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Symposium)

김준철의 와인교실(40)

 

심포지엄(Symposium)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흔히 ‘향연’이라고 번역되는 ‘심포지엄(Symposium)’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함께 마시다(Sympínein)’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원전 9세기부터 중요한 사회적 제도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 모임은 단순히 사색과 철학을 위한 자리일 뿐만 아니라, 덕망 있는 가문의 사람들을 위한 포럼으로 토론하고 회의하고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주연을 베푸는 자리였다.

이 관습은 그리스에서 로마와 이탈리아로 퍼져나갔고,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 고대 말기까지 널리 행해졌다.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식사 후 즐거움을 위한 음주와 대화, 음악, 춤 등이 동반되는 연회를 의미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회의나 학술대회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공동체적 음주

 

그리스어 용어로는 ‘공동체적 음주’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흥청망청 마시고 먹는 향락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초점은 참석하는 사람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신성한 자세로 규칙을 지키고, 교양과 세련된 문화적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비스듬히 소파에 누어서 문에서 떨어져 삼면의 벽(장식으로 꾸며진)을 바라보는 자세였다. 바닥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런 자세로 밤새도록 토론을 즐겼다. 자리 때문에 토론 참석자는 7-9명 정도로 제한했으며, 전체 인원은 14-27명이 되었다. 참석자는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단장했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유명한 사람들은 심포지엄에 자주 초대가 되었다. 소박한 옷차림과 맨발로 다니는 것을 즐기던 것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조차도 이러한 자리에는 몸을 단정히 하고 참석했으며, 연회에 나갈 때는 샌들을 신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젊은이를 귀족사회에 소개하는 자리도 되었고, 육상대회의 우승자, 성공적인 연극 개막 등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 가족의 축하행사 송별회 등의 행사도 이루어졌다. 젊은이는 기대어 있지 못하고 똑바로 앉아야 했다. 참가자들은 디오니소스의 시종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꽃, 담쟁이덩굴, 월계수, 그리고 흰색과 붉은색 양모 띠로 자신을 장식하였다.

이후 심포지엄은 손을 씻고 향기로운 정수를 뿌리는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심포지엄의 좌장(Simposiarca)으로 선출되는데, 그는 프로그램과 주요 주제를 책임졌으며, 또한 와인과 물의 혼합 비율을 결정했다.

 

와인과 물의 혼합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습관적으로 와인에 물을 섞어서 마셨다. 와인을 그대로 마시면 야만인의 습관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와인은 가죽 주머니나 항아리에서 숙성되어 산도가 높았을 것이고(문헌에 따라서 와인의 알코올농도가 16%로 높았다고 하지만 신빙성이 약함.), 여기에 물을 섞으면 신맛과 쓴맛이 감소되어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지니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와인은 두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큰 항아리인 크라테르(Crater)에서 꺼냈으며 주전자로 제공되었다. 좌장은 와인을 희석시킬 비율을 정하고, 노예 소년은 이를 희석한 다음에 주전자에 넣고 참석자들의 잔을 채웠다. 일반적으로 와인과 물의 비율은 와인 2에 물 5, 또는 와인 1에 물 3 정도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심포지엄에 다른 것이 있는데, 그리스 심포지엄은 식사 후에 와인이 나왔으며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었지만, 로마 심포지엄은 와인이 먼저 나왔고, 음식이 나온 후 여자들이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인행사로 헌주가 있었는데, 소량의 와인을 여러 신들을 위해서 붓거나 죽음을 애도하는 데 뿌리기도 했다.

 

절제가 미덕

 

그리스에서는 절제가 덕이었다. 좌장은 술에 취하여 다룰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와인과 물의 혼합 비율 및 잔의 개수는 취기의 정도를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이를 통해 가능한 한 느리고 지속적으로 바람직한 즐거운 취기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상적인 목표는 각 참가자가 대체로 같은 수준의 취기에 도달하는 것이었으나, 이는 쉽지 않았다. 품격 있는 사람이라면 술을 마신 뒤에도 덕성을 기억하고, 동행 없이 스스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즉흥시를 짓고 이를 노래로 불렀다. 한 가지 원칙은 술기운 속에서 나온 말은 맑은 정신일 때 손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포지엄 좌장의 임무 중 하나는 제3자를 모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발언’과 ‘즉흥적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흥에 겨워 술에 취한 이들의 풀린 혀는 오늘날 기업에서 실천되는 ‘브레인스토밍’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와인과 여자와 노래

 

음식은 치즈, 양파, 올리브, 무화과, 마늘 등은 필수적이었고, 완두 등도 나왔으며, 한입 정도의 고기도 서비스되었다. 후식으로 포도, 무화과를 꿀로 절인 단 음식도 나왔다. 이 모든 음식은 물과 혼합한 와인으로 마무리했다. 음식과 와인이 나오고, 게임, 노래, 플루트 부는 소녀나 소년, 연극하는 노예 등 유흥도 준비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사랑이나 성의 차이 등과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놓고 토론하였지만, 주최자가 와인을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심도 있는 토론이 되기도 하고 단순한 관능적인 유희의 자리가 되기도 했다.

 

시와 음악은 심포지엄 즐거움의 중심이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참석은 금지되었으나 미모와 지성을 갖추고 손님과 대화가 가능한 고급 매춘부나 행사에 고용되어 흥을 돋우는 여자, 배우자는 허용되었고, 손님과 대화가 가능해야 했다. 여자들이 연주가 가능한 악기는 오보에 비슷한 아울로스(Aulos)와 현악기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도자기나 꽃병에 묘사되어 있듯이 심포지엄은 토론의 장소만이 아니었다. 벌거벗은 여성이 아울로스를 연주하거나 남성과 춤을 추는 그림이 도자기에 많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과음으로 인해 선을 넘었고 참여한 많은 남성이 성행위에 참여했음을 의미한다.

 

손님들은 경쟁적인 게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코타보스(Kottabos)’라는 게임은 가지 달린 얕은 잔에 있는 와인 찌꺼기를 흔들어서 목표물(주로 다른 잔)에 맞히는 게임이었다. ‘스콜리아(Skolia, 즉흥시)’라는 애국적인 축배의 노래나 음담 섞인 축배의 노래로 한 사람이 앞부분을 노래하면 다른 사람이 뒤 소절을 추정하여 부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사학적인 대회에서 경쟁도 하여, 이 때문에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여러 연설이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지칭하게 되었다.

결론

 

많은 역사가와 전문가들이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에 관한 문헌을 연구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심포지엄을 우아하고 지적인 모임으로 묘사하고, 다른 일부는 술 취함으로 인한 관능적인 면을 묘사하지만, 일반적으로 심포지엄은 고대 그리스의 귀족의 품위에 걸맞는 대화 및 예술의 원칙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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