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 박사의 기획특집 한국의 음주문화(4)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생각 바꿔야 한다
“술이 없이 살 수 있다(6.8%)거나 술이
백해무익한 물질(6.7%)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술과 음주에 대한 태도, 행동 및 가치관:허용과 흐트러짐 속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무엇일까?
음주행태의 배경에는 한국인들의 음주에 대한 인식, 태도, 가치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필수적’(71.8%)이라고 생각한다. 술의 긍정적 효용성을 가진다. ‘술을 많이 마셔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에 59.9%가 동의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수다. ‘남성은 술을 마실 줄 알아야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65.8%가 동의한다.
보건당국이 술의 위험에 대해 강조를 한다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홍보역량이 낙후되거나 이미 가치관 자체가 다르게 형성되어 있어 정부가 하는 홍보나 교육정도로는 변화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술? 마셔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마시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의 55.4%가 술을 위험물질로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상당수는 술을 기호품이거나 음식과 같은 반열에 놓고 있다(53.2%). 술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생각하거나 피로, 갈증,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술이 없이 살 수 있다(6.8%)거나 술이 백해무익한 물질(6.7%)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왜 이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위험은 하지만 도움이 된다. 술에 대해 긍정적이고, 술문제에 대해 허용적인 태도는 술이 근본적으로 가진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있지만 문제가 즉각적이거나 내 문제가 아닌 경험에서 문제음주행태가 만연되는 것이 아닌가. 음주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그 대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정부는 그저 효과가 적은 교육과 홍보를 하고, 술을 통제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것만으로 문제해결이 잘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소득이 늘고 이에 따라 건강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술 자체 보다는 건강에 대한 교육과 홍보의 확대로 음주문제에 대한 인식이 더불어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술문제 예방은 단순히 술문제 만을 건드려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알코올의존증이 도덕적 문제가 아니고 질병이라는 생각에 일반적으로 동의(96.7%)하고 있어 인식상 개선점이 보인다. 종래에는 술문제는 술의 속성 자체가 낳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술을 점차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독감이나 전염성 질환처럼 슬며시 다가오는 질병이 알코올문제, 의존증이라는 성찰이다.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졸지에 나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경험이 될 때 사람들은 변하게 되지 않을까.
청소년 음주에 대한 위험인식도 증가하고 있다(77.7%).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는 일도 단순히 정보를 알리거나 학교나 지역사회 규칙을 빡빡하게 가져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지역의 규제강화가 효과적일까? 이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아직 우리사회에 맞는 정답을 정부도 지역유지들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소에 술문제의 위험이 아직도 주요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이 맞는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제도화하고 함께 나서려면 갈 길이 멀다.
조사해 보면 여성음주(40.7%)와 음주음전(95.2%)에 대한 문제의식도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인식이 절주행위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성찰, 토론, 대책을 위한 노력이 요망된다.
부모, 교사, 직장상사들의 음주규범 역시 음주문제 예방과 문제대책 마련에 유용하지 못한 수준이다. 과거에 음주문제 예방교육이 거의 없었고, 기성세대 또한 음주에 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소득이 3만 불에 육박하는 작금에도 음주와 음주문제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 학계나 다른 나라에서 입증된 지역사회 모델 등 실천적 활동이 현실에서 보이기는 아직 요원하다고 본다. 이제 깨어나고 있는 정도다. 정보도 방법도 보급되기 시작하고 나누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보면 맞다.
학교교사들의 상당수가 청소년기의 학생들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62.3%), ‘학생들의 소량의 음주가 괜찮다’(32.5%)고 생각하는 것도 현실이다. 선생님들도 배운 적이 없고, 선생님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세태도 문제다. 학생들의 생활태도를 선생님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와중에 심지어 학생들과 음주를 경험한 교사들마저 있다. 예로부터 ‘술은 어른과 함께 배워야한다’는 믿음에서 차라리 술자리에서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좀 잘못된 의욕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도가 변하고 가치관을 바꾸려면 이제 준비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실천단계로 나아갈 성찰이 급히 요구되고 있다. 위험학교에 대한 선생님들의 성찰 말이다.
직장상사들 중 하급직원들과의 정기적인 음주가 관계개선을 통해 생산성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음주가 생산성하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와 다른 상황이다. 일부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고들 하지만 현장의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술을 마실 권리가 있다’는 데에 86.8%(2005)가 동의하는 한편 ‘술이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질문에는 24.6% 만이 동의하고 있다. 계속 관찰해 볼 때 술 마실 권리에 대한 동의가 줄고 있지만, ‘술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한다’는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17.7%에서 10.7%로 줄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없애자고 해서 없어질 술도 아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인들의 대다수가 술에 대해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 비중이 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75.4%가 ‘술이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조사된다. 성별로는 남성의 79.8%, 여성의 72.7%가 ‘누구나 자유롭게 술을 마실 권리가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술이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한다’에 동의하는 경우는 남성이 17.7%, 여성이 26.2%다.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음주문제인식에는 성차이가 있다.
술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변화하려면 술위험에 대한 문제인식으로부터 술에 대한 태도를 합리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성찰과 실천해 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술을 없애는 일이 상책이 아닌 현실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정책과 자녀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합의해야 할 때다.
과폭음의 귀결:음주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신과 소통하는 제례, 유교 방식의 의례, 일, 여가 속에서 음주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신과 사람들 간의 소통과정에 술과 음식이 개입된다. 그 가운데 음주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발생한다. 술은 이 만남의 자리에서 흥을 돋아 정신적으로 황홀경에 빠진다. 생의학적으로도 입증된 바다. 조상과 만나는 자리에도 술이 있다. 일의 피로 속에 역시 농주가 있고, 쉴 때도 마찬가지다.
