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막걸리 양조장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970년에는 전주의 막걸리 양조장은 전부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의 전주공예품전시관 자리에는 오일주조장, 쌍샘이 있는 향교 길에는 향천주조장 그리고 한옥마을에서 남천 교를 건너면 재래 누룩 공장이 있었다. 특히 한옥마을에서 남천 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천변을 따라 걷다보면 ‘흥시성회’라고 쓰인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허름하지만 과거에 막걸리양조장으로 사용되었고, 비교적 막걸리공장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막걸리양조장이 이처럼 전주도심에 위치한 것은 아마도 물류비용을 줄이고 소비지가 바로 지척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흥시성회의 옛 양조장 건물을 빼고는 전주막걸리의 도심 진출 역사를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도심이 크게 확장되지 않았던 타 도시의 막걸리 양조장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전북 정읍의 정읍탁주, 경북 의성의 의성탁주, 경북 영양의 영양탁주 등은 지금도 도심에 남아 있다.
도심의 양조장들은 과거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40대 이상이면 양조장에 심부름을 갔다가 취해서 막걸리주전자를 달팍 엎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막걸리공장의 술지게미로 주린 배를 달랜 기억도 있을 것이다.
땅값의 상승과 공장의 규모화 등으로 이제 더 이상 전주 도심에서는 막걸리 공장을 볼 수 없다.
◇ 전주막걸리 집
1970년대 막걸리는 출고 액이나 출고량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술이었다. 80년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통키타와 맥주가 등장하며 막걸리의 아성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에 출고량이 역전되었으며 지금은 전체 주류시장에서 한자리수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어김없이 막걸리는 주류문화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1997년 IMF는 막걸리바람을 몰고 왔다.
특히 전주는 IMF 이후 삼천동에 지금과 같이 잘 갖추어진 안주를 무기로 하는 막걸리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로 삼천동을 넘어서 평화동과 서신동으로 이러한 막걸리집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막걸리 값만 계산하면 충분한 안주를 주는 곳이 많았지만 현재와 같은 막걸리 집은 당시의 경제위기 속에서 나온 문화이지 않을까 한다.
1980년대 막걸리의 몰락 이후 두 번째로 막걸리가 주류산업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이후이다. 일본에서 국내로 불기 시작한 이 막걸리바람은 수출로 이어지기도 해서, 막걸리가 생겨난 이후 가장 많은 양이 해외로 나가기도 했다. 또한 프리미엄급 막걸리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도권의 참살이 탁주, 전남의 자희자향, 전북의 송명섭 막걸리, 울산의 복순도가 손 막걸리, 강원도의 만강의 비친달 등의 프리미엄 막걸리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프리미엄 막걸리를 파는 주점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월향, 세발자전거, 물뛴다, 셰막 등이 세련된 디자인과 젊은 감각으로 막걸리를 창조적으로 해석해내며 새로운 주점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의 막걸리바람은 전주의 막걸리가 전국화 혹은 세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주막걸리집은 한옥마을 관광과 함께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전주에 오면 꼭 막걸리 집들을 찾게 되었으며,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전주에 오는 관광객들도 생기게 되었을 정도다. 또한 CJ 등의 대기업이 전주막걸리를 전국에 유통시키고 수출까지 하게 되면서 더욱 전주막걸리의 명성이 커지게 되었다.
전주관광의 필수코스가 된 막걸리 집과 막걸리는 그래서 전주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할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 전주막걸리를 위하여
그동안 전주시에서는 막프로젝트라는 전주막걸리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에 따라 관광객들을 위한 막걸리지도가 제작되었으며, 막걸리스토리텔링이 시행되었다. 또한 동문거리에는 전통술교육관과 양조장이 건립되었다.
2013년 가을부터는 막걸리 집들의 시설개선에도 예산을 책정하여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주막걸리집을 다녀간 타지의 지인들은 전주막걸리집들을 극찬한다. 하지만 꼭 극찬뿐이랴. 가령 안주는 상다리가 휘어지는데 막걸리가 너무 단조롭다는 이야기를 한다. 돌아보면 한 두회사의 막걸리가 막걸리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조방식도 한 가지 누룩만을 쓰고 있으며, 맛도 구연산과 아스파탐을 넣어서 감미한 것이다. 막걸리 집과 안주는 다양하지만 정작 술에는 전혀 다양성이 없다.
그러나 최근 동문거리에 한옥마을 양조장이 생기고, 효자동에도 전주가양주라는 양조장이 생겼다. 이곳에서는 전통의 누룩으로 프리미엄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특히 한옥마을 양조장은 관광자원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도심에서 떠난 막걸리가 다시 도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러한 도심양조장은 추억을 되살리고 문화관광컨텐츠로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하기 때문에 6차 산업의 모범적인 모델이다.
이러한 프리미엄막걸리는 전주막걸리의 지평을 확대시켰으며, 장기적으로는 막걸리바 등의 생성에 밑바탕이 될 것이다. 이미 중앙동 웨딩거리에는 진주도가라고 하는 전통주칵테일바가 생겨서 막걸리칵테일 등을 판매하고 있다.
농업과 막걸리산업과의 연계 그리고 다양한 막걸리의 생성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제 이러한 막걸리의 문화콘텐츠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막걸리지도와 막걸리앱의 성과를 계승하고 더욱 막걸리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막걸리관광을 활성화를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한옥마을은 외국인도 많이 찾고 있기 때문에 일어, 영어, 중국어로 전주의 막걸리를 해설할 수 있는 막걸리문화해설사 제도 등의 도입을 통해 막걸리 관련 문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전주가양주와 막걸리의 콘텐츠에 대해 더욱 심화된 연구 작업을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를 구축해야 하며, 기존의 막걸리지도 등의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2013년을 끝으로 전주시의 막프로젝트가 막을 내리며, 그에 따라 막걸리 집들의 업데이트 등을 할 수 있는 예산이 없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된다.
막걸리 집에 더해 쌍벽을 이루는 전주가맥도 조명을 받아야한다. 막걸리에 비해 냉대를 받은 가맥집에 대한 문화지도를 그리고 앱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막걸리해설사들이 전주가맥에 대해서도 해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시행정 같지만 1년에 하루는 막걸리의 날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날만은 막걸리 관련 연극을 보고, 서점에서 막걸리관련 만화책을 사고, 한복을 입고 막걸리를 마시는 거다.
이미 젊은 층을 중심으로 9월 말일이 한복데이로 정해졌으니 그와의 연계도 시도할 만하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를 보기 위해서는 여름부터 뮌헨에 방을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축제를 참가하고 그 도시는 온통 맥주 하나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어디를 둘러봐도 전주처럼 막걸리가 활성화된 곳은 없다. 단 하나의 주제인 술로 여행을 올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가 전주 이외에 어디에 있는가?
주말이면 삼천동 어느 막걸리 집에서 혹은 휴일 저녁 경원동의 어느 가맥집에서 게릴라콘서트가 열리는 상상. 또는 가을이면 막걸리 축제가 열려서 온 도시가 막걸리로 하나 되는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술은 예술 혹은 물과 같아서 자기를 알아주거나 혹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막걸리가 흐를 수 있는 감성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모색하며 시도해야 할 것이다.
사진 : 전주 서학동에 남아 있는 옛 양조장 건물
◈ 글쓴이 유상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주(酒)당의 도당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고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