의 기를 꺾고 병권을 장악했다. 이 를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 한다. 그는 전란을 잊고 치세의 덕을 펼치기 위해 술 마시기(酒食)를 장려했다. 대포(大鋪, 크게 베풀어 즐김) 고사도 예서 기인한다. 대포의 일상화로 문약(文弱)에 흐른 나머지 송나라는 167년 만에 금(金)나라에 패퇴 당한다.

송나라(北宋)의 마지막을 장식한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은 금나라 종묘에 끌려가 포로 봉헌의식이라는 치욕을 겪게 된다. 황제와 황후를 비롯한 일족들은 모두 양가죽을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매고 견양례(牽羊禮)를 당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 가죽을 입은 휘종 흠종 두 황제는 한 발자국에 한 번씩 머리를 땅에 굽혀 절을 하며, 금(金) 태조 아골타의 능을 세 바퀴 돌았다. 다음날 금(金) 태종은 명을 내려 휘종을 혼덕공(昏德公), 흠종에게는 중혼후(重昏候) 라 봉하며 경멸하였다.

학문과 문화가 번성한 송(宋)나라가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바탕에는 술이 한 몫 한 셈이다. 술로써 개국(開國)의 대의(大義)를 드높였지만, 그 술이 문약(文弱)의 뿌리가 되고 국운(國運)을 쇠락하게 할 줄은 송(宋) 태조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금나라는 송(北宋)을 멸한 뒤 남송(南宋) 정권으로 부터도 신하(臣下)의 예(禮)를 받는다.

물과 불이 서로 섞이어 벌이는 난전(亂廛)은 그 뿌리가 있다. 뿌리가 있으니 줄기가 있고,

그 가지가 뻗어간다. 좋은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나쁜 열매를 맺을지는 뿌리에서 비롯된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나 시류지원(視流知源)의 고사(故事)가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신문사 정치부 기자와 국회 입법보좌관, 정당 부대변인, 공기업 이사,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4.19혁명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모임,『사단법인 4월회』사무총장과『KAIMA』전무이사로 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