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당신은 누구시길래

권녕하 칼럼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당신은 누구시길래

 

개해(戊戌年) 들어와 기록적인 한파가 몰려온 날 새벽녘, 자라목처럼 웅크리고, 상행선

KTX를 기다리는데, 무려 18분 연착이다. 2018년 첫 한파에 18분 연착이라! 잘 달리는 KTX가 호남, 충남 지역에 내린 눈 폭탄에 놀랬나보다. 역에 도착했는데 문이 안 열린다. 승하차 자동 출입문이 얼어붙은 것이다. 승무원들이 안팎에서 발로 쿵쿵 걷어차고 주먹으로 쥐어박고(?), 그 북새통 떠느라 또 연발착이다. 저런 저런! 21세기에도~ 하다말고 쿡 웃음이 나온다. 기계도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맞아야 해!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이 오작동 하니까, 무중력 상태로 수영하듯 둥둥 뜬 채 렌치를 찾아들고 탕탕 충격을 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니까 그랬겠지만, 그 배역의 국적이 러시아였고 우주선은 ‘소유즈’였다. 추운 나라에서는 굼뜬 기계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적당히 충격’을 주는, 즉 ‘때리기’였던 것이었다.

 

오늘날 ‘개는 맞아야 한다’고, 말하면, 동물학대니 비인격적이니 미개인이니 하며, 별별 비난이 다 쏟아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중진국이 되더니, 생산 보다 분배에 정치력을 쏟기 시작했고, 그 흐름에 발맞추듯 사람이 사는 실내로 애완견이 야금야금 입주(?)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3만 불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자, 또 그 흐름에 따르듯 ‘반려견’으로 품격이 격상됐다. 이어서 개를 자식처럼 키우며 “엄마한테 와야지!”, “밥 먹고 놀아!” 둥둥 아예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개를 사람 취급하며 ‘인생 반려견’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사람이나 이 사람이나 똑같이 한 표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이 이런 실정인데~ ‘개는 때려가면서 키워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하면, 난리 북새통이 날 것이 뻔하다. 더구나 세상살이 돌아가는 판때기가 ‘개 패듯 패고 싶을 때’가 있거나 자꾸 생기거나 해서 우울증(憂鬱症)이 생길 정도인데, 과연 개를 위해야 할지, 사람을 챙겨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라면, 차라리 물에 던져놓고 누구 손(?)을 먼저 잡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더 명쾌할지도 모른다.

다리 밑이나 개울가에서, 한 세대 전 황구(黃狗)를 잡아 매달아 쳐 죽여 꼬실러 먹어도 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 때도 그런 인간들은 ‘짐승 같은 사람, 잔인한 사람’이라 욕했었다. 다만 혈통 좋은 개들은 부잣집에서 대접(?)까지 받으며 서민들보다 귀하게 살기도 했었다. 지금도 ‘보신탕용이냐 아니냐’의 경계선에 걸쳐진 팔자인 것은 맞지만, 한 세대 전보다는 분명히, 개의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됐고, 그래서 짐승(?) 부류까지도 사람에게 잘 만 보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애완동물의 천국(?)이 된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개해를 맞이하여 지금부터라도 겸허하게(?) 개처럼 꼬리를 내리고 살아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길래 도대체 수천 년 동안 찬바람만 불면 날 잡아 죽여 두드려 패대는 것일까.

 

겨울 찬바람 불어오면, 동해 창파 울렁대는 수평선을 따라 명태 잡이 어선들이 가물가물 출렁인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찬 물 따라 회유하는 명태는 러시아도 북한도 일본도 멀리 남해를 빙 돌아 찾아온 중국도 임자가 따로 없다. 잡힌 날 그 배에 따라 비싼 나라에 끌려가면 몸값이 비싸지고 싼 나라에 끌려가면 싸질 뿐 제 맘대로 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잡은 인간 마음대로이고 잡힌 놈 팔자가 그 정도일 뿐이다. 다만, 한국에는 절대! 끌려가면 아니 된다. 그야말로 명태 일생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다. 쥑일 거면 쥑이고 먹을 거면 먹기나 하지, 쥑여 놓고 말려서 패대고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고, 날이 추워지면 산골짜기 눈벌판에다 매달아 놓고, 얼렸다 녹였다 삭신을 괴롭히는데, 이건 죽은 몸이 변덕스런 날씨 따라 도대체 근질거려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이런 염습(殮襲)을 하는 걸 보니, 여기가 바로 명태 지옥(地獄)이 아니겠는가.

바로 맞혔다. 개 패듯 하던 DNA를 몽땅 명태에게 쏟아내고 분풀이하는 형국인데, 내 몸이 죽고 죽어 인간들의 우울증이 치유된다면, 이 한 몸 죽고 또 죽으리라! 다음은 명태 회심곡이다.

 

“온 몸이 말라 비틀려/ 허리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을 참고/ 몸 더 마르기 전에/ 남은 힘 모아/ 죽어도 온전히 죽으려고/ 온 몸 쭈욱 펴고/ 한껏 숨 들이쉰 다음/ 입을 쫘악 벌리고/ 손 발가락 끝까지 힘 준 그 순간/ 숨을 뚝 멈춘다/ 그리고 죽어버리자// 이젠 썩던지 얼던지 찢던지 굽던지 삶던지/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던지/ 제사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던지/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래서 무술년 개 팔자에 북어 대가리나 하나 입에 물면 상팔자 맞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