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 속 양조장 되살려 오산시 유일한 ‘오산양조’ 설립

김유훈 대표(좌)와 오서윤 이사(우)는 오산양조장이 지역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수 있을까를 항상 논의 한다.

(주) 오산양조 金裕勳 대표, 吳抒昀 이사

옛 추억 속 양조장 되살려 오산시 유일한 ‘오산양조’ 설립

첫 출시한 ‘요리술’이 인기 끌어 ‘오산양조’ 견인역할 톡톡

 

옷깃 한번 스치는 것도 500겁(劫:측정할 수 없는 시간)의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의 인연,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연이 바위처럼 쌓여서 만들어졌을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수한 인연으로 맺어져 사회가 구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도 오산시에 둥지를 틀고 있는 (주)오산양조의 김유훈(金裕勳, 55) 대표와 오서윤(吳抒昀, 41) 이사도 두 사람 간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오산양조장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 같다. 양조장을 찾아 두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들은 단순히 막걸리를 빚는 것이 아니고 오산시를 문화도시로 만들려는 전초기지로 양조장을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현재 오산양조장이 새 건물로 짓기 전만 해도 이 터에선 김 대표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오산식품이 있던 자리다.

3년 전 양조장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의 센터가 되는 위치에 화장실을 만든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이 지역에는 5일마다 오매장터에서 오일장이 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공중화장실이 없어 오가는 이들이 불편을 겪으며 살아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 대표가 양조장 건물을 지으며 건물 정 중앙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무료로 이용하도록 했다. 초기엔 동네 사람들조차 이해를 못하고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아니냐”고 수군댔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산 시민들을 위한 착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최근에서야 고마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조장 정 중앙에 화장실 짓고 장터사람들이 이용토록

현재 오산양조장이 새 건물로 짓기 전만 해도 이 터에선 김 대표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오산식품이 있던 자리다. 오산시가 6년 전 이 일대를 새롭게 꾸미기 위해 주거환경정화사업을 벌이자 김 대표는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김유훈 대표가 수시로 술 익는 정도를 체크한다.

김 대표는 마침 10여m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 양조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양조장을 세울 계획을 갖게 된다. “그나마 예전 장터 모습이 조금 남아 있던 곳을 생각 하던 중 양조장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활기찬 장터마을의 모습이 그리웠습니다. 거기에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과 뜻을 모아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양조장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인 김 대표가 양조장을 짓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 맞춰 막걸리 빚기 공부를 하고 양조장 일을 하고 싶었던 오서윤 씨를 오산시가 주선 해줘 양조장 건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그 때가 2016년 여름, 이런 게 바로 인연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밤낮 가리지 않고 양조장 건립에 매진했고, 주변에서는 이들이 고생한다며 건물 짓는데 도움을 준 지인도 많았다고 했다.

현재 오산시 인구는 대략 20만 명 정도다. 그런데 이 가운데 김 대표처럼 순수 오산 토박이는 6% 남짓, 거의 객지 사람들이다 보니 오산을 단지 잠자고 일터로 나가는 숙박공간으로 밖에 생각 안 해 오산을 사랑하는 토박이들 입장에서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김 대표는 뜻있는 친구들을 모아 오산을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제가 오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지만 태어난 고향에 애착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양조장에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후원에 앞장서고 있다.

술빚기, 강의, 회의 참석으로 바쁜 사람, 오 이사

오산양조에서 오 이사는 참으로 바쁜 사람이다. 술도 빚어야지 강의도 해야지 이곳저곳에서 술 관련 세미나가 열리면 열 일 제쳐 두고 참석한다.

“술 빚는 일이 제일 재미있다”는 오서윤 이사.
오 이사는 술 빚는 일 이외에 전통주 빚기 강의도 한다. 요즘은 ‘집술 빚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천이 고향인 오 이사는 24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교육공학을 전공한 오 이사는 결혼과 출산을 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기업교육 과정설계, 이러닝 수업설계, 대학의 사이버교수학습센터에서 교수설계 등의 일을 15년 정도 했다고 한다. 남편 직장 따라 오산으로 이사 와서 정착한지도 어연 15년.

그러다가 2016년 1월, 인문학 모임을 통해 ‘막걸리 넌 누구냐?(허시명 저)’라는 책을 접하고 막걸리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이 막걸리에 빠져들게 된 동기라고 했다.

오 이사는 본격적으로 술을 배우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자신이 사는 오산에 양조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산에도 양조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됐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들고 오산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지방색을 드러내기 좋은 상품으로 막걸리만 한 게 없다고 시청 담당자를 설득했지만,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김유훈 대표를 소개 받아 만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죽 손발이 잘 맞겠는가. 초기엔 자금이 넉넉지 않아 뜻있는 몇몇으로부터 출자도 받고, 행정자치부 마을기업 육성사업에 공모해 마을기업으로 지정받아 양조장도 지었다.

오 이사는 술 빚는 틈틈이 강의도 한다.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강의는 ‘집술 빚기’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오산사람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세마 쌀로 가정에서 술을 빚어먹었다. 요즘은 아파트촌으로 변해 예전만 못해도 그 때의 추억을 살려 가정에서 빚어 먹을 수 있도록 술빚기 강의를 분기별로 실시한다.

첫 출시 한 ‘요리술 900’이 주부들로부터 인기 끌어

오산양조는 2017년 11월 전통주제조면허(탁주, 약주, 증류주, 기타주류)를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술 빚기에 나섰다.

지난 해 추석에 선 보인 요리술이 인기를 얻었다.
오산양조가 출시하고 있는 전통주들

지난 해 6월 처음으로 출시 한 술이 ‘요리술 900’이었다. 이 술은 고기의 잡내나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데 쓰인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일본 스타일의 맛술에 맞서는 제품인데, 운 좋게도 인기를 얻어 지난 추석에 무척 바빴다고 했다.

