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에세이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빚는다②
토르 라그나로크를 보다
얼마 전 오밤중에 나가 토르 라그나로크(Thor:Ragnarok)라는 영화를 보았다.
평소에도 마블의 어벤져스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의 연작 영화를 즐겨 보았다.
심심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조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토르가 존재하는 북유럽의 신화에는 위그드라실이라는 우주의 나무가 있다. 위그드라실은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우주를 뚫고 자란 우주수(宇宙樹)다. 북유럽의 주신(主神)인 오딘이 심었다고 하는데 이 나무가 너무 커서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뒤덮을 정도라고 한다. 위그드라실은 세 가닥의 거대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지하의 세계인 니플헤임, 또 하나는 인간세계인 미드가르드로 마지막으로 신들의 영역인 아스가르드로 뻗어 있다.
이러한 우주의 나무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신단수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 등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로 내려왔다. 풍백과 우사와 운사는 바람과 비와 구름을 뜻하는데 이는 곧 농업을 의미한다. 환웅은 국가경제의 기본 틀을 농업에 둔 것이다.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닿은 곳에는 지혜의 샘이 있다. 이 지혜의 샘을 오딘은 눈을 잃고 마셔서 지혜를 얻는다. 나는 이 지혜의 샘이 술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의 경우 꿀로 만드는 술을 많이 마셨으니 아마도 벌꿀술 미드가 아닐까 한다.
오딘에게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이 있다. 큰 딸은 전쟁의 신인 헬라이며 아들 둘은 토르와 로키다. 로키는 끊임없이 오딘의 뒤를 이어 왕이 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오딘은 아스가르드를 통치하는 초기에 죽음의 신인 헬라를 앞세워 정복과 약탈을 통해 국가경영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헬라를 나오지 못하게 봉인한다. 오딘의 후기 통치는 농업을 근간으로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후계자를 토르로 삼았기 때문이다. 토르는 천둥의 신이다. 천둥이 치면 바람이 불고 구름을 몰고 와서 비가 내린다. 바로 토르는 농업을 관장하는 신으로 볼 수 있다.
아스가르드를 다시 차지하려는 헬라에 맞서 토르는 분투하지만 토르의 상징인 묠니르가 가루가 되어버리고 패퇴를 거듭한다. 그러나 망치가 없다 해도 천둥의 신을 자각하는 토르의 힘은 막강하여 결국 헬라를 무찌른다. 그 과정에서 토르도 아버지 오딘처럼 한쪽 눈을 잃고 만다.
오딘이나 토르가 한 쪽 눈을 잃은 것은 정복과 농경 가운데 정복의 눈을 감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초기의 국가경영을 약탈과 전쟁을 통해 이끌었다면 후기에는 생산력이 훨씬 좋은 농업이 국가경제의 근간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유목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인강의 비옥한 토지를 버리고 유대인을 이끌고 출애굽(이집트 탈출)을 했던 선지자 모세가 생각난다.
결국 술이란 농업의 반영이다. 농업이 없는 술은 뿌리가 없는 것과 같다. 오딘도 토르도 그들 나라의 농산물로 생산한 술을 마셨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지역특산주를 다시 생각하다
그런데 사소하지만은 많은 문제가 있다. 과거 농민 주는 본인이 생산한 농산물 50%를 쓰면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특산주로 변경되어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이나 혹은 인접 시군구에서 구입하는 주원료 3가지를 쓰면 추천을 해준다. 주원료에는 주정, 누룩, 효모, 당질원료 등이 빠진다. 이렇게 되다보니 몇몇 술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국산쌀 95%를 쓰고 수입밀 5%를 쓰게 되면 추천을 받을 수 없다. 주원료 3개를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이나 인접 시군구에서 구해야 하는데 주원료 2개 가운데 1개가 수입이기 때문이다.
지역특산주제도라는 것이 지역의 농산물 소비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90% 이상 압도적으로 자기 고장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술에는 구제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수입농산물을 소량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주정이 주원료에서 빠지다 보니 웃지 못 할 상황도 발생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주정은 열대의 값싼 타피오카 등으로 만든 순도가 95% 이상 되는 순수 알코올이다.
가령 이 주정을 90% 이상 쓰고 10% 이하를 국산 원료로 술을 만들어 브랜딩을 하면 지역특산주가 된다. 그렇게 되면 증류주의 경우 주세가 72%에서 36%로 경감되어 막강한 가격경쟁력을 갖는다. 주세뿐 아니라 교육세도 반절이 떨어지며, 포장재에도 주세와 교육세가 면제된다. 이러다 보니 주정을 대부분 부어 담금주 혹은 술을 만드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어떤 양조장은 90% 이상의 국산 원료를 쓰고서도 지역특산주의 혜택을 못보고 있고 어떤 곳은 수입 원료인 주정 90%를 쓰고서도 지역특산주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빚는다
술은 농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상들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 혹은 남편 혹은 아버지를 위해 그에 맞춤하는 술을 빚었다. 간이 나쁜 혹은 위가 좋지 않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신체를 보하는 술을 빚었다.
결국 술이란 인간학이며 인문학의 영역임을 느낀다.
글쟁이는 글로 춤꾼은 춤으로 그리고 술쟁이는 술로 보여줘야 함을 알고 있다. 결국 술이란 물과 같아서 그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흘러간다.
술쟁이들여! 당신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열렬히 그리워하며 술을 빚으라.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