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도가’의 막걸리가 건배주가 되는 그날을 꿈꾼다

배혜정 도가에서 생산되고 각종 전통주
‘배혜정 도가’의 裵惠正의 끝없는 도전

 

세계정상들의 만찬장에서

‘배혜정 도가’의 막걸리가 건배주가 되는 그날을 꿈꾼다

 

 

배혜정 대표-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중국의 문학자이자사상가였던 루쉰(魯迅)이 한 말이다.

‘배혜정 도가’의 裵惠正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끝없는 도전을 펼치고 있는 꿈 많은 소녀 같기도 하고 전통주 개발이라면 무모하리만큼 덤벼드는 불나방 같다는 생각을 떠 올리게 해서 루쉰이 한 말을 생각나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전통주업계에 이런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 존재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행복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는 오롯이 배 대표의 부친 우곡(又麯) 배상면(裵商冕)의 도전정신이 어렸을 적부터 깃들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아버지 권유로 시작한 끝없는 막걸리 개발

차두리가 그의 부친 차범근을 뛰어넘지 못하고 대표 선수의 옷을 벗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최고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했듯이 배혜정 대표 역시 배상면의 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그의 오빠 배중호(국순당 대표), 동생 배영호(배상면 주가)보다 좋은 술을 빚으려는 경쟁심리가 은연중에 작동해서 끝없이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데 심혈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포동에 위치한 배혜정 도가를 찾은 날은 벚꽃이 화사 하게 만개 한 봄날이었다.

‘배혜정 도가’는 개포동 구룡사 입구에서 측근 거리에 위치에 있었다. 배혜정 도가의 사옥인 혜정빌딩 1층은 배 대표가 심혈을 쏟아 부어 개발한 ‘富者’를 비롯해서 우곡 등 술병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여기서 배 대표와 저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기자가 제일 궁금했던 대목부터 물었다. 아버지 배상면 씨가 직접 운영 해온 국순당도 있고(지금은 큰 오빠인 배중호 씨가 대표), 배상면주가도 있는데 구태여 딸까지 나서서 술공장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배혜정 대표는 “선친께서는 늘 우리 술의 기본은 막걸리인데 아들들한테 막걸리를 빚으라고 해도 관심이 없으니 ‘너라도 막걸리를 빚으면 어떠냐? 고 하시는 바람에 술공장을 하게 된 것”이라면서 “처음엔 얼떨결에 시작을 했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후회가 막급 한 때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배혜정 대표의 부친이자 스승이었던 배상면 회장(왼쪽 사진)◇ 집안 모두가 뛰어난 후각 발달로 천부적 술 명인 자질

그러나 배 대표는 “그동안 피말리는 고생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집어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은데 요즘 아들(김백규, 35세)이 내 뒤를 잇겠다고 술을 배우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로부터 이어오는 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버지, 오빠, 동생은 물론 나까지 다른 사람들이 맡지 못하는 미세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술 개발에서 후각이나 미각이 발달 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천생이 술 만들라고 태어난 것 같다”고 했다.

배혜정 대표는 대구 동촌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양조장을 하고 있었는데 증류식으로 기린소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포항으로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 3학년까지 포항서 자랐다. 여기서도 아버지가 대송양조장을 운영하는 바람에 술공장은 배혜정의 놀이터였다는 것. 술독들이 들어찬 어두컴컴한 공장은 어린이들이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하기엔 최적의 장소여서 친구들한테 한껏 자랑도 하고 불러들여 함께 놀다가 어른들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다.

이 때 맡았던 향긋한 술 냄새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그리울 때가 많다고 배 대표는 술회한다. 어느 땐가는 술 냄새가 하도 좋아서 술독을 열고 친구들이랑 술을 퍼 마셨는데 나중에 아버지한테 발각되어 혼 줄이 나기도 했었다고 했다.

 

◇ 백세주로 일대 전기 맞은 국순당

배상면 씨는 양조장을 운영하는 한편 누룩 개발에도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러다가 포항서 서울로 이사 와서 한 때는 범식품이란 회사의 연구원 생활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룩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순천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효소사업을 시작했다. 누룩하면 배상면을 떠올릴 만큼 국내주류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상면 사장은 수원으로 올라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0년 4월1일 국순당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국순당은 1992년 백세주를 내놓으면서 일대 전기를 맞게 되는데 맥주와 소주로 양분된 주류시장에서 전통주 열풍을 일으켰던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특히 2002년 몸에 좋은 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연령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끌었던 전통주다.

배상면 회장은 2013년 6월 세상을 뜨기 전까지도 연구에 몰두했으며 모둔 것이 완벽해야 하는 ‘완전’주의 였다고 배 대표는 회고 했다.

이런 연구정신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배 대표도 밤새는 줄도 모르고 술 연구에 매진해 왔다. 아버지로부터 막걸리를 만들어 보라는 말 한마디에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열연 사업가로 변신을 꽤했지만 술 시장이 그렇게 녹녹치만은 않았다.

