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술의 명가, 사곡양조원 林 憲 昌 대표
밤(栗) 소주 들어 보셨나요?
증류식 고급술로, 향이 은은하고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
이 중에서도 대추와 밤은 인생 첫 출발점인 결혼식 날 웃어른들에게 폐백을 올릴 때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 치마폭에 넉넉히 뿌려주는 과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밤은 전 세계 밤 생산량의 약 22%를 차지 할 만큼 많은 량의 밤이 생산되고 있다.
밤에는 탄수화물·단백질·기타지방·칼슘·비타민(A·B·C) 등이 풍부하여 어린아이들의 발육과 성장에 좋다. 특히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어 피부미용과 피로회복·감기예방 등에 효능이 있으며 생밤은 비타민C 성분이 알코올의 산화를 도와주어 술 안주로도 좋은 과실이다.
특히 밤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3정승을 바라는 것 보다 밤이 가지고 있는 근본 때문일 수도 있다. 밤은 다른 종자와 달리 싹을 틔우고서도 아주 오랫동안 껍질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밤송이의 이러한 특성을 근본 즉, 조상을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상을 잊지 않는 밤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다.
공주의 밤 소비 촉진책으로 밤술 생산
그래서 공주 밤이 유명하다. 때문에 공주지역에서는 밤을 이용한 많은 음식, 가공식품 등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밤으로 각종 술(막걸리, 증류식 소주)을 빚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가 ‘사곡양조원’의 임헌창(林憲昌, 48세) 대표다.
특히 그동안 사곡양조원에서는 주로 밤을 이용한 막걸리를 빚어 오다가 지난 2015년 11월부터는 증류식 소주인 밤소주를 출시하고 있어 주당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과연 밤소주는 어떤 맛일까?
기자는 밤소주 맛을 탐하기 위해 불원천리 공주로 달려갔다. 들녘은 온통 가을이다. 푸르던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가을햇살이 참 좋다.
사곡양조원은 사곡우체국 앞에서 막걸리를 위주로 술을 빚어오다가 제 1공장에서 약 200m쯤 떨어진 곳에 2013년 3월에 제 2공장을 증설하고 약주와 증류식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500여 평 대지위에 세워진 양조원 건물에는 밤 소주를 생산하기 위한 최신식 기계들이 즐비하고 발효탱크 안에서는 밤술이 익어가는 향이 코를 자극한다.
전국적으로 쌀이 넘쳐나는데 왜 밤술을 생각 했을까?
임 대표는 이에 대해 “공주의 밤 생산량은 연간 6만t 정도로 전국 생산량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밤은 저장이 어렵고 판로도 한정돼 있다 보니 재배 농가의 소득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해 늘 애를 먹고 있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보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밤 소비를 촉진 할 것인가를 고민해 오다가 밤으로 술을 빚으면 밤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밤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잘 나가는 양조장 찾아 머슴처럼 일해주고 양조기술 배워
임 대표는 연기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고, 20대에 주류유통업계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60여년의 역사를 지닌 지금의 사곡양조장을 1997년 3월 인수해서 오늘에 이른다. 그동안 주류유통업을 하면서 여러 양조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양조기술의 전부인 상태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 대표는 못처럼 손에 넣은 양조장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 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안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30여 양조장을 방문하여 양조기술을 가르쳐 줄 것을 청했으나 선뜻 기술을 전수 해주는 곳은 없었단다.
그래서 무조건 잘 나가는 양조장을 찾아가 청소도 해주고 머슴처럼 일을 하면서 양조기술을 터득해 나갔다.
결론은 술맛이 좋아야 하고, 그 술맛이 한결 같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 대표는 지금 사곡양조원에서 생산하는 술만큼은 그 맛이 한결 같다고 자부한다.
임 대표는 “처음 양조장을 인수해서 남들처럼 쌀 막걸리, 구기자, 옥수수 막걸리 등을 생산하다가 밤 막걸리까지 개발했지만 지역이 워낙 좁아서 판매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유통 기간이 긴 증류식 소주를 생산하되 지역 특산물인 밤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 소주를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밤소주 개발은 색각만큼 녹녹치 않았다고 한다.
밤 껍질 탈피도 어렵고, 밤약주를 빚어서 발효와 숙성을 거쳐 감압증류, 이물질 여과, 저온숙성, 출고까지 약 3개월여가 걸려야 겨우 밤 소주가 되었다.
