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무형문화재 2호’ 淸明酒 빚는 중원당 김영섭 대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청명주의
양조방법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기록해 둔다”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중에서-
우리는 흔히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지 않다는 뜻으로 또는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가리켜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라 칭한다.
중원당의 ‘청명주(淸明酒)’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느낀 감정이 바로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는 수 많은 명인들이 빚는 명주가 출시되고 있어 꽤 마셔보기도 했건만 유독 청명주에 필이 꽂힌 것은 왜일까.
중원 청명주는 얼핏 보기엔 화이트 와인 같기도 하고, 엷은 주스 같은 색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술맛이 좋아도 첫눈에 반하지 않으면 맛은 반감되기 마련인데 청명주 색깔은 튀지 않으면서 은은한 색깔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코끝으로 감겨오는 향이 자연스레 입안으로 들어간다. 알코올 도수가 17%인데도 목넘김이 순하다. 17%면 웬만한 소주만큼 도수가 있는 술이건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일까. 그 해답은 술을 제대로 담그고 오랫동안 숙성시킨 탓일 게다.
1986년 김영기 옹이 향전록 보고 재현에 성공
청명주를 빚는 중원당(대표, 김영섭 42세)은 충주시 중앙탑면 청금로에 자리 잡고 있다. 김 대표의 6대조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니 김 대표는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답게 답답할 정도로 순박함이 배어나온다.
“옛날 이곳은 창동 나루터라고 했답니다. 그 당시 이곳은 남한강을 오가는 뱃사람들이 물물을 실어내면서 자연스레 창고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창고들이 들어서게 되어 창고가 있는 나루터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김 대표의 선조들도 여기서 곡식이나 술, 이곳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등을 팔고 사는 업을 했다고 한다.
당시 증조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청명주가 하도 맛이 좋아 훗날 다시 담가 먹을 때 참고하기 위해 기록을 해두었다고 한다.
한글과 한문 혼용으로 기록 한 비망록이 바로『향전록(鄕傳錄)』이다. 이 향전록에는 청명주 담그는 비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제정된 양조법 때문에 제조를 하지 못하였으나 제조비법만은 전수되어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86년에 현 김 대표의 부친인 김영기(金榮基) 옹(작고)이 향전록을 보고 청명주를 재현해 냈다.
옛날부터 청명주는 1년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청명 일에 사용하기 위해 빚는 민속주이면서 조선시대부터 궁중에 진상주(進上酒)로 사용했으며 사대부 집안에서는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된 전통명주였다. 이런 연유로 충주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고 마셔온 술이다.
충청북도는 자도에서 빚는 청명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1993년 6월 4일 중원당 김영기 대표를 ‘충북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했고, 김영기 옹이 작고하면서 김영섭 대표가 2003년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청명주는 내력 있는 술로서 200여년의 전통의 맥을 이어온 술이다.
중원당에 들어서면 청명주에 대한 유례와 당시 중원당 김영기 대표가 丁卯(1987년) 청명 일에 지은 시 한수가 걸려 있다.
靑波에 돛을 달고/ 한양 뱃길 삼백리/ 넘나드는 옛 추억/ 달랠 길 없네 ―중략- 달빛타고 흘러오는 구성진 저 가락은/ 이내마음 달래주는/ 우룩(于勒)의 넋이더냐/ 청명주(淸明酒)한 잔 술이/ 모든 회포를 풀어주니/ 이것이 중원명주(中原酩酒)/ 신선주(神仙酒)라네.<추억의 한강에서(聽琴에서)>
남녀노소는 물론 청중장년 층 두루 좋아하는 청명주
‘향전록(鄕傳錄)’에 기록된 청명주는 남한강 유역 바닥 지하의 수살매기물에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만든 누룩을 써서 저온에서 약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빚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주방문’이나 ‘음식보(飮食譜)’, ‘술만드는 법’, ‘임원경제지’, ‘양주방’ 등의 문헌에도 수록되어 있다.
제조법은 찹쌀 석 되를 깨끗이 씻어 가루낸 뒤 죽을 쑤어 식혀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으로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 되를 깨끗이 씻어 쪄서 식힌 뒤 물을 섞어 잘 뭉개 독 밑에 넣고 찬 곳에 두었다가 7일 뒤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게 되면 완성된 것이다. 소요 시간은 주발효기간 15일, 후발효기간 35일, 후숙 기간 50일로 총 100일 정도가 걸린다.
조선시대 과거 길에 이곳에서 청명주를 마시고 길을 떠나면 문경새재에 이르러야 취기가 깬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도수가 높은 술이다.현재 이곳 남한강은 1985년 충주조정지댐 준공으로 남한강 물을 양조용수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김영섭 대표는 나름대로 청명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공부도 하고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에서 체계적인 술 공부도 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남녀노소를 막록한고 술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술에 대한 기호도는 젊은 층은 약간 달콤한 맛을 좋아하고, 중·장년층은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데 한 가지 술로 여러 계층의 입맛을 맞추기란 어려운 일인데 김 대표는 이를 해 냈다. 그가 전공한 식품공학이 덕이 컸던 모양이다.