고대국가 형성이후 술을 마시면서 신과 조상을 숭배하고 소통했다. 선비는 시를 쓰는 과정에 음주로부터 창조성을 높이는 도움을 받았다. 농부는 휴식 중 막걸리를 마셔 피로를 풀었다. 선비도 농부도 술과 함께 일했다. 수천 년 동안 거듭된 일이다. 전통소주와 약주는 상대적으로 고급술이었다. 고급술들은 관혼상제의 주요자리에서 사용되었다. 접대문화가 오랜 악습이었던지 향음주례에 2차를 막고 있다.
근세에 까지 한국의 주요산업은 농업이었다. 농사일 중 주로 마시던 술은 막거른 저도주, 막걸리였다. 한국에서 술은 에탄올이 가진 약리적 특성을 즐기기보다 각종 소통수단, 창조와 생산성의 제고수단, 갈증의 해소수단 등으로서 기능하는 주요 음료였다고 보는 게 맞다.
직장인들의 음주가 생산성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전혀 타당성이 없을까? 한국인들의 의견에 서구인들은 웃을 뿐이다. 그들은 주로 알코올의 작용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친 농업현장에서는 노동력이 중요했다. 그래서 농주는 아마 필수적인 기력향상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계가 도입된 산업현장에서도 노동투입이 주된 생산요소였던 성장단계에서 직장인들의 집단음주가 소속감과 단결력의 향상에 기여했다. 그 또한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1960년대 – 1980년대에 이르는 성장과정에서 술의 긍정적 기여도를 간과할 수 없다. 전시처럼 한 방향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시대의 일이다. 이 같은 군음의 역사는 고대사이래의 문헌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한국의 접대문화는 그 폐해로 유명하다. 하지만 사회관계의 형성이나 상거래시 접대문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긍정적인 측면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서비스화 되어 가면서 서비스노동이 늘었다. 그런데 서비스 노동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저임노동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특별히 단결을 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 단순노동이 로봇에 대체되면 더욱 더 관리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때는 술로 노동생산성을 높인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한국인의 신체적 정신적 음주건강상태는 지속 악화되고 있다. 2000년과 2006년의 알코올사용장애(AUDIT) 측정결과를 보면, 알코올 위험사용자가 20.3%에서 24.5%로 가장 많이 늘었다. 유해사용자와 알코올의존자도 또한 증가하였다. 2006년 기준 알코올 의존 자는 8.3%이다. 반면에 금주 자와 저위험자는 68.9%에서 59.6%로 줄었다. 술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하지만 도구를 가지고 측정한 결과는 한국인들의 음주가 부정적인 위험이 더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술의 경제적 비용을 측정한 결과는 2004년 기준 14조 9,352억 원이다. 많다. 담배나 도박의 위험보다 큰 숫자다. 이는 GDP기준으로 2.86% 수준이다. 질병비용접근법(Cost of illness approach)으로는 술 매출액도 사회적 비용으로 포함시킨다. 질병을 낳는 술자체가 사회비용이라는 논리다. 그렇게 매출도 포함하면 손실액은 약 20조원으로 증가한다. 엄청난 규모다.
1995년 기준 조사는 술 소비액을 제외한 경제적 피해액이 9조 5670억 원이므로 지난 10년간 술로 인한 비용은 1.5배 정도 증가하였다. 순알코올소비량이 늘지 않았는데도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피해의 질적 강도가 커지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 술피해가 실질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의 사망원인별 기여도 연구에서 음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05년 기준 3만 1,31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12.8%이다. 또한 odds ratio분석결과 음주자는 비음주자에 비해 지방간 6배, 간경화 5배, 위궤양 2.6배, 췌장염 3배, 간암 1.5배, 위암 1.6배, 장암 2배, 기타 암 2.5배로 추계되었다. 또한 모든 사고의 15%, 교통사고의 16%, 폭행, 독극물, 화재, 자해 등의 사고에는 83%가 알코올의 기여 분이었다. 2012년 자료에서도 10만 명당 간질환사망이 20.6명, 교통사고사망도 22.1명이었다. 남성 통계지만 적지 않은 수다.
술의 경제적 편익을 소비자잉여(consmer surplus)의 개념을 활용하여 지불의사접근법(willingness to pay approach)로 추계한 결과 심리적 신체적 혜택이 4조 2,274억 원이었다. 주세수입, 부가가치 생산효과, 고용효과, 산업파급효과 등의 주류의 경제적 편익은 16조 8,249억 원이었다. 주류생산금지가 어려운 현실여건을 감안한다면 비용과 편익을 동시에 관찰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정부당국은 통상 비용측면만 본다. 보건학계도 마찬가지다. 편익도 지속추계하면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자료를 보면 주세보다 피해액이 크니까 술이 없어져야 한다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일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논리적인 주장은 아니다. 특히 세금은 일반회계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술문제를 줄이는데 직접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의 음주 자들이 적정음주량 이상 과폭음이 심하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외국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언론에 가끔 보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술이 오랜 역사를 가진, 법적으로 생산이 인정된 생산제품인 만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비용을 줄일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 측면의 편익을 늘리려는 노력은 산업당국과 주류업계의 역할일 것이다.
일반음주자들은 적당한 음주를 통해 건강과 관계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편익을 높이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술자리를 적정량에서 끝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폭음은 모든 위험을 예고한다. 과폭음 최고의 한국은 위험도 아주 높은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편익이 있는 수준에서 술자리를 파할 수 있는 묘법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당국의 교육홍보도 필수적이지만 사실 개인의 몫이 된다. 끝없는 성찰이 필요한 일이다. 정신, 몸, 사회, 영적 건강을 유지하도록 술 위험을 줄이는데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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