“요리술이 롯데백화점 본점과 롯데슈퍼 70여 점포, 농협 하나로 마트에 입점했고 전통주 통신판매 채널인 술팜에 입점하는 등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요리술로 자신감도 갖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종잣 돈을 마련한 뒤, 지난겨울에는 오매백주(12%)와 오산막걸리(6%), 증류주 독산53(53%)까지 만들었다.

현 오산(烏山)의 시조는 까마귀이고, 시화는 매화이다.

 

오산양조의 김 대표와 오 이사는 주명(酒名)을 ‘오매백주’라 지은 것에 대해 ‘오매’는 오산의 시조와 시화를 따서 오산의 지역성을 대표하고, 탁주! 막걸리라는 술이 원재료의 함량이나 제조방법 면에서 전통방식으로 첨가물을 넣지 않은 프리미엄 제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문헌에서 표기한 막걸리의 이름인 ‘백주(白酒)’를 따와 ‘오매백주’라는 알코올 12%의 고급 탁주 브랜드를 완성했다. 모르긴 해도 김 대표의 오산사랑이 잘 배어나온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오산막걸리 역시, 오산의 지역정체성을 잘 반영해 만든 오산 대표 막걸리이다.

오산막걸리와 오매백주 모두 오산 세마 쌀을 원료로 발효시킨 생주다. 전통방식으로 쌀과 물 누룩으로만 제조하며, 일체의 합성첨가물이 없다. 자연 완전발효로 탄산이 없어 속이 더부룩한 시중막걸리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오산막걸리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막걸리다.

오매백주는 오산막걸리와 빚는 방식은 같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가 12%로 묵직한 바디감이특징이다. 예전 집에서 빚어 마시던 탁주의 맛이다.

오 이사가 강의실 에서 술 빚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온더락으로 즐기면 보다 부드러운 목넘김과, 쌀 베이스의 탁주 향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오산에는 독산성 세마대지라는 명승고적이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왜적을 물리쳤던 오산의 독산성세마대에서 이름을 따온 ‘독산53’은 오산 세마 쌀을 원료로 빚은 발효주를 숙성시켜, 상압 증류하여 만든 증류식 쌀 소주다. 증류한 소주 원액을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전통옹기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킨 소주다. 일체의 합성첨가물 없는 알코올 53%의 고도주다. 희석식 소주에서 느낄 수 없는 향이 입안에서 기화하며 퍼지는 맛이 기막히다. 53%의 높은 알코올 도수로 증류주를 출시한 것도 오산에 대한 애향심에 기인한다. 오산! 53!, 비슷한 발음이지 않은가. ‘독산53’을 출시하고 홍보하던 중 오산시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오산을 표현하기 위해 오산에서 가장 많이 다니는 시내버스의 번호도 53번, 서울 강남일대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번호 또한 5300번이라고 한다. 지역사랑의 마음이 같은 맥락으로 통했던 것이다.

전통주는 단순히 쌀과 누룩의 원가로만 계산 할 수 없는 정성이 더해져 일반막걸리와는 가격 면에서 차별화는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오산양조에서는 약주술 ‘율’도 출시 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역시 오산과 관련이 깊은 역사 속 인물, 권율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이다.

오산양조에서 생산되는 모든 주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지역사랑을 기반으로 일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카페처럼 꾸민 양조장, 술익는 냄새가 객을 유혹한다

요즘 요식업의 트렌드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인가. 이런 유행을 따라서 오산양조장은 통유리 벽으로 양조장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 것.

양조장 벽을 통유리로 처리하여 밖에서 양조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술도 음식이라는 생각에서 청결함에 자신이 없다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아이디어다.

술 익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겠지만 술 냄새는 풍겨 나간다. 술 익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길 가던 객을 양조장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한 양조장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발상자체가 재미있다. 술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전하고, 술을 한 잔 시음할 수 있도록 건네면, 손님들이 지갑을 열어 술을 사게 된다.

이웃한 오색시장에서 사온 안주를 펴 놓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 보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주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양조장들은 술을 담그는 탱크가 크다. 그런데 오산양조장은 생각보다 작다. 이는 여성이 혼자서도 힘을 적게 들여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쌀을 씻고 찌는 기능이 포함된 찜통을 쓰고, 온도 조절 감지기가 달린 100ℓ 발효통을 사용해 버튼 하나로 발효를 관리한다. 발효가 끝난 뒤에서는 호스와 펌프를 이용해 술을 옮겨 담아 제품을 완성한다. 100ℓ 발효통 6개와 600ℓ 제성통 1개를 갖춘 지역특산주 면허를 낸 작은 양조장이지만, 일이 많고, 보람도 큰 곳이라고 오 이사는 설명한다.

오산양조장은 작은 규모이지만, 지역 쌀을 쓰고, 감미료를 넣지 않고, 숙성해 맛을 깊게 하면, 대량 생산하는 시판 막걸리에 맞서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술은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오산의 역사가 시민의 생활 속에 스며 그 가치가 일상에서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향기가 그윽한 오산을 만드는 역할에 오산 태생의 술이 선두가 된다면 어떨까? 술을 통해 오산의 역사를 짚어 보고, 그 역사를 현재에 끌어와 시민들과 정감 있고, 의미 있는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또 오산지역에 전통주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재는 작은 규모에서 술을 빚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오산을 대표하는 지역 특산주로 자리매김하겠다”면서 “10~20년 후에는 오산을 대표하는 술이 될 것”이라며 “내가 어렸을 적에 뛰어 놀던 양조장처럼 지금의 어린이들도 우리 양조장과, 양조장 앞 작은 광장에서 즐겁게 놀면서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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