 

◇ 술은 마시는 사람을 생각하는 예술이다

배혜정 대표가 주류업계에 투신 후 온갖 고생과 연구개발과정을 엮어 놓은 ‘막걸리 CEO 배혜정’“좋은 술만 만들어 내면 되는 줄 알았지 판매가 이렇게 어려운 줄 누구 알았겠어요, 생막걸리라는 것이 살아 있는 생물이니까 일정 기간 내에 팔지 못하면 폐기처분 해야죠, 남들처럼 수입쌀로 술 빚으면 될 텐데 고집부리고 국산쌀 그것도 최고급 쌀만 고집하다보니 남들보다 몇 배 고생만 하게 되더라고요” 배 대표의 푸념은 괜한 말이 아니다.

배혜정 대표가 지난 2011년에 펴낸 <막걸리 CEO 배혜정>에는 배혜정 대표가 술도가를 하면서 겪었던 온갖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머리에 “술을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술은 음식문화의 한 축이자 최고봉이다. 그래서 술은 마시는 사람을 생각하는 예술이다.”라고 적고 있다. 배 대표는 그 당시 하찮게 여겼던 막걸리를 고급화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술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값싼 쌀을 쓰지 못하고 경기미 가운데서도 최고급 쌀인 추청(秋晴, 아키바레)만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 대표는 “술연구의 대를 잇게 된 것을 숙명, 술을 천직으로 여기게 된 것을 천명”이라고 항상 말씀하신 부친을 자주 떠올린다고 말한다.

배 대표는 술과는 거리가 한참 먼 성심여대에서 사회사업과를 전공했다. 남편이 현대건설을 다녔다. 남편이 일본지사로 발령이 나서 일본서 5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디자인을 공부 한 것이 지금 배혜정도가가 출하하는 19개나 되는 술병부터 라벨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일본에 머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붕어빵 같은 것도 몇 대를 이어오면서 가업으로 이어오는데 감명을 받았죠. 이런 문화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만 어려우면 사업을 집어치우고 다른 사업으로 갈아타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백년기업이 아직 적은 거죠. 그래서 나도 아버지처럼 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지요.” 때문에 아버지가 막걸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실 때 머뭇거림 없이 “해보겠다” 고 했단다.

 

◇ 국내 최초로 시도된 유리병 막걸리 富者

처음에는 한국효소 한 귀퉁이에서 직원 1명을 데리고 효소에 대한 연구부터 하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효소에 눈을 뜨고 나서 술을 빚기 시작했다.

배 대표는 흔한 페트병 대신 유리병에 넣어야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여기고 비싼 돈을 들여가며 유리병에 막걸리를 넣어서 출하를 했지만 경험부족으로 여러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반품 받는 것이 팔리는 것보다 많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유리병 막걸리는 막걸리의 고급화에 한 걸음 다가서는 효과를 거두었고, 막걸리 선물세트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또 막걸리는 6-7도란 통념을 깨고 10도 13도 16도로 다양성을 꽤하는 한편 자색 고구마 등으로도 막걸리를 개발하여 고구마 재배 농민들의 판로도 도와주는 역할도 해냈다.

1979년 배혜정 대표의 결혼식 때 만찬주로 나온 술이 백세주로 발전하여 공전의 히트상품이 된 것처럼 배 대표는 ‘배혜정 막걸리’가 세계 정상들의 만찬장에서 건배주가 되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지금 배혜정 도가에는 타 양조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합주(合酒)인 우곡을 생산한다.

합주는 막걸리 계열에 속하면서도 탁주와 만드는 방법이 약간 다른 고급술이다. 약주와 탁주의 중간에 위치하는 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화주, 사설주, 혼돈주 등 같은 술이다.

배 대표는 이 합주에 아버지 호인 우곡(又麯)이란 상표를 붙였다.

처음 이 술을 먹어본 사람들은 “거 참 이상하기도 하여라. 요구르트 같기도 한데 맛은 참으로 좋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배 대표가 이처럼 고급 막걸리 개발과 생산에 정열을 쏟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부잣집 잔칫상에 오를 법한 갖가지 반찬들, 기름기 있는 음식들과 어우러지는 술을 개발하는 것이 술 개발의 모티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노력은 헛됨이 없다. 부자 16도가 2002년 발명의 날 특허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고, 2009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09 최고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배혜정 대표의 피나는 노력으로 사업의 첫 출시제품은 추청으로 만든 300미리 유리병의 부자 16도였다. 그 술의 배경은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마시던 합주로 청주의 맑은 부분과 밑에 가라앉은 고형분까지 전체를 사용하여 거른 술인 것이었다. 청주부분보다 좋은 쌀로 빚은 고형분의 식이섬유에 대한 효용성을 더욱 강조한 술이었으나 일반적인 막걸리와는 너무나 다른 제품이어서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은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속 배 대표는 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도 회사규모에 비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그건 어쩌면 우리아버지 배상면 회장께서 전해주신 핵심 가업정신이기도합니다.

끝없는 배혜정 대표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