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가 만난 술과 사람 ②
‘음식&술’ 페어링을 강조하는 박종혁 셰프
“술은 함께 여행하는 친구와 같다.”
지난 2004년에 만들어져 전 세계를 흠뻑 취하게 한 미국 영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Sideways)’, 와인 애호가인 주인공 ‘마일즈’가 결혼을 일주일 앞둔 단짝 친구 ‘잭’과 함께 캘리포니아 포도주 마을로 가는 여정을 담은, 와인을 소재로 한 우정여행 로드무비다.
와인 산지로 유명한 나파밸리(Napa Valley) 요리학교에 잠시 머물던 때, 이 영화를 보게 된 박 셰프는 그때부터 술 기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연한 기회에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이 쓴 책 <풍경이 있는 술 기행>을 접했다. 그 때부터 허 교장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사람이자 동경의 대상이 됐다. 그렇게 박 쉐프는 ‘한국판 사이드웨이’를 꿈꾸며 2012년 막걸리학교 문을 두드렸다.
내 글의 첫 번째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싱글인 19년차 요리사 박종혁이다. 누구보다 음식과 술의 궁합에 관심이 많은 요리사. 그는 리츠칼튼(Ritz-carlton Seoul), 메리어트(Marriott Hotel USA), 하얏트(Park hyatt Hotel Seoul), 힐튼(Conrad Hotel Seoul) 등 세계적 명성이 높은 호텔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며칠 전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박 셰프에게 연락을 했다. ‘당신이 추천하는 레스토랑에서 술 한 잔 나누며 수다를 떨자’고, 그는 ‘설후야연’을 선택했다. 이곳은 지난해 ‘미쉐린 가이드’에서 2스타를 받은 ‘권숙수’의 권우중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음식점이다. 박 셰프와 권 셰프는 6년 전 이탈리아 출장 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두 사람은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 요리학교 주관으로 열린, 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리는 한국 술 페어링 행사에 함께 참여했다.
우리는 식전주로 스페인 맥주인 ‘에스텔라 담 이네딧(Estrella Damn Inedit)’을 골랐다. 에스텔라 담 이네딧은 4년 동안 세계 1위 레스토랑으로 꼽혔던 ‘엘 불리(EL BULLI)’의 오너 쉐프이자 분자요리의 창시자인 페란 아드리아가 공동으로 참여해 개발한 프리미엄 맥주다.
맥주 특유의 포만감을 최소화하고, 음식의 풍미를 돋구어주는 최고급 정찬용 술이다. 와인에 대응할만하니 와인 잔에 따라 마셨다. 황금빛을 띠며 맥아, 밀, 고수풀, 오렌지껍질, 감초의 독특한 조합으로 특유의 과일, 꽃, 신선한 효모, 달콤한 아로마 향이 입 안 가득 풍부하게 퍼지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최근 에스텔라 담 이네딧 맥주 공장을 다녀온 박 셰프는 한국도 이처럼 양조 전문가와 셰프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술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양조인의 취향에 맞춘 술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시장 친화적인 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도자기 회사 ‘광주요’는 셰프가 제안하는 그릇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술도 이처럼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하다는 게 박 셰프의 생각이다.
식전주를 음미한 뒤 선택한 술은 ‘2017년 햅쌀로 빚은 첫 술’이다. 국순당에서 지난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막걸리의 날’을 맞아 한정품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이 술은 지난 해 수확한 경북 안동 햅쌀로 빚은 프리미엄 생막걸리이자 1년에 단 한 번 빚는 햅쌀 막걸리다. 이 술을 보니 지난 2009년 막걸리학교에서 처음으로 햅쌀 막걸리 행사를 기획했던 때가 떠올랐다. ‘햅쌀로 빚은 첫 술’은 가벼운 탄산감과 과일 향이 부드럽게 올라오며 산뜻하고 깔끔한 맛으로 설후야연의 주안상과 잘 어울렸다.
박 셰프는 기본적으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을 좋아한다. 그의 눈길을 끈 술은 면천 두견주와 김포금쌀 선호 생막걸리다. 박 셰프는 본인이 좋아하는 술을 만나면, 직접 그 양조장을 다녀올 만큼 술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양조장에 가서 술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마셔보면 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 중인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셰프는 현재 대덕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경기도 용인의 한옥체험 숙박시설인 ‘효종당(孝悰堂)’을 가족들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온지음’ 같은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음식 코스별로 한국 술 페어링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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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과 소통의 연속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만남을 이어주는 술과 음식이 있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진심 어린 만남과 소통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운치 있는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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