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책맥을 아시나요?

유상우의 에세이

 

책맥을 아시나요?

 

 

새날서점을 추억하다.

20대에 내가 다녔던 전북대학교 앞 정문에는 ‘새날’이라는 사회과학서점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전공서적을 구하러 구내서점에 갈 때 나는 새날에 서서 시집을 읽었다. 새날서점은 당시 퇴조하고 있던 사회과학 혹은 이념 서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전주에는 새날 말고도 사회과학서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날 서점은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약속장소는 으레 새날이었고 비가 오는 날에 서점은 대피 장소였다.

그러다가 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었다. 비오는 날 서점에 앉아 서점 앞의 음악사에서 틀어주는 노래를 들으며 우수에 잠기기도 했다. 혹은 음악사에 전화를 걸어 신청곡을 부탁하면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새날에서 김광석을 알았으며, 양희은과 김민기를 들었다. 그리고 신중현을 알았으며, 산울림을 듣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시기였다.

그리고 책도 참 많이 봤다. 1990년대 초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책이 지식과 정보를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뿐만 아니라 새날을 통해 다른 이의 소식을 듣고 그들과 소통하는 교류의 장소였다. 서점 앞의 유리에는 약속장소가 어디로 변경되었다거나 어디에서 기다린다는 포스트잇이 늘 붙어 있었다.

새날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인들로 이루어졌다. 알바가 아는 알바를 소개해서 같이 일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알바들의 유대도 강했다. 서점 주인님과 알바들은 같이 혹은 따로 술도 퍽이나 드시러 다녔다.

술뿐만 아니라 바둑도 엔간히 많이 두었다. 그 무렵은 이창호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기였으며, 조훈현의 전성기가 끝나는 시점이었다. 거기에 서봉수와 유창혁 등 세계 최강의 기사들로 한국바둑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새날서점은 건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에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새날을 기억하는 우리 조무래기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새날의 추억과 가치를 이야기했지만 한번 흘러간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뿐. 이제는 추억과 술잔에만 남은 기억이 되었다.

 

책맥을 아시나요?

그런데 세태에 밀려 사라진 서점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인들이 작은 서점을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인구가 100명이 되는 작은 마을에 귀촌한 분은 서점을 열기도 했다. 인구가 100명 정도 되는 곳에 연 서점이 놀랍게도 연 매출 8백만 원을 찍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전주도 서학예술마을에 몇 년 전부터 조지오웰이라는 서점이 들어섰다.

서학예술마을은 한옥마을에 있는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이곳에 아주 작은 서점을 연 것이다. 나도 책 살 일 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하지 않고 이집에 주문을 해 놓는다.

또 한 곳은 내가 다녔던 전북대 앞에 문을 연 북스포즈이다.

이집의 가장 큰 특징은 책맥을 하는 것이다. 책맥이란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서울 연희동의 책바, 상암동의 북아이북, 마포구 염리동의 퇴근 후 책 한 잔 등 이미 서울에서는 책을 읽으며 한잔의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북스포즈는 원두커피는 물론 수제맥주를 책을 보며 선택할 수 있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주고 있다.

피맥도 있고 치맥도 있다. 여기에 분식집에서 마시는 분맥 그리고 버거집에서 마시는 햄맥도 등장하고 있다. 맥주와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과의 결합인데 이 모두가 옳지만 책맥은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을 정도로 항상 옳다.

 

동네서점과 양조장의 이야기

술은 새로운 것과 융합하고 함께 부대끼다가 참신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존 소주문화처럼 마시고 취하는데 익숙한 문화도 좋지만 문화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 깃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야구장이나 축구장 등 스포츠현장에서 맥주는 삶을 유쾌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제 등의 문화행사에서도 장시간 상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맥주나 막걸리 혹은 와인을 마시는 것을 보기도 했다.

 

북스포즈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서점의 미래를 찾아서

여름이 시작될 무렵, 북스포즈는 일본 도쿄의 서점 공부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책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기존의 인식과는 조금 다른, 확장된 공간의 서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이벤트가 열리는 B&B, 출판 과정을 볼 수 있는 시부야 퍼블리싱 앤 북 샐러즈, 매달 주제를 정해 테마를 바꾸는 카모메북스,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츠타야 등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10곳의 서점에서 10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질문과 답변이 끊임없이 오가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 공유되는 공간, ‘동네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이 글귀를 보며 나는 동네양조장의 이야기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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