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커피

김준철의 와인교실(43)

 

와인과 커피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와인과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음료는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은 알코올이 있어서 지성보다는 감성을 부추기지만, 커피의 카페인은 알코올과 달리 지능을 고무시키고, 강심작용을 한다. 즉 커피는 권태와 졸음을 쫓아 활기를 소생시켜주는 ‘지성의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의 알코올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지만, 커피의 카페인은 판단력을 뚜렷하게 만든다. 고로 연애할 때는 와인, 공부할 때는 커피를 마셔야지 바꾸면 곤란하다. 남녀관계는 지성보다는 감성으로 판단력이 부족할 때 연결된다. 반대로 공부할 때 와인을 마시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슬람의 와인, 커피

 

전통적으로 와인은 기독교, 커피는 이슬람교의 음료로 공인되어, 일찍이 커피를 마신 지성의 이슬람권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 와인과 맥주만 마시는 유럽 남부를 거의 차지했으며, 연금술로 화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아라비아 숫자를 만들어 자연과학을 발달시켰다. 커피는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알코올 대신에 마실 수 있는 대체 음료가 되면서 학문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

서유럽에 상륙한 커피는 기독교인들이 처음에는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교도들이 마시는 음료라서 ‘악마의 음료’라고 부르면서 공식적으로 음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 1592-1605)는 커피의 맛에 반하여 “이 악마의 음료는 아주 훌륭하므로 악마에게만 독점시키기는 너무 아깝다. 세례를 주어 악마를 조롱하도록 하라.”라고 명하여, 기독교도의 음료로서 공인된다. 이때부터 유럽은 와인과 커피를 마심으로써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활동을 통하여 세계 최고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커피하우스는 소통의 장소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청교도혁명(1640-1660)이 일어나고 크롬웰이 통치하던 기간인 1650년, 대학도시인 옥스퍼드에서 탄생하였고, 2년 후에는 런던에도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신사들의 클럽(Gentlemen’s club)’으로 엘리트들이 모여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즐기면서 자신들의 엘리트의식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커피하우스에서 생긴 조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하여 근대과학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또 주식, 경매, 보험 등에 대한 정보도 커피하우스로 흘러 들어와 증권회사나 은행, 보험회사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한 것이 많다.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로이즈(Lloyd’s)’는 런던 타워 가에 있는 유명한 커피하우스 상호에서 유래된 것이다. 17세기 중반, 런던의 E. 로이드가 경영하는 커피하우스에 해운업자와 해상보험인수업자들이 자주 모여들었는데, 주인 로이드가 여러 가지 해운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거래를 주선한 것이 발단되었다.

 

그 밖에도 커피하우스는 문학, 연극, 음악 등 예술의 발생지 역할과 정당의 출현 등 정치적인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당시 커피하우스에서는 커피뿐 아니라 홍차, 초콜릿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고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커피하우스는 신분이나 경제력의 차별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자유스러운 공간이 된 것이다.

카페는 혁명의 씨앗

 

프랑스에서는 1600년대 중반부터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여 1720년 파리에 문을 연 카페는 380여 개가 되었으며,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마찬가지로 파리의 카페도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출발하였지만, 시인, 철학자, 과학자, 정치가 등 엘리트는 물론, 배우, 군인, 요염한 여자, 도박꾼, 식객 등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상류층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만의 공간인 살롱에 모였지만, 부르주아와 민중들이 모이는 카페는 사교장이 되고, 정보교환, 문학 활동, 정치비판, 등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혁명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커피는 몽테스키외, 볼테르, 디드로, 루소와 같은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게 각성의 음료였고, 토론의 윤활유였다. 이렇게 파리의 카페는 계몽주의 사상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실질적인 프랑스대혁명(1789년 7월 14일)은 이틀 전인 7월 12일 ‘카페 뒤 푸아(Cafe du Foy)’에서 젊은 법률가 ‘카미유 드물랭(Camille Desmoulins)’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 계획을 수립하고, 무장하자는 외침으로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시대의 카페는 혁명파, 반혁명파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치 세력에 속하는 사람들이 각각 집회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정당을 낳은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랑스의 카페는 계속 존속하여 19세기 이후 파리에서는 수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모이는 ‘문화센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군인의 음료

 

1800년대부터 산업사회가 되면서 이제까지 시간개념 없이 농사나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들을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맞춰 일을 시켜야 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커피였다.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졸음을 물리치는 데는 커피 이상의 것이 없었다. 아침 일찍 단잠을 물리치고 일어나서 마시는 커피는 자명종 역할을 했고, 밤늦게까지 일할 때는 각성제 역할을 하는 커피는 노동자의 육체를 근대적인 산업체계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커피는 또 졸음과 피로를 없애주는 작용으로 전쟁터에서도 효과적이었다. 나폴레옹은 커피가 군인들의 사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았고, 식량이 부족할 때 기아의 고통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웨덴 구스타프 3세나 히틀러도 인체 실험을 한 결과, 커피를 마신 그룹의 체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커피를 군인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1938년 네슬레(Nestle)에서 나온 인스턴트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게 지급되어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진공건조방법으로 향미의 손실을 줄인 인스턴트커피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했다.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와인

 

현대인에게 와인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커피의 카페인은 판단력을 뚜렷하게 만드니까 겉보기에는 커피가 더 인간사에 유용할 것 같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원리원칙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지성적으로만 움직인다면 즐거움이란 요소가 빠지게 된다. 커피는 마실수록(많이 마실 수도 없고) 정신이 뚜렷해지니까 말썽은 없지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수 없고, 와인은 감성을 고무시키니까 많이 마시면 말썽도 많고 일도 잘 저질러 다음날 이야깃거리도 많아진다. 와인이 커피보다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와인과 커피 둘 다 있어야 한다. 아침은 커피로 시작하여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일을 끝내고 와인을 마시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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