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무더운 여름날엔 밀 막걸리가 제격입니다”

여주시 한길주조 李秉福 대표

 

“무더운 여름날엔 밀 막걸리가 제격입니다”

전국 대리점에서 주문 받아 막걸리 빚는 양조장

 

 

경기도 여주는 쌀로 유명세를 떨치는 고장이다.

때문에 이곳 막걸리 주조장은 당연히 쌀로 막걸리를 빚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밀가루만을 고집하여 밀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 ‘한길주조(대표 李秉福, 58세)’다.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여양로에 터 잡고 있는 ‘한길주조’는 간판도 문패도 달지 않은 양조장이다. 내비게이션이 아니면 찾아갈 수도 없다. 인근 사람들조차도 이 동네에 양조장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지낼 정도다.

여타 양조장은 간판을 내걸지 못해 안달이 나있고, 기회만 있으면 마케팅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데 ‘한길주조’는 이런(선전)일과는 거리가 멀다.

먼 길 찾아온 기자에게도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왜 그럴까?

“제 생각에는 양조장 하는 사람은 술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번 마셔본 사람들은 다시 찾게 되는 것이 술이 아닐까요?” 이 대표의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찾은 날 이 대표는 작은 아들(이예일, 대학 3년생)과 술밥을 찌고 있었다. 증기 열기가 가득한 큰 솥에 밀가루를 부으며 저어야 하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술밥 짓기를 끝내기를 기다려 그야말로 허름한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마주 했다.

 

한 우물만 파고 한길로만 쭈~욱 간다고 ‘한길주’

이 대표는 첫마디로 “요즘 술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먹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술을 빚어도 고객들은 술집이나 마트에서 우선 대기업이 내놓은 술에 손이 가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영세 막걸리 양조장들은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아무리 마케팅을 잘하려고 해도 대기업 파워를 당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술을 한번 마셔본 고객들이 다시 찾게 하기 위해 좋은 술을 열심히 만드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이 대표의 푸념 같지만 현재 막걸리업계가 안고 있는 현주소다.

이 대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한길주’란 무슨 뜻인가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대폿집에서 ‘한길주’막걸리를 마시던 주당들이 ‘한길주’는 ‘사람 이름이다’ ‘아니다’를 놓고 다툼을 벌리다 결국에 전화를 걸어와 묻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많다”면서 “‘한길주’는 한길로만 쭈~욱 가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길주’는 ‘한 우물만 파고 한 길로만 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1965년 양조장을 시작했다. 그동안 막걸리 사업의 침체로 경영자가 4번이나 바뀌면서 지금의 이병복는 대표가 2006년부터 양조장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의 한길주조를 운영하기까지의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포 고촌이 고향인 이 대표는 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83년 군 제대 무렵 신흥재벌들의 신화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본인도 그런 꿈을 안고 유통업에 뛰어 들었단다.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자동차 용품, 북세일즈 등도 해봤는데요,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주류유통을 시작했습니다. 한 때는 직원이 20여명에 달할 정도로 잘되었죠, 그 때 제가 주로 취급했던 술이 지금의 한길주의 ‘옛날식 전통 막걸리’였습니다. 2005년 당시 사장님이 공장 운영을 저 한테 제의해와 얼떨결에 양조장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철에는 밀 막걸리를 마셔라!

이 대표는 양조장 운영을 시작하면서 주류유통회사는 직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때의 직원들이 현재 한길주 막걸리를 유통시켜주는 일등공신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공기 좋고 물 맑은 여주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지만 술 빚는 일이 녹녹치는 않았다고 했다.

“처음 2년여 동안 참으로 고생도 많았습니다. 쉽게만 생각했던 술빚기가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는 것을 그 때야 깨 닳았습니다. 정성껏 빚지 않으면 술맛이 제대로 안 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니까 원하는 술맛이 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숙성 실에 들어가면 향긋한 과일향이 반겨줍니다. 그 향에 취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 밀막거리만 고집하시나요?

“한마디로 원자재 가격 때문이죠, 규모 있는 대기업들은 외국에서 쌀을 직수입해서 술을 담그기 때문에 원가면에서 유리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밀 막걸리를 빚는 겁니다. 쌀 막걸리가 밀 막걸리 보다 좋다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한길주 옛날식 막걸리’가 전국에서 판매 되는 것은 밀 막걸리 맛에 반해 있는 주당들이 많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이 대표는 쌀 막걸리는 톡 쏘는 맛은 있지만 구수한 맛은 없다고 했다. 밀은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초여름에 수확 하는 곡식이다. 때문에 밀은 냉기를 듬뿍 지니고 있어 열기를 내리는데 밀 만한 것이 없다. 여름철에 자주 먹는 음식 가운데 콩국수 같은 밀 음식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밀 막걸리는 여름철에 맞는 술이라고 있다. 맥주 또한 같은 논리다.

 

술집서 파는 동동주는 거의 한길주의 옛날식 막걸리

‘한길주’는 규모는 작지만 전국구다. 부산을 비롯, 대전, 인천, 전남·북, 원주, 속초, 마산, 진주, 천안과 경기도의 경우 김포, 부천, 시흥, 안산, 수원, 평택, 의정부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이들 대리점에서 그 때 그 때 주문서를 보내면 그만큼만 막걸리를 빚는다. 한 마디로 직접 소매를 하지 않으니까 이웃 식당에서도 ‘한길주’가 있는지 조차 모를 수 밖에….

이들 대리점이 있는 지역의 술집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동동주는 거의 한길주의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가 10중 8,9다.

한길주의 유명세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등산객들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인 설악산 입구 상가에서도 한길주 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인기의 비결은 입국에서 발효까지 전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 막걸리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막걸리는 서민들이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특히 밀 막걸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균배양 작업인데 효모를 파종하기 위해서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곱게 부서야 하기 때문에 수 시간 허리를 숙여 작업하는 탓에 가장 힘든 작업 중 하나다. 기계로 작업할 경우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 구하기가 힘든 것이 현재 막걸리 업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1700㎖ 페트병에 들어 있는 6%의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는 생 막걸리로 유통기한은 1개월이다. 가장 맛있을 때는 출고 후 20일 쯤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냉장고에 두더라도 후발효가 일어나 맛이 더 성숙된다.

‘한길주조’에선 1700㎖ ‘옛날식 전통 生 한길주’외에 750㎖도 출시하고, 750㎖ ‘자색고구마 生 막걸리’와 1700㎖ ‘좁쌀 한길주’도 출시한다. 모두 6%의 알코올을 지니고 있다.

‘자색고구마 生 막걸리’는 여주에서 대량 생산되는 자색고구마를 원효로 하여 빚은 막걸리인데 여주지역 대표 브랜드로 알려지고 있다.

 

<술 빚는 남자> 유고 남기고 떠난 부인

기자와 막걸리 얘기를 나누던 이 대표의 인상이 일순 침통해졌다.

“사실 지난 초봄에 집사람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참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아들의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고 하면서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가 A4용지에 인쇄된 글을 건넸다. 이 대표의 부인 조인선 씨가 세상 떠나기 7일전에 썼다는 수필 <술 빚는 남자>다. 글의 끝 단락은 이렇다.

 

이른 아침, 새로 걸러진 술이 병에 담겼다.

“고단한 농부를 위로 하는 농주처럼 사람을 살리는 술이 되어 줄래?”

상표가 달린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변사또 앞에 점고(點考)받는 기생처럼 일렬로 서 있다가 줄줄이 박스에 담기는 술병들을 쓰다듬으며 내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며….

양조장 굴뚝에 술밥 찌는 연기가 솟는다.(2017.2)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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