문제는 밤 껍질 탈피가 예상외로 애를 먹였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일본 고치 현에서 122년을 이어오면서 밤 술을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조건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렵사리 공장을 찾은 임 대표에게 쉽게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일본까지 와서 기술을 못 배운다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간청을 거듭 요청하여 어느 정도 기술을 배워 와서 지금의 밤 소주를 생산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외국의 유명 양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개발한 ‘眞쾌남’
밤알맹이를 준비된 쌀과 섞어 1주일간 저온 발효하면 독특한 향의 알밤막걸리가 된다. 다시 이를 20∼30일 발효하면 밤약주가 된다. 밤약주를 증류기에 거른 다음 숙성시키면 맛이 부드러운 밤소주(왕률주)가 된다.
현재 사곡이 생산하는 밤소주는 밤과 백미만 가지고 빚은 ‘栗 왕율주(330㎖)’를 알코올 도수 40%와 25%짜리를 출시하고 있고, 밤, 오미자, 오가피, 구기자, 동총하초, 토사자(菟絲子), 벌꿀 같은 각종 한양재로 빚은 ‘眞 쾌남’을 출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330㎖ 유리병에 넣어 40%와 25%를 출시하고 있다.
어디 소주뿐이겠는가. 공주 지방에서 생산되는 오디로 빚은 15% 오디와인도 생산한다. 그리고 밤과 백미로 빚은 13.5%의 맑은술 ‘밤꽃향기’도 출시한다.
물론 알밤 막걸리, 좁쌀 막걸리, 찰옥시시 막걸리, 구기자주, 공주알밤왕밤주, 오늘엔 메론주 같은 막걸리도 출시한다.
임 대표는 자체 개발한 최첨단 기계 설비를 갖추고도 2년 넘게 밤소주 기술개발에 몰두했다고 한다. 맛좋은 밤소주를 개발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고 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 왕률주란 이름을 달고 출시되자 주당들은 환호했다.
밤을 주원료로 해서 빚은 생산된 밤소주가 국내 술애호가들에게 처음 대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기왕에 만드는 거 외국의 유명 양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급 전통주를 만들어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밤소주는 처음 혀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깔끔한 맛, 독특한 향기가 특징이다. 임 대표는 사곡양조장의 왕률주가 지역특산품으로 활용되어 지역에 생산되는 밤 소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빠지지 않고 매년 성금 기탁
이 처럼 양조장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임 대표는 “고장의 좋은 농산물을 활용해 차별화한 제품을 생산해서 이를 관광 상품으로 연계시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임 대표는 틈나는 대로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 사곡면 지역봉사회 회장을 필두로 지역의 독거노인과 결손아동을 돕고 연탄배달 봉사, 하천쓰레기 줍기, 뚝방 코스모스길 조성사업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유치위원회, 주민자치위원, 바르게살기운동과 공주시 노인자문위원을 맡아 지역의 어려운 노인들의 애로사항을 수렴해 도움을 주고 있다.뿐만 아니라 매년 불우이웃돕기에 500만 원 이상 7년 동안 성금을 기탁하고 있는데 이 때 가족 모두가 출동한다. 임 대표는 “가족들에게 이윤만 추구하는 가장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 줌으로 자식들도 보고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이론이 아닌 행동하는 기업가 되고 싶은 것이다.
공주 알밤막걸리·밤소주 대만 수출길 열렸다
임 대표가 97년 사곡양조장을 인수할 때 주변 사람들은 망해가는 양조장을 왜 인수하려드느냐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양조장을 인수하여 이제는 번듯한 술도가로 자리매김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제야 임 대표의 진면목을 알아주고 그가 빚는 술을 즐겨 마신다.
15명의 직원들과 밤낮 없이 좋은 술 빚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대만 사람들도 알았나 보다. 지난 해 여름 드디어 알밤막걸리와 밤소주가 수출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지난 해 7월7일 대만 주류업체 한센 인터내셔널(Hansen International Co.)과 연간 10만 달러 규모의 알밤 전통주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첫 수출 분을 선적했다.
임헌창 대표는 “지난 16년 4월 서울국제주류문화제를 찾은 대만 업체가 우리 전통주 맛을 보고 전격적으로 수입 의사를 밝혀 수출이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좋은 술을 만들면 언젠가 알아주는 고객이 나타날 것으로 믿고 일해 왔다”며 “대형 마트에서 사곡의 밤술을 납품받아 주는 것은 술맛 때문일 것”이라며, “대만 수출을 계기로 해외진출에 더욱 힘을 기울여 우리 전통주도 고급화하면 양주, 와인, 사케와 당당히 겨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