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한길주조 李秉福 대표
“무더운 여름날엔 밀 막걸리가 제격입니다”
전국 대리점에서 주문 받아 막걸리 빚는 양조장
때문에 이곳 막걸리 주조장은 당연히 쌀로 막걸리를 빚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밀가루만을 고집하여 밀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 ‘한길주조(대표 李秉福, 58세)’다.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여양로에 터 잡고 있는 ‘한길주조’는 간판도 문패도 달지 않은 양조장이다. 내비게이션이 아니면 찾아갈 수도 없다. 인근 사람들조차도 이 동네에 양조장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지낼 정도다.
여타 양조장은 간판을 내걸지 못해 안달이 나있고, 기회만 있으면 마케팅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데 ‘한길주조’는 이런(선전)일과는 거리가 멀다.
먼 길 찾아온 기자에게도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왜 그럴까?
“제 생각에는 양조장 하는 사람은 술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번 마셔본 사람들은 다시 찾게 되는 것이 술이 아닐까요?” 이 대표의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찾은 날 이 대표는 작은 아들(이예일, 대학 3년생)과 술밥을 찌고 있었다. 증기 열기가 가득한 큰 솥에 밀가루를 부으며 저어야 하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술밥 짓기를 끝내기를 기다려 그야말로 허름한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마주 했다.
한 우물만 파고 한길로만 쭈~욱 간다고 ‘한길주’
이 대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한길주’란 무슨 뜻인가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대폿집에서 ‘한길주’막걸리를 마시던 주당들이 ‘한길주’는 ‘사람 이름이다’ ‘아니다’를 놓고 다툼을 벌리다 결국에 전화를 걸어와 묻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많다”면서 “‘한길주’는 한길로만 쭈~욱 가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금의 한길주조를 운영하기까지의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포 고촌이 고향인 이 대표는 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83년 군 제대 무렵 신흥재벌들의 신화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본인도 그런 꿈을 안고 유통업에 뛰어 들었단다.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자동차 용품, 북세일즈 등도 해봤는데요,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주류유통을 시작했습니다. 한 때는 직원이 20여명에 달할 정도로 잘되었죠, 그 때 제가 주로 취급했던 술이 지금의 한길주의 ‘옛날식 전통 막걸리’였습니다. 2005년 당시 사장님이 공장 운영을 저 한테 제의해와 얼떨결에 양조장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철에는 밀 막걸리를 마셔라!
이 대표는 공기 좋고 물 맑은 여주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지만 술 빚는 일이 녹녹치는 않았다고 했다.
“처음 2년여 동안 참으로 고생도 많았습니다. 쉽게만 생각했던 술빚기가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는 것을 그 때야 깨 닳았습니다. 정성껏 빚지 않으면 술맛이 제대로 안 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니까 원하는 술맛이 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숙성 실에 들어가면 향긋한 과일향이 반겨줍니다. 그 향에 취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 밀막거리만 고집하시나요?
“한마디로 원자재 가격 때문이죠, 규모 있는 대기업들은 외국에서 쌀을 직수입해서 술을 담그기 때문에 원가면에서 유리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밀 막걸리를 빚는 겁니다. 쌀 막걸리가 밀 막걸리 보다 좋다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한길주 옛날식 막걸리’가 전국에서 판매 되는 것은 밀 막걸리 맛에 반해 있는 주당들이 많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이 대표는 쌀 막걸리는 톡 쏘는 맛은 있지만 구수한 맛은 없다고 했다. 밀은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초여름에 수확 하는 곡식이다. 때문에 밀은 냉기를 듬뿍 지니고 있어 열기를 내리는데 밀 만한 것이 없다. 여름철에 자주 먹는 음식 가운데 콩국수 같은 밀 음식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밀 막걸리는 여름철에 맞는 술이라고 있다. 맥주 또한 같은 논리다.
술집서 파는 동동주는 거의 한길주의 옛날식 막걸리
이들 대리점이 있는 지역의 술집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동동주는 거의 한길주의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가 10중 8,9다.
한길주의 유명세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등산객들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인 설악산 입구 상가에서도 한길주 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인기의 비결은 입국에서 발효까지 전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 막걸리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막걸리는 서민들이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특히 밀 막걸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균배양 작업인데 효모를 파종하기 위해서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곱게 부서야 하기 때문에 수 시간 허리를 숙여 작업하는 탓에 가장 힘든 작업 중 하나다. 기계로 작업할 경우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 구하기가 힘든 것이 현재 막걸리 업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1700㎖ 페트병에 들어 있는 6%의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는 생 막걸리로 유통기한은 1개월이다. 가장 맛있을 때는 출고 후 20일 쯤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냉장고에 두더라도 후발효가 일어나 맛이 더 성숙된다.
‘한길주조’에선 1700㎖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외에 750㎖도 출시하고, 750㎖ ‘자색고구마 生 막걸리’와 1700㎖ ‘좁쌀 한길주’도 출시한다. 모두 6%의 알코올을 지니고 있다.
‘자색고구마 生 막걸리’는 여주에서 대량 생산되는 자색고구마를 원효로 하여 빚은 막걸리인데 여주지역 대표 브랜드로 알려지고 있다.
<술 빚는 남자> 유고 남기고 떠난 부인
“사실 지난 초봄에 집사람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참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아들의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고 하면서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가 A4용지에 인쇄된 글을 건넸다. 이 대표의 부인 조인선 씨가 세상 떠나기 7일전에 썼다는 수필 <술 빚는 남자>다. 글의 끝 단락은 이렇다.
이른 아침, 새로 걸러진 술이 병에 담겼다.
“고단한 농부를 위로 하는 농주처럼 사람을 살리는 술이 되어 줄래?”
상표가 달린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변사또 앞에 점고(點考)받는 기생처럼 일렬로 서 있다가 줄줄이 박스에 담기는 술병들을 쓰다듬으며 내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며….
양조장 굴뚝에 술밥 찌는 연기가 솟는다.(2017.2)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