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불의 노래는 복록주(福祿酒)로 이어지고

김상돈의 酒馬看山(18)

 

불의 노래는 복록주(福祿酒)로 이어지고

 

 

물과 불이 만나 조화(調和)를 이룬 것이 술이다. 서로 이질적인 물질이 뒤섞여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 두 물질은 본성(本性)상 서로 배척해야 마땅하다.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섞어도 섞일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승(勝)하면 다른 한 쪽을 누르게 되어 있다. 물이 불을 끌 수도 있고, 불이 물을 말려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수지간과 같은 상극(相剋)임에도 상생(相生)을 한다. 죽일 듯이 하면서도 함께 잘 살아간다. 세상의 불가사의(不可思議)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선두가 단연 술이다. 불이 물을 휘감고 물이 불을 감싸 안는 모습은 상식을 벗어난다. 거기에 더해 불의 물이 마음을 적시고, 물의 불이 혼(魂)을 녹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물과 불의 만남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술을 동양의 음양설(陰陽說)로 풀어본다. 그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동(動)의 상태가 다하면 정(靜)하게 된다. 정(靜)하여지면 음(陰)을 낳는데 정(靜)의 상태가 다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 동(動)과 정(靜)이 뿌리가 되어 양(陽)과 음(陰)을 나누니, 이 둘은 서로 맞서고 어울리며 변화를 만든다. 양과 음이 서로 어울려 변화무쌍한 세사(世事)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이제 이해의 폭이 생긴다. 다름은 단지 물성(物性)의 차이일 뿐이지 통(通)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물과 불로 이뤄진 술도 같은 이치다. 불이 양(陽)이라면 물은 음(陰)이요 술은 태극(太極)이다. 불은 움직이고(動) 물은 머문다(靜). 뿌리가 되는 두 원소는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양과 음, 물과 불, 이들이 머물고 도는 속에 인간사가 이어진다.

술은 생명이고 힘이다. 불이 쏘시개 역할을 한다. 차가운 물속에 불이 들어가 생명을 주고 힘을 준다. 원시(原始)의 생명에 불을 붙이고 그 불꽃이 알코올 위를 달린다. 스스로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불을 지피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차가움은 음(陰)이면서 이성적(理性的)이다. 반면 따뜻함은 양(陽)이면서 감성적(感性的)이다. 불타는 물, 즉 술은 음을 양으로 정(靜)을 동(動)으로 바꾸고 몸속으로 들어가 불이 된다. 여기서 물과 불의 조화가 깨지면 탈이 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그의 ‘목로주점(木爐酒店)’에서 술이 열기와 흥분, 격정을 불러일으키다가 생체를 녹이고 영혼까지 태워버린다고 했다. 물과 불의 역설적 만남이 조화(調和)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 균형이 무너지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일국(一國)에 미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잘못 다루면 경국지물(傾國之物)이 된다. 나라를 기울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 금(金)나라 희종(熙宗, 1119~1149)은 어린 나이(16세)에 즉위하여 남송(南宋)으로부터 조공과 신하의 예(禮)를 받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중국화(中國化)를 시도하면서 지배체제를 공고히 한다. 그러나 자식들이 줄줄이 요절하고 공신(功臣) 완안종한(完顔宗翰)마저 죽으면서 도평황후(悼平皇后)에게 실권이 넘어간다. 희종은 이러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술의 불기운에 의지하고 만다. 폭음으로 밤을 지새우며 황족과 대신들을 숙청하고 사소한 일로도 아랫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과음에 따른 악정으로 신망(信望)을 잃으면서, 사촌동생 해릉왕(海陵王, 完顔迪古乃)에게 암살된다. 해릉왕 또한 천하의 미녀는 모두 황제소유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칙(詔勅)을 발표하고 실정(失政)을 일삼다가 부하에게 살해되고 만다.

금나라는 남송(南宋)과 연합한 원(元)나라에 중원의 패권을 내어준다. 원(元) 태종(太宗, 窩鏶台, 오고타이)이 날마다 연회를 베풀어 대신들과 취하도록 마시자 명재상(名宰相)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아뢴다. 술 거르는 틀(금구, 金口)의 쇠도 술에 상하여 이렇게 되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오장(五臟)이야 오죽하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러자 태종이 곧 깨닫고 절주(節酒)하게 된 일화(逸話)는 널리 회자되는 얘기다. 이후 원(元) 명(明) 청(淸) 조에 술의 폐해와 정치적 혼란 등으로 금주령(禁酒令)이 일시적으로 내려지기도 한다.

원(元)에 이어 중원(中原)을 지배한 명(明)나라는 13대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1563~

1620)로부터 서서히 쇠락(衰落)의 길을 걷는다. 재위 48년 중 30년은 아예 정사(政事)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스승이자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이 죽은 뒤에는 보물감상을 즐기고 술과 여자만 탐닉했다고 한다. 황제의 직에서 장기간 파업을 한 셈이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셋째아들 복왕(福王) 주상순(朱常洵)도 주색(酒色)에 빠진 무능한 군주(君主)였다. 이자성(李自成)의 반란 당시, 무리들은 3백 근에 달하는 복왕(福王)의 사지(四肢)를 자르고 살을 저며 사슴고기와 섞어 술안주로 삶아먹었다고 한다. 그의 몸에서 나온 기름도 술에 섞어 마셨는데, 이 술이 복록주(福祿酒)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과 불의 조화(調和)가 깨어지면 술은 불처럼 사람을 태운다. 그래서 불의 노래는 살을 저미는 아픔과 되돌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경험하지 않고도 미리 알아챌 수 있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黃昏)이 와야만 날 수 있는 것인가?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신문사 정치부 기자와 국회 입법보좌관, 정당 부대변인, 공기업 이사,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4.19혁명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모임,『사단법인 4월회』사무총장과『KAIMA』 전무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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