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의 酒馬看山(18)
불의 노래는 복록주(福祿酒)로 이어지고
술을 동양의 음양설(陰陽說)로 풀어본다. 그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동(動)의 상태가 다하면 정(靜)하게 된다. 정(靜)하여지면 음(陰)을 낳는데 정(靜)의 상태가 다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 동(動)과 정(靜)이 뿌리가 되어 양(陽)과 음(陰)을 나누니, 이 둘은 서로 맞서고 어울리며 변화를 만든다. 양과 음이 서로 어울려 변화무쌍한 세사(世事)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이제 이해의 폭이 생긴다. 다름은 단지 물성(物性)의 차이일 뿐이지 통(通)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물과 불로 이뤄진 술도 같은 이치다. 불이 양(陽)이라면 물은 음(陰)이요 술은 태극(太極)이다. 불은 움직이고(動) 물은 머문다(靜). 뿌리가 되는 두 원소는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양과 음, 물과 불, 이들이 머물고 도는 속에 인간사가 이어진다.
술은 생명이고 힘이다. 불이 쏘시개 역할을 한다. 차가운 물속에 불이 들어가 생명을 주고 힘을 준다. 원시(原始)의 생명에 불을 붙이고 그 불꽃이 알코올 위를 달린다. 스스로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불을 지피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차가움은 음(陰)이면서 이성적(理性的)이다. 반면 따뜻함은 양(陽)이면서 감성적(感性的)이다. 불타는 물, 즉 술은 음을 양으로 정(靜)을 동(動)으로 바꾸고 몸속으로 들어가 불이 된다. 여기서 물과 불의 조화가 깨지면 탈이 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그의 ‘목로주점(木爐酒店)’에서 술이 열기와 흥분, 격정을 불러일으키다가 생체를 녹이고 영혼까지 태워버린다고 했다. 물과 불의 역설적 만남이 조화(調和)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 균형이 무너지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일국(一國)에 미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잘못 다루면 경국지물(傾國之物)이 된다. 나라를 기울게 만드는 것이다.
금나라는 남송(南宋)과 연합한 원(元)나라에 중원의 패권을 내어준다. 원(元) 태종(太宗, 窩鏶台, 오고타이)이 날마다 연회를 베풀어 대신들과 취하도록 마시자 명재상(名宰相)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아뢴다. 술 거르는 틀(금구, 金口)의 쇠도 술에 상하여 이렇게 되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오장(五臟)이야 오죽하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러자 태종이 곧 깨닫고 절주(節酒)하게 된 일화(逸話)는 널리 회자되는 얘기다. 이후 원(元) 명(明) 청(淸) 조에 술의 폐해와 정치적 혼란 등으로 금주령(禁酒令)이 일시적으로 내려지기도 한다.
원(元)에 이어 중원(中原)을 지배한 명(明)나라는 13대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1563~
물과 불의 조화(調和)가 깨어지면 술은 불처럼 사람을 태운다. 그래서 불의 노래는 살을 저미는 아픔과 되돌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경험하지 않고도 미리 알아챌 수 있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黃昏)이 와야만 날 수 있는 것인가?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신문사 정치부 기자와 국회 입법보좌관, 정당 부대변인, 공기업 이사,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4.19혁명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모임,『사단법인 4월회』사무총장과『KAIMA』 전무이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