청명주 물 없이 죽으로만 빚는다
김 대표는 최근 청명주를 물 없이 빚는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전하는 청명주 빚는 방법은 먼저 통밀을 가루 낸다. 순수한 밀가루만을 모아 청명주로 반죽하여 직경 10∼12cm의 크기로 뭉쳐 누룩을 띄운다. 술담그기 하루 전에 찹쌀 죽을 한 솥 묽게 쑤어서 식힌다. 누룩무거리를 적당히 섞어 삭혀 밑술을 만든다. 찹쌀을 씻어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만든다. 항아리에 찹쌀고두밥, 누룩, 죽으로 만든 밑술 순으로 반복하여 켜켜로 넣는다. 찹쌀고두밥,누룩가루,밀가루,밑술을 7, 1, 1, 1정도의 비율이 적당하다.
술덧을 담근 뒤에 약 15일이 지나면 주발효는 끝나고 후발효가 진행된다. 약 35일이 지나면 후발효도 끝나서 청명주가 완성된다. 그 뒤에 약 50여 일 정도 후숙하여 청명주 고유의 맛을 갖도록 한다. 중원청명주 제조에 걸리는 시간은 약 100일간으로 청명 일에 이르면 밀봉을 개봉하고 용수를 박아 청주를 떠낸다. 알코올 도수가 17%로 일반 곡주보다 높아 충주에서 마시면 문경새재에 가서 취기가 깬다는 일화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충주 지방에서 생산 되는 순 찹쌀로 빚기 때문에 끈기가 있고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숙취가 없는 것은 오랜 시간 숙성시킨 것이 원인인 듯싶다. 마실 때는 차갑게 마시면 맛이 더 좋다. 맑고 깨끗한 청명주를 한 모금 마시면 달콤하고 은은한 과일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누룩의 밀 껍질 성분이 발효되면서 우러나온 풍미가 깊고 향기롭다. 맑고 향긋한 청명주는 찹쌀과 누룩 그리고 충주의 깨끗한 물이 만나 자연의 맛을 낸다.
찾아가는 양조장에서는 도자기체험도 해요
김영섭 대표의 명함에는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청명주의 양조방법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기록해 둔다”라고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글이 박혀있다.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오제삼주(五齊三酒:술의 종류)를 말하면서 이렇게 청명주를 높이 평가했다.
이익뿐만 아니라 이규경의 청명주변증설에서도 “청명주는 우리나라 금천 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며,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고 했다.
당시에 청명주가 얼마나 소문이 났으며 애주가들에 의해 사랑받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대목이다. 이처럼 선조들이 청명주 예찬론을 편 것은 그만큼 술 맛이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중원당은 1년 전에 ‘찾아가는 양조장사업’으로 지정받았다. 중원당은 충북 무형문화재 2호 지정된 양조장으로 역사성과 전통성은 물론, 충주 가금면 창동 김해김 씨 문중 문헌인 향전록에 기록된 비법으로 빚은 약주는 고품질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은 지역의 양조장에 대해 환경개선, 술 품질관리, 체험프로그램개발, 홍보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해 전통주 생산에서 관광·체험까지 연계된 복합공간으로 개발 지원하는 사업이다. 특히 중원당 주변에는 관광지인 무술공원, 탄금대, 조정경기장, 수안보 등 연계 체험으로 6차 산업화해 적합했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됐다. 선돌마을에 위치한 국보 제205호로 지정된 중원고구려비는 규모는 조금 작지만 광개토대왕릉비와 형태가 비슷하며, 장수왕의 아들 문자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다.
그리고 한 반도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다 하여 세워진 중원탑도 볼만 한 탑이다.
또한 인근에는 세계의 술에 대해 다양하게 알 수 있는 술박물관 리쿼리움도 있어 술 기행으로도 적합하다.
중원당 초입에 100여년 된 한옥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술을 빚는 곳은 아니고 도자기 빚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다.
김영섭 대표의 누님이 운영하는 공방(화담도예:010-4510-3496)으로 도자기 만들기 체험관으로 운영 중이다. 찾아가는 양조장 체험을 하기 위해 방문 한 부모님 따라 온 아이들이나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자기를 만들어 가져갈 수 있는 공방으로 나만의 술잔 만들기부터 도자기 페인팅, 코일링 및 수작업 등을 1시간 할 수 있는데 체험 비는 전통주 체험처럼 15,000원을 받는다.
중원당 연락처<(043)842-5005 / 010-4085-3496>
글·사진 김원